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되지 않는 시간의 의미
고3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은 바쁜 학기 초가 지나고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담당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종합전형에 대비해서 생기부 기록 내용을 살펴보는거죠. 만약 내신 등급이 2.5라면 거기서 얼마나 플러스될까, 혹은 마이너스될까를 따져 봅니다. 저는 주로 생기부를 출력해놓고 형광펜을 듭니다. 진로에 맞는 좋은 기록내용이 교과세특이나 동아리활동에 있으면 노란색 줄을 긋고요. 학급실장을 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한 구체적 장면이 있으면 그것도 표시합니다. 그런 식으로 학교에서 보낸 시간 중 의미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거죠. 심지어 교내상 수상기록은 학기당 하나만 반영되기 때문에 어떤 걸 골라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도 있고요.
그런데 이건 교사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학생들도 매 순간 그렇게 선택합니다. 동아리를 고를 때, 다음 학기에 들을 과목을 선택할 때, 똑같은 계산을 하죠. 뿐만 아니라 학교의 1년 교육과정 자체도 그런식으로 설계됩니다. 대입에 도움이 되는 행사는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거나 도움이 되도록 바꿉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이미 그렇게 변해있어서 그게 너무 당연한 분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물론 각자 판단은 다를 수 있겠지만요.
결국 고등학교 3년 동안 학생들은 끊임없이 계량화 훈련을 받는 셈입니다. 과목마다 등급이 매겨지고, 봉사나 자율활동도 평가의 대상입니다. 그밖에 동아리도, 독서 기록도 모두 대입이라는 하나의 척도로 환산됩니다. 그래서 취미영역에 있는 동아리를 선택하면 뭔가 손해보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친구들은 진로나 학업과 관련된 활동을 축적하고 있는데 본인만 사진을 찍거나, 영화를 감상하면서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학급 실장이나 학생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명목상으로는 학급과 학교를 위한 봉사지만 실제로는 대입을 위한 스펙으로 인식됩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내면화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모든 활동을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평가하는 태도죠. 목표에 도달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 그 활동은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만약 대학 진학에 실패한다면, 그 학생은 고등학교에서의 3년을 낭비하고 무의미하게 보낸 것일까요? 생기부에는 형광펜이 칠해지지 않았지만, 수업 시간에 재밌고 유익한 내용도 있었을 것입니다. 체육대회나 수학여행에서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죠. 그 순간들은 대입과 무관하게 의미가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순간들마저 평가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활동 그 자체가 가진 의미는 사라진 거죠.
이렇게 형성된 사고방식은 학교를 넘어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한국 사람들이 게임을 할 때 조차 게임을 즐기지 못한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게임 속에서도 최적화된 루트를 찾고, 공략을 외우면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죠. 게임이 원래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임에도 어떻게든 낭비는 없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힙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마찬가지예요. 수많은 리뷰를 분석하고, 장단점을 비교하고, 총점이 가장 높은 것을 선택해야 직성이 풀리죠. 모든 선택의 순간이 시험이 되어버렸어요.
대입에 평가되지 않는 3학년 2학기가 되면 학생들은 모든 것을 놓아버립니다. 학교가 오기 싫어지고, 와서도 아무것도 하고 싶어지지 않죠. 예전에는 그나마 반 친구들끼리 영화를 보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놀기라도 했었는데, 이제는 각자 폰으로 쇼츠만 넘기다가 집에 갑니다. 그보다 나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아무도 그것을 평가해주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언론에서는 그런 모습을 교실붕괴라고 지적하며 문제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들은 우리가 가르친 대로 정확히 행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태까지 주위의 모든 어른들이 ‘대학에 가기 위한 고등학교’라고 외쳐왔는데 왜 고등학교에서 다른 의미를 찾겠습니까? 더군다나 그 일탈은 졸업 후의 인생에서 다시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에 갖는 잠깐의 쉬는 시간일 뿐이지요.
대학 입시를 생각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누구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다만 지금의 학생들은 어떤 활동을 할 때, 그 활동이 평가되지 않는 순간에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도움이 되는지, 어디에 쓸 수 있는지, 기록으로 남는지부터 따져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분명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쪽을 선택합니다. 의미를 느끼기도 전에 판단이 먼저 내려지는 습관입니다.
그렇게 건너뛴 시간들은 실패로 남지도 않습니다.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처럼 기록되지도 않습니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시간처럼 사라질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쌓이면,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감각 자체가 점점 흐려집니다. 결국 현재의 순간이 갖는 의미는 사라지고 늘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법이 아니라 끊임없이 준비만 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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