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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니 Jun 13. 2021

신호등 앞에 서서

커버이미지 출처  : 흐리고 따듯한 알로하 네이버 그라폴리오 


 횡단보도 위 초록색 신호등이 켜지면 멀리서 걷고 있더라도 이상하게 그 불이 꺼지기 전에 건너기 위해 뛴다. 한 사람이 뛰기 시작하면 같이 걷던 사람들도 덩달아 뛴다. 뛸 힘이 나지 않았던 나는 빨간불 앞에 덩그러니 섰다. 나를 제치고 무사히 뛰어 건너간 사람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다시 걸어가려 애쓴다. 나도 그들처럼 열심히 뛰곤 했다. 그렇게 깜박이는 몇 초 내로 조마조마 건너면 때로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시시한 보람을 느끼기도 했으니까. 그날도 늘 그렇듯 걷다가 초록불이 켜지면 횡단보도를 건넜고 빨간불에선 멈췄다. 문득 누구에게나 가야할 길은 정해져 있으니 빨간불은 불청객일 수 있고 우연히 내 발걸음에 맞아떨어진 초록불은 행운이라고 여겨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는 내 인생에 초록불만 켜지기를, 내 길에는 행운의 신호만 켜지기를 바래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나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을 접었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단념했을 땐 어릴 적부터 그토록 바라왔고 치열하게 부딪혀본 적이 없었기에 당장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 두려움이 먼저 몰려왔다. 인생 위 빨간색 신호등이 켜지고 말았고 나는 결국 멈춰 섰다. 오래 달리기하듯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살았다. 내가 그저 꿈을 이루고 싶었던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은 평범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 꿈을 스스로 포기하는 날 결국 내가 뱉은 말은


 “난 지금 행복하지 않아”였다.


 내가 뱉은 말에 스스로 놀라 믿을 수가 없어서 인지 눈물이 차올라 멈추지가 않았다.

 꿈을 이루면서 ‘난 잘하고 있다’고 믿었고 힘든 순간들이 오면 이 문턱만 넘으면 쉼이라는 것이 있을 거라 나를 위로했다. 그래서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상황이 나아지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사하러 갈 거야”, “시간이 생기면 여행을 가야지”라는 쉽지만 막연한 말들을 하곤 했다. 행복은 그 어떠한 조건을 거쳐야 나오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우선 잃어버린 ‘행복’을 위해 천천히 시간을 채워봤다. 처음엔 무엇으로 시간을 채워야할지가 막연했다. 거울을 보며 웃으려 해도 눈물이 터졌기에 쉽게 무기력해지고 주저앉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걱정하며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밤잠을 잘 자기 위해 낮 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수시로 굶던 습관을 고치기 위해 세끼를 꼬박 챙겨먹었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잘 마시지 않던 한 잔의 커피의 여유도 만끽했다, 또 보고 싶던 영화도 봤다. 그리고 자주 햇빛을 보며 산책을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 쯤 무언가를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새로운 시작의 앞에서 나이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어리지만 않을 뿐 아직 젊은 날의 ‘나’이기에 다시 대학교를 입학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현재는 다행히 합격결과를 통지받고 일을 하며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 출발점 위에 서있다. 떨리는 이 마음이 ‘두려움’일지, ‘설렘’일지 정확하진 않지만 다시 심장이 뛰며 살아있는 이 기분이 참 좋다.


 생각해보면 빨간불이라고 좌절할 필요도 없었다. 횡단보도 위 잠깐의 시간동안 평소 자주 올려다보지 않았던 맑은 하늘을 볼 수도 있었고, 옷에 묻은 얼룩을 찾을 수도 있었다. 그러다 다시 우리의 초록불이 켜지면 주저하지 않고 건너가면 된다.

 빨간불이야 말로 초록불보다 더 귀한 시간일 지도 모른다. 초록불이 ‘행운’의 단어라면 빨간불은 ‘행복’일 수 있으니까. 이제는 멀리서 초록불이 깜박이더라도 초조한 마음보다는


 “괜찮아. 다음에도 충분해.”라고 속삭인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듯 ‘잠시 멈춤’을 마주한 때야말로 오롯이 나를 바라보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일 수 있다. 끝으로 이 글을 읽어준 당신에게도 소소한 행복이 있기를 그리고 초록불과 같은 행운은 꼭 약속처럼 올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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