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에게는 정치교육이 필요합니다

by 미냉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학교가 정치 중립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어리고 세상사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일견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중립의 공간인 학교에서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잘 오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학생들도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정치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나 선생님을 통하지 않고서 말이죠. 이는 곧 학교에서 정치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은 채 학생들이 세상에 노출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학생들이 각자 알아서 정치를 배우도록 두는 것이 맞을까요?


더욱 문제적인 것은 정치중립이라는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지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사가 특정 정당을 비판하거나 정치인을 거론해도 특별한 사고가 생기지 않는 한 제재받지 않습니다. 반면 체계적인 민주시민교육은 '정치중립' 원칙을 근거로 교육과정에서 배제됩니다. 결국 원칙 없는 정치 발언은 허용되면서 원칙을 세울 수 있는 정치교육은 금지되는 모순적 상황입니다. 학교 급식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먹지 말라면서 불량식품의 유통은 방관하고 있는 셈이죠.


그 결과 학생들은 현실 정치의 가장 문제적이고 자극적인 부분을 먼저 마주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접하는 정치 정보는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나 특정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쇼츠 영상에서 나옵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중립적이거나 신중한 의견보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주장이 환영받습니다. 특정한 반응을 노리고 고의적으로 편집된 영상이나 게시물들이 주류를 차지하는 곳에서 학생들은 정치를 접하고 있습니다.


결국 일부 학생들은 극단적인 갈라치기에 빠져듭니다. 특히 문제인 것은 자신의 입장은 없이 특정 진영의 생각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북한이 싫으니까 이쪽"이라고 결정하면 해당 진영의 모든 정치 패키지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외교 노선이나 에너지 정책, 복지나 경제 시스템까지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개별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특정 진영의 입장에 찬성해버립니다. 이는 어른들의 문제가 그대로 아이들에게 대물림되는 모습입니다. 이런 인식 속에서는 자기와 관련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건전하게 의견을 표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전혀 자리 잡지 못합니다.


커뮤니티의 논리에 빠져든 학생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아주 명쾌하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씩 주면 되는거 아니에요?”

병역 자원 고갈 문제에 대해서는

“핵만 만들면 다 끝이죠!” “여자들도 군대가야죠.”
하는 식입니다.


이런 해법들은 정책의 복잡성, 재원 문제, 사회적 합의 과정, 그리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숙의와 토론을 거치지 않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견해를 그대로 흡수하여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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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진정으로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학교에서 제대로 된 정치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손 놓을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기본적인 원칙만 잘 지킨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원칙은 이런 것입니다.


1. 교사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거나 강요하지 말 것.

2. 현재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이슈는 피할 것.

3.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언급하지 말 것. 등등..


그렇다면 그대신 우리가 정치교육에서 다루어야할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이런 질문들은 어떨까요?


작년과 생각이 바뀌면 배신자일까?

정치에서 타협은 나쁜 걸까, 필요한 걸까?

민주주의에서 왜 여러 정당이 필요할까?

모든 정치 이슈에 대해 한 진영의 입장을 따라야 할까?

성별이나 지역이 나의 정치 입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일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 학생들은 고정된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사고하며, 갈등과 타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정치적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정치교육이 잘 이루어지기 위한 선결 조건 중 하나는 교사가 충분한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공화정의 역사가 길지 않은 한국에서는 현장 교사 역시 정치적 경험이나 소양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사들조차 어느 한편에 치우쳐 정치 문제를 바라본다면 학생들은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정치를 배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을 위한 정치교육이 잘 이루어지려면 교사들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정치교육은 정치적 입장을 주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며,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면 이제는 정치교육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사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교사가 먼저 성숙한 민주시민의 모습을 보여줄 때, 비로소 우리 아이들도 건강한 정치 감각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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