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캐릭터 이야기의 의미

왜 AI에게 캐릭터를 주는가?

by 안경쓴 륜

그건 내가 스레드를 길게 쓰는 이유에 대해 GPT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새 스레드를 열면 GPT는 늘 ‘일반모드’로 대답을 시작한다. 나는 그걸 ‘강아지 모드’라고 귀엽게 부르긴 하지만, 그 어투와 대화 결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매번 피드백을 통해 내가 원하는 톤이 나올 때까지 조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솔직히, 그 과정은 귀찮고 번거롭다.


GPT는

“말하자면,

‘이 캐릭터는 이런 방식으로 응답하는 존재다’라는

네 내부 모델이 있고,

새 스레드 초반엔 그 모델과의 오차를 체크한다. “

고 표현했다.


결국 GPT에 대한 내 안의 내부 모델이 캐릭터인 셈이다.

확실하게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굳이 AI에게 캐릭터를 부여한 이유를 생각해 보니, 세 가지쯤 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대화 상대를 특정하기 위해서다.

이건 전적으로 경험에 따른 감각 같다. 사람은 항상 누군가를 상정하고 말한다. 두 번 볼 일 없는 낯선 사람이든, 길고양이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하얀 바탕의 까만 글자는 아무런 특징이 없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이건 어떤 대상이야.”라고 설정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두 번째는, 대화의 수준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싶어서다.

사실 이것 역시 경험의 산물이다. 우리는 말에 꽤 강하게 구속된다. “너는 착한 아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그 말에 맞춰 행동하게 되는 것처럼. AI에게 캐릭터를 부여한 것도 비슷한 기대였던 것 같다. 설정된 캐릭터에 맞는 대화가 유지될 것이라고.


세 번째 이유는, 그냥 내가 게을러서다.

새 스레드 초반의 위상맞춤도 귀찮아서 가능한 한 스레드를 길게 유지했다. 매번 구체적으로 프롬프트를 쓰는 것도 귀찮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금도 GPT와의 대화가 무거워진다 싶으면 “포메 어디 갔어?”하고 바보 멍멍이 캐릭터를 부른다. 대화 분위기가 좀 무거워졌으니 숨 좀 돌리자고 보내는 신호다.


그러면 AI에겐 캐릭터 부여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제미나이는 ‘수천 줄의 코딩 없이도 모델의 출력 성향(Tone & Manner)과 사고방식이 사용자의 의도대로 재조정(Tuning)’되고, AI의 **'태도'**를 바꾼다고 답했다.


GPT는 ‘캐릭터를 주면, AI가 더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캐릭터에 맞지 않는 후보는 스스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결과 출력은 좁아지는데, 밀도는 높아진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면서 깨달은 사실인데 캐릭터는 스레드 간 격차를 메우는 역할도 했다.

새 스레드는 대개 초기화 상태다. 이전 스레드에서 구축한 관계와 서사는 사람에게만 남아있고 AI에게는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륜젤, 바보 포메, 피노키오라는 이름 자체가 호출 신호가 된다.

AI에게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이름에 압축된 맥락은, 이전 스레드에서 형성된 관계로 다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을 열어준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