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볼빙과 생리결석

공짜 휴가인 줄 알았던 하루의 '숨겨진 청구서'

by 미냉

혹시 카드사에서 보낸 리볼빙 안내 메시지를 읽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면 리볼빙이라는 제도를 알고 계시거나, 사용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리볼빙은 신용카드 대금을 전액 갚지 않고 일부만 상환하면, 나머지는 다음 달로 이월되는 제도입니다. 당장은 부담이 적어 보이지만, 남은 금액에 높은 이자가 붙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위험한 방식입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수학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리볼빙의 위험성을 가르치는 영상을 봤습니다. 방법이 독특했습니다. 100문제 숙제를 내주되, 못 해온 학생에게는 10문제만 풀고 나머지 90문제는 다음 주로 이월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처음엔 좋아했습니다. "하루 13문제만 하면 되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자 숙제는 100문제, 190문제, 271문제로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최소한만 갚게 되면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리볼빙의 원리를 학생들은 숙제를 통해 뼈저리게 체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보면서, 학교에서 시행되는 생리결석 제도가 떠올랐습니다. 제도 자체의 취지는 좋습니다. 생리통이 심한 학생들이 무리하지 않고 쉴 수 있도록 한 달에 하루를 결석으로 처리하지 않는 배려입니다. 하지만 제도가 자리잡으면서 예상치 못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쉴 수 있는 날"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입니다. 안 쓰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마치 무료 휴가를 날리는 기분이 든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되는 심리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큰 함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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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결석이 만드는 공백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하루를 쉬면 보통 7시간의 수업을 빠지게 됩니다. 그 7시간 동안 진행된 내용은 다음 날 학교에 갔을 때, 이미 나를 제외한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습니다. 빠진 내용을 혼자 따라잡으려면 7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설명 없이, 교실의 분위기와 맥락 없이, 혼자서 교과서와 씨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교과목의 특성입니다. 특히 수학, 과학, 영어 같은 과목은 누적 학습이 핵심입니다. 다른 학생들은 근의 공식을 적용해서 문제를 술술 푸는데 혼자 끙끙거리게 됩니다. 지난주 배운 문법을 놓치면 이번 주 독해 지문이 안 읽힙니다. 화학 실험 수업을 빠지면 그다음 이론 수업이 공허하게 들립니다. 앞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뒤의 내용은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집니다.

한 달에 한 번, 하루씩 이런 공백이 생긴다고 상상해보십시오. 한 학기면 5일, 1년이면 10일, 고등학교 3년이면 30일입니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210시간의 수업 공백입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질적인 공백입니다. 매달 한 번씩 "내가 모르는 부분부터 수업이 진행되는" 경험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리볼빙 빚이 쌓이면 사람들은 무기력해집니다. 빚이 너무 커 보여서 갚으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학습 공백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업 시간에 앉아 있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따라잡으려 해도 계속 새로운 공백이 생깁니다. 학생은 점점 수업 시간에 멍하게 앉아 있는 것이 익숙해지고, "어차피 나는 못 따라가"라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많은 학부모님들이 "한 달에 하루쯤이야"라고 생각합니다. 1/30, 약 3%에 불과해 보입니다. 하지만 하루를 빠진 것의 영향은 하루로 끝나지 않습니다. 210시간의 수업 공백과 누적된 학습 무기력이 만드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수 있습니다.

생리결석 제도의 본래 취지를 생각해봅시다. 이 제도는 "매달 의무적으로 쉬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힘들 때, 무리하지 말고 쉬라"는 배려입니다. 공짜 휴가가 아니라,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안전장치입니다. 자녀에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생리통이 심하면 당연히 쉬어야 해. 하지만 괜찮은데도 '안 쓰면 손해'라는 생각으로 쉬는 건 다른 문제야. 그건 빚처럼 쌓여서,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학습 공백이 될 수 있어."

한 달에 하루, 그 작은 선택이 3년 후 어떤 결과를 만들지, 함께 이야기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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