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뒤에 가려진 진짜 학교의 성적표를 찾는 방법
1월과 2월은 새해를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냉혹한 수확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대입의 마지막 일정인 정시 전형까지 종료되면 학교에서는 각 대학별 합격자를 취합합니다. 예전에는 서울대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 합격자가 중요했지만 요즘은 그보다 의대합격자 수가 중요하지요. ○○고 의대 합격 ○명, △△고 서울대 의대 ○명. 교문에는 현수막이 걸리고, 보도자료가 나갑니다.
그런데 정말 의대 합격자 수가 좋은 학교임을 말해주는 걸까요? 최상위권 학생만 좋은 결과를 얻으면 만사 오케이인 것일까요?
학교를 평가함에 있어서 의대 진학자 수가 유일한 잣대가 되면 벌어지는 일은 뻔합니다. 학교는 자연스럽게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집중하게 됩니다. 의대에 갈 가능성이 있는 몇몇 학생들에게 모든 자원과 관심이 쏠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그저 배경이 되어버립니다. 교육 여건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을 만들어내는 데 급급해집니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학교를 평가하는 다른 방법들을요. 완벽한 대안은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의대 진학자 수보다는 학교의 실제 모습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지표들 말입니다.
학교가 정말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지 알고 싶다면,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학생들이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의대 진학자가 많다는건 그 학교가 공부를 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학교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입지 조건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애초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지역, 사교육 인프라가 좋은 지역에 있는 학교가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입학 시점의 모의고사 성적과 졸업 시점의 수능 성적을 비교해보면 얼마나 학업적인 면에서 나아졌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전교생의 백분위 평균이 50에서 60으로 바뀌었다면 입학할 때는 전국평균 수준에 있던 학생들이 그 위로 올라선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백분위가 80대였는데 70이 되었다면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했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입학 때보다 못해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이것도 한계는 있습니다. 지역의 입지 조건이나 사교육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잘하는 학생'과 '학교에서 성장한 학생'을 구분할 수 있는 시도는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출석률이나 지각, 조퇴같은 근태와 관련된 지표들입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별로 안 중요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출석률은 생각보다 수업 분위기에 큰 영향을 줍니다. 누군가 빠지면 평가를 진행하기 어려워집니다. 특히 한두명까지는 티가 덜나지만 교실에 빈자리가 드문드문 보일정도가 되면 학생들의 의욕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당연히 조별 협동 학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사는 계획을 수정할 일이 자주 생기게 되지요.
학생들이 학교를 자주 빠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학교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학교 전체의 근태 상황이 좋지 않다면,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출석률은 기본적인 교육의 질, 학교 문화,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애정과 만족도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가 진짜 좋은 학교 아닐까요?
세 번째는 교사 근속연수입니다.
이것도 역시 안 중요해 보이는 지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선생님들이 2~3년 정도는 한 학교에 머물러야 그 학교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학교의 문화를 이해하고, 학생들의 특성을 알아가고, 그에 맞는 업무를 기획하고 추진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실 전입 첫해에는 경험이 많은 교사라도 학교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예산이나 교육과정도 작년에 있던 전임자의 손길이 닿아있고요. 그래서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선 충분한 적응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학교는 선생님들이 1년, 2년 만에 떠납니다. 심한 경우는 그 자리를 신규 발령이나 기간제 선생님들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원인은 다양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지역 내에 있는 교사들이 기피한다는 것은 근무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선생님들이 오래 머무는 학교는 그만큼 근무 환경이 안정적이고, 학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교육 활동이 가능해집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분들이 안정적으로 근무하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 어느 쪽이 더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네 번째는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와 학교폭력 사안 건수입니다.
당연히 적은 게 좋습니다. 이런 사안이 자주 발생한다는 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신뢰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사건사고가 자주 발생하다 보면 학교 구성원들의 분위기는 적대적이거나 수비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권보호위원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고 해서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요? 학교폭력 사안이 하나도 없다고 해서 정말 평화로운 학교일까요? 혹시 문제가 있어도 제대로 된 절차 없이 넘어가는 건 아닐까요?
때문에 이 지표는 다른 지표들과 함께 봐야 합니다. 이런 사안이 적으면서 동시에 선생님들이 오래 근무하고 학생들의 출석률도 높다면, 그건 진짜 좋은 학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얘기한 이런 지표들도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기준을 세워도 지역적 특성, 경제적 여건, 사교육 환경 같은 외부 요인들의 영향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아마 이런 식으로 평가해도 지역 차이가 크면 그게 더 영향을 줄 것입니다. 서울과 지방, 강남과 다른 지역처럼 입지 조건이 크게 다른 학교들을 비교하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인접한 지역의 학교들끼리는 의대 진학자 수보다 훨씬 의미 있는 비교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지표들은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도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공개된다고 해도 또 다른 줄 세우기나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의대 진학자 수라는 단 하나의 숫자로만 학교를 평가하는 것보다는, 이런 정보들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역시 부작용이 더 클까요?
조심스럽지만,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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