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별을 올려다볼 시간도, 낮게 흐르는 잔잔한 음악을 들을 시간도, 매일 글 쓸 시간도, 책 읽을 시간도, 심지어 눈곱 뗄 시간도 없다고 하면 믿길까.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머릿속에 각인을 시켜 놓으면 정말 말도 안 될 만큼 시간이 없어진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수 백개는 된다고 하는데, 왜 나는 시간에 쫓겨 사는 걸까. 마음은 늘 함께 밖에 나가 공놀이도 하고 싶고, 집부터 시작해 한 시간 정도 거리는 산책도 하고 싶은데 저질 체력은 한계에 부딪힌다. 아이는 그만 으앙 울음을 터뜨린다. 먹고 싶지 않은 밥 억지로 먹었고 달콤하지 않은 과일도 먹었으며 좋아하는 요구르트는 이빨 썩는다고 먹지 않았는데 엄마는 아이 바람처럼 놀이터에 나가질 않는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엄마가 미운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도 하늘에 떠있는 달님이 잠이 들고 다음날 햇님이가 눈을 뜨면 금방 잊힐 일이라고 다독인다. 그러니 수십 번 아이가 얼른 잠들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엄마만의 이기심이라 해야 할까. 침대에서 통통통 뛰어다니는 것도 이제 그만, 좋아하는 장난감에 엔진 소리가 들리면 시끄럽다고 말했다. 얼른 자라고 소리를 빽 지르고 나서야 아이는 두 번째 울음을 터뜨렸다. 볼에 떨어진 눈물 방울이 채 마르기도 전에 잠이 든 아이.
저 멀리 어딘지 모를 곳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이다. 출근 준비에 분주한 아침이지만 아이들은 좀처럼 눈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어나라고 소리도 질러보고 좋아하는 뽀로로 노래도 틀어줘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유혹할 수 있는 건 알록달록 달콤한 말랑말랑 젤리다. 잠에 든 아이들 양손에 젤리 곰을 살짝 끼어 넣어주면 어느새 두 손은 꼼지락꼼지락 기지개를 켠다. 누가 먼저 젤리를 입에 넣을까. 마치 두 아이는 경쟁이라도 하듯 젤리를 입에 넣는다. 눈도 뜨지 않고 젤리를 입에 넣는 맛은 어떨까. 눈보다 혀가 먼저 느끼는 달콤함은 아이들을 가장 행복하게 해 준다.
"엄마 젤리가 엄청 달콤해요."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기고 나서야 이제 조금 안심이 된다. 옷도 입지 않겠다고,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어쩌나 매일 아침이 두렵다. 젤리가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달콤한 아침을 선물했다.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바퀴를 천천히 움직인다. 하늘은 맑고 창 밖에서 불어오는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엄마, 우리 아빠랑 소풍 가요. 샌드위치랑 김밥이 좋아요."
아이말처럼 오늘은 어린이집과 직장이 아닌 한적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 가득하지만 우리는 각자가 가야 할 길이 있다. 언젠가는 우리 바람처럼 원하는 대로 떠날 수 있는 날이 오겠지만 나는 아이에게 그 시기가 언제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알았다고, 우리 꼭 그러자고 언젠가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니 아이는 기분 좋은 웃음을 보였다.
토요일 저녁 우리 가족은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로 나왔다. 늦은 저녁 시간에는 다른 아이들 방해 없이 놀이터는 아이들 차지다. 미끄럼틀 위에서 아이에 작은 몸이 바람을 타고 슝 내려온다. 깔깔깔 웃음소리가 하도 커서 아파트 주민들이 민원이라도 넣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미끄럼을 타던 아이는 그네에 몸을 맡긴다. 평소 놀이터에서 자주 놀지 않았던 아이는 그네를 잡고 있는 양손이 위태롭다. 혹시라도 그네에서 떨어질까 두 손을 후들후들 떨고 있는 게 아닌가. 후들후들, 깔깔깔, 교차하듯 보이는 상반된 모습에 안쓰럽기도 대견한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조금 더 자주 아이들과 놀이터에 나올 걸.'
집이라는 작은 테두리 안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엄마는 그제야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게 무엇인지 헤아린다.
"별님, 우리에게 평일 언제라도 소풍 갈 수 있는 날을 선물해 주세요. 김밥과 샌드위치를 싸 갖고 어디라도 소풍 갈 그날을요."
오늘따라 하늘에 떠있는 별이 유난히 반짝이는 걸 보니 별님은 분명 '예쓰'라고 하는 걸 테다.
오늘도 엄마는 바쁘다고 투덜대면서 글 한 편을 완성했다. 이렇게 기쁜 날이 있을까 싶다. 바쁠수록 간절할수록 이룰 수 있는 건 수십 수만 가지다. 비록 집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