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문법 이야기

by 미냉

다들 국어교사는 맞춤법을 잘 알고 그것에 민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일반인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 카톡을 할 때나 대화를 나눌 때, 제가 틀리는 경우도 많고 상대방이 틀리게 쓴 것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맞춤법이라는게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숙지하는건 거의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이런 저도 방송에서 발음을 틀리는건 조금 거슬리더군요. 예를 들어 "빛이[비치] 너무 밝아서"를 [비시]로 발음할 때 그랬습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너무 큰 빚을[비즐] 졌어"를 [비슬]로 말하기도 하더군요. 예능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식으로 받침을 틀리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이런 받침의 발음 문제는 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우는 내용입니다.

이렇게요.


받침에서는 7개의 소리만 발음된다.

그 7개는 ㄱㄴㄷㄹㅁㅂㅇ이다.

가느다란 물방울이라고 외우면 된다.


하는 식이죠. 중학생들도 쉽게 배우고 이해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저는 수업 할 때 이것으로 끝내지 않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렇다면 왜 숲을 [숩]으로 발음하면서 '숲'이라고 쓰는거지?" 학생들의 대답을 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한번 더 물어봅니다. "그렇지 않아? '숲[숩]'이라는 발음에서 ㅍ은 없는데 왜 ㅍ을 썼을까? 어떻게 받침이 ㅍ이라는걸 알 수 있지?" 이것에 대해 정답을 맞춘 학생은 정말 별로 없었는데, 가끔 극소수의 학생이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해줬습니다. "뒤에 뭔가가 오면..." 하고요. 그럴땐 저도 모르게 그렇지!하고 맞장구를 치게 됩니다.

밭을[바틀], 숲에[수페]. 하는 식으로 뒤에 '-이'나 '-을'같은 조사나 어미를 붙여보면 숨어있던 받침이 제모습으로 튀어나오게 됩니다. 빛이[비치], 빚을[비즐], 낯이[나지]. 모두 같은 원리죠. 그런데 제가 본 예능에서는 그 받침이 잘못 튀어나오고 있었던 겁니다. 원리를 모르니까 [비슬], [나슬] 같은 발음이 나오는 거예요.

재밌는 게 뭐냐면, 사실 우리는 한국어 문법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문법이라는건 누군가 새롭게 만들어서 "이렇게 써야 해"라고 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말의 규칙을 정리해 놓은 것이거든요. 빚이[비지]라고 발음하는 건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거예요. 그런데도 문법 시간만 되면 학생들은 어지럽다는 표정을 합니다. 그리고 뭔가 많이 외워야된다고 엄청난 부담을 느끼죠. 본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하고요.

이 원리를 알면 실제로 쓸데도 있습니다. 철자가 헷갈릴 때 '이'나 '을'을 붙여보면 되거든요. 빚인지 빋인지 빗인지 모르겠으면 '이'를 붙여서 [비지]로 소리나면 빚, [비치]로 소리나면 빛. 검색할 때도 이렇게 찾을 수 있고요. 물론 기본적인 단어의 형태를 모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누구든 잠시 헷갈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원리를 알면 스스로 답을 찾아낼 수 있겠지요.

물론 문법에는 어렵고 복잡한 내용들도 많긴 하지만 이런식으로 발음하고 올바른 받침을 쓰는 정도는 유용하고 합리적인 지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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