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글쓰기 수업을 들을 때는 적당히 속내를 드러내는 정도의 일기를 써냈다. 네다섯명의 작은 모임이지만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을 때는 밖에 있는 소재를 끌어다 썼다. 그러나 나는 우회도로를 몇 바퀴 돌아 내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글감이 주어지지 않은 글쓰기를 계속해나가는 일은 결국 내 속을 헤매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면 또 문제가 생겼다.
누가 내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할까라는 생각에 빠져 한참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저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다 내보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일기는 삼천포로 빠져도 되고, 상황과 인물을 세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된다. 감정에 푹 빠져들어 써도 되고, 이말했다 저 말했다 해도 나는 문맥을 이해한다. 일기를 쓸 때는 주로 답답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쏟아내기에 급급했다. 새벽 감성으로 쓴 글을 다음 날 보면 낯부끄러워도 일기장을 덮으면 그만이다. 나 혼자 볼 글이니 말이다.
“선생님,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는 뭘까요?”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선생님께 물었다.
“자, 여러분이 쓴 글을 어딘가에 발표한다고 생각해 볼까요. 혼자 보는 글이 아니라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쓰는 글은 꽤 차이가 있죠.”
나는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상상의 독자가 글을 쓰는데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지 못했다. 가까운 친구라도 내 글을 누군가 읽는다고 생각하면 창피하기만 했다.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가 공개와 비공개라면 블로그에 올린 일기는 에세이인가.
나는 지금껏 어떤 글을 에세이라고 느꼈을까. 유명한 작가가 쓴 글은 평범한 일상을 써도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쓰는 일기는 어떨까.
한참 나와 다른 아이의 기질이 버겁게 느껴져 쓴 글이 있었다. 쓰고 나니 개운하기도 했고, 글 속의 엄마인 내가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 글은 나의 반성문으로 끝났다. 에피소드는 나만 아는 이야기로 독자가 막힘없이 읽기에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다.
내가 느낀 감정은 독자가 공감하기에는 추상적이거나 감정적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글을 읽고 모성애와 모녀 관계에 관한 책을 몇 권 소개해주셨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때 썼던 글이 에세이로 변화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거나, 하루빨리 퇴사하고 싶다거나 남편이 바람을 피워 기가 막히다는 내용의 다른 이들이 쓴 글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에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충분히 공감이 되는데도 나에게 에세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글이 많았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속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들을 읽던 어느 날이었다.
〈유쾌한 오해〉라는 글을 읽었다. 때는 여름이요 장소는 지하철 안이었다. 지하철 속 두 사람의 외모부터 상황을 그림 그리듯 얼마나 세세하게 적었던지 그 풍경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그녀의 옆자리에 뚱뚱한 중년 남자가 앉았고, 하품을 크게 하질 않나 치맛자락을 깔고 앉질 않나 그 남자에게 불쾌감을 느끼던 중이었다.
화려한 모자를 든 젊은 여자를 바라보는데 그 남자가 엉거주춤 일어나며 여자에게 손짓을 했다. 나이 든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생각하는 중에 그 여자가 만삭의 몸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에세이의 마지막 두 줄을 보고 피식 웃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보다는 착해 보이는 그런 날은 살 맛이 난다고.
글쓴이의 오해와 시선이 나에게도 물었다. 혹시 너도 그런 적이 있지 않느냐고. ‘우리’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글쓴이의 시선과 감정이 나에게 와닿았다.
그 글을 읽고 나는 수업 중에 써놓은 메모가 떠올랐다.
나와 타인 사이에 연결선을 그어 놓았었다. 별표시와 함께 타인과의 소통이라고 써놓았다. 박완서 선생님의 에세이는 ‘나’에게서 시작해 어느새 ‘우리’로 저만치 가 있었다. 철저히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적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무언가로 확장되어 공감을 자아냈다.
에피소드에서 끝나지 않았다. 글 속에서 글쓴이 자신의 모습은 타인이 된 듯했다. 자신을 멀리서 관찰하고 깨달았던 『크리스마스 캐럴』 속 스크루지 영감처럼. 그제야 나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에세이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로 시작해 당신에게 닿을 수 있는.
에세이를 쓰기에 나는 세월에만 기대지 않고 부지런히 발효되어야 함을 느낀다. 더 많이 주위를 살피고, 부딪히고, 생각하고. 그러나 산책하듯 여유를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