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에서 시작해서 <총, 균, 쇠>를 집어 들기까지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독서에 관한 EBS 다큐멘터리를 발견했습니다. 책을 읽은 경험이 수능 성적이나 취업같은 사회적 성공에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보다 더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여유가 있는 가정에 있지만 독서를 하지 않은 학생과 힘든 여건에 있더라도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이 어떤 학업적 성취를 보일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쉽게 답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독서가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무려 교육방송 EBS조차 독서를 해야하는 근거로 성적이나 취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저에게 약간의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조금 얘기해볼까 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문해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긴 글을 읽지 못하는 청소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대학생, 일상적인 글 읽기조차 불편하게 생각하는 성인들. 이런 현상이 보도되면서 자연스럽게 근본적 대책으로 독서의 중요성이 부각됐습니다.
문제는 독서를 권장하는 방식입니다. "독서를 하면 문해력이 좋아진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문해력이 좋아지면 성적이 오른다", "독서를 많이 한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간다", "책을 읽으면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메시지가 덧붙여지면 독서는 점점 도구화됩니다. 물론 학부모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결국 이런 실용적 효과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이 지배적이 되면 자연스럽게 '좋은 책'에 대한 강박이 생깁니다. 저는 그런말을 들을 때마다 계속해서 질문이 생깁니다. 사회적 성공이나 문해력 상승이 보장되지 않는 다면 독서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좋은' 책을 읽어야만 하나? 그렇다면 좋은 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아이 독서 습관을 들이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혀야 할까요?"
이 질문 자체에 이미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읽히려 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책이냐는 질문.
성적 향상이나 문해력 신장을 목표로 한정하면 책 선택은 자연스럽게 필독서 목록이나 교과서 수록 작품, 추천 도서로 좁혀집니다. 서점에 가면 "수능 대비 필독서", "서울대 도서관 최다 대출 도서" 같은 문구가 눈에 띕니다. 이런 책들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아이가 이 책들을 '즐거워서'가 아니라 '읽어야 해서' 읽게 된다는 점입니다.
독서가 숙제가 되고, 의무가 되고, 참고 해내야 하는 과업이 되는 순간, 독서 자체에 대한 흥미는 사라집니다. 책은 재미있는 게 아니라 유익한 것, 도움이 되는 것, 나중을 위해 필요한 것이 됩니다. 자기가 고르지 않은 책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끼긴 힘들겠지요.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책을 읽느냐가 아니라,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요즘 웹소설이 인기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많이 즐기는 하나의 컨텐츠로 자리 잡았지요. 일각에서는 웹소설을 평가절하하며 이를 우려하기도 합니다. 자극적이고, 깊이가 없고, 비슷비슷한 전개의 판타지나 로맨스만 읽는다고. 그런거 읽지 말고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웹소설을 읽고 있는 아이는 최소한 긴 글을 읽고 있습니다. 몇만 자, 때로는 몇십만 자짜리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도파민을 주는 자극적인 전개일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글을 읽는 체력과 활자를 읽는 즐거움은 분명히 쌓여갑니다.
이 체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가능성이 생깁니다. 혹시 비슷한 패턴에 질리고, 좀 더 복잡한 이야기를 원하게 되면 '좋은 책'에 손이 가게 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책을 읽지 않거나 글 읽기를 싫어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상태임이 분명합니다.
웹소설과 관련해서 제 경험을 조금 더 얘기하자면,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 동네 도서대여점에서 열심히 판타지소설을 빌려 읽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소위 양산형 판타지 소설들이었습니다. 깊이가 있는 작품은 아니었죠. 전형적인 캐릭터, 허술하거나 겉멋만 부린 설정들, 말초적 쾌감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연출들. 물론 그때는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재밌게 읽었죠.
하지만 계속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비슷한 이야기들이 지루해졌습니다. 그러다 조금 더 예전에 나온 1세대 판타지소설들을 접하게 됐고, 거기서 좀 더 탄탄한 서사와 깊이를 발견했습니다. 더 넑고 깊은 영역을 발견한 후로는 다시 얕은 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다양한 소설, 또 역사, 과학, 경제 등 다양한 영역으로 관심이 확장됐죠. 결국에는 <총, 균, 쇠> 같은 책도 꾸역꾸역 읽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누군가 "그런 쓰레기 같은 책 읽지 말고 문학 고전 읽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독서 자체를 그만뒀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저의 만족 속에서 그 과정이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미가 저를 다음 단계로 이끌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책을 읽어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집에 다양한 영역과 수준의 책이 많아야 합니다. 서점과 도서관에도 자주 가야 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지는 않고 100번부터 900번 영역까지 돌아다니기만 한다고 나무라서는 안되겠죠. 그것도 흥미를 붙이는 과정이니까요. 더 좋은 것은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보다 책이 손에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환경은 결국 태도를 만듭니다. 책이 자연스럽게 주변에 있고, 책 읽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환경에서 아이는 책을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이가 어떤 글이든 읽든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칭찬해주는 것입니다. 웹소설이든, 만화책이든, 판타지소설이든 아이가 긴 글을 읽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독서는 목표가 아닙니다. 과정이고, 습관이고,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그 즐거움이 쌓여야 비로소 독서는 삶의 일부가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삶의 일부가 된 독서만이 진짜 힘을 발휘합니다. 성적을 위해, 성공을 위해 읽는 독서는 결국 오래가지 못합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그만두게 되고, 목표가 멀게 느껴지면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재미있어서 읽는 독서는 평생 포기할 수 없는 것이됩니다. 그리고 그 평생의 독서가 만드는 힘은 그야말로 인생을 바꿀 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