가끔 콩국수가 먹고 싶어서 음식점을 가면 걸쭉하게 갈아 만든 콩국물만 판매했다. 내 엄마가 만드는 콩물은 진득하지 않고 언제나 맑음이다. 맑은 국물이라고 고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국물은 목 넘김이 부드럽고 입안에 맴도는 고소한 여운은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보다 훨씬 오래간다.
엄마는 해마다 봄철이 되면 밭에 검은콩 모종을 심는다. 콩은 비교적 심어만 놓으면 손이 안 가는 편이긴 하나, 콩이 무사히 자라기 위해서는 콩나무 주변에 있는 풀을 뽑고 관리를 해줘야 한다. 엄마는 쨍쨍 내리쬐는 여름 한낱을 피하기 위해 새벽같이 밭에 나가서 풀을 뽑는다. 적당한 햇볕과 비바람을 맞을수록 콩은 더 단단하게 여문다.
가을에는 여문 콩을 뿌리채로 뽑아 말린 후 막대기로 콩 타작을 해줘야 한다. 콩은 엄마가 때린 맴매가 아프다며 우수수 밖으로 떨어져 나왔다.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엄마는 더 거센 맴매질을 한다. 타작 한 검은콩 안에는 이미 모두 출가한 딸들에게 흰밥 말고 콩밥이라도 구수하게 먹으라는 엄마에 진심이 담겼다. 엄마 말로는 작년 한 해 콩 농사도 꽤 풍년이라고 한다.
수확한 콩은 이듬해 찾아오는 여름이면 진가를 발휘한다. 올여름에도 엄마와 나는 어김없이 콩국수를 만들기 위해 준비를 했다. 검은콩을 물에 불린 뒤 냄비에 담아 삶아준다. 누가 검은콩 아니랄까 봐 끓는 물이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엄마는 콩들이 잘 삶아지라고 국자로 휘휘 저었다. 어느 정도 잘 삶아졌으면 믹서기에 콩을 갈아준다. 콩을 곱게 갈아주는 건 쉬운 일이다. 식당에서는 갈아 만든 콩을 물만 섞어 판매하니 편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맑은 콩물을 먹기 위해서는 간 콩을 채반이나 보자기 주머니에 넣고 콩물만 짜줘야 하는데, 갈아 만든 콩에 비해 콩물 양이 적어진다. 오늘은 채반을 이용해서 콩물을 짜기로 했다. 콩물은 젖소에서 우유를 짜내는 듯 뽀얗게 졸졸졸 쏟아졌다. 나는 엄마가 짜내는 콩물을 보며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고 코를 킁킁, 얼른 호로록 한 그릇 먹고 싶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가 콩물을 내리고 있는 사이 나는 칼국수를 삶았다. 삶은 칼국수는 찬물 목욕을 마치고 나면 탱글 탱클 쪼르르 어디로 튈 줄 모르는 탱탱볼처럼 쫄깃해졌다. 면발이 불기 전에 얼른 콩국수 한 사발 뚝딱해야겠다.
엄마는 뽀얗게 짠 콩물과 칼국수를 그릇에 가지런히 담았다. 채 썰은 아삭아삭 초록 오이를 그릇 위에 올려주면 준비 끝! 콩물 간을 맞추기 위해 맛소금을 꺼냈더니, 엄마는 콩물에는 굵은소금을 넣어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엄마 말대로 굵은소금을 넣어 간을 맞췄다. 콩국수 사발을 통째로 들이키자마자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오~ 고소해! 진짜 고소해!"
엄마는 맛있다고 외쳐대는 딸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에 담근 열무김치가 제법 맛있게 익었다.콩국수와 열무김치는 단짝이다. 고소한 콩국물과 열무김치를 입안에 넣었을 때 깔끔하게 매운 열무의 아삭함이 조화를 이룬다. 맛있는 걸 먹을 때만큼 행복한 일이 세상 또 어디 있을까.
가끔 직장을 다닐 때 엄마와 함께 만들어 먹던 콩국수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콩물이 진득하지 않고 맑게 퍼지는 그 맛을 찾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 집에 무작정 찾아가서 콩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엄마는 귀찮은 내색 없이 창고에서 검은콩을 들고 나와 콩국수 한 그릇을 뚝딱 만든다.
어쩌면 나는 엄마가 만들어준 손 맛이 그리워 여름이면 맑은 콩국수를 애타게 찾을는지도 모른다. 엄마도 점점 나이가 들어 음식을 만드는 게 힘겨워보였지만, 맛있는 음식을 자식에게 먹이기 위해 콩을 대하는 손길은 그전보다 더욱 부드럽고 섬세했다. 콩물은 엄마 손맛이 더해져 그렇게 고소했나 보다. 콩국수가 그리울 때마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엄마가 계셔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