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

by 이안



위대한 유산… 이 시대의 유산은 무엇인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한 고아 소년의 신분 상승 이야기를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과 도덕, 그리고 시대의 물결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휘몰아가는지에 대한 우화다.

묘지 앞에서 핍이 탈옥수를 마주한 장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 “타인을 향한 작은 선택이 과연 무엇을 남기는가?”를 드러낸다. 공포 속에서 내민 손길은 훗날 그의 삶을 완전히 다른 궤도로 이끌었다. 여기서 디킨스는 묻는다. 우리가 남기는 ‘위대한 유산’은 거대한 부가 아니라, 무심코 내미는 작은 손길이 아닐까?


" 그 마을을 생각할 때면 또렷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빛이 느린 걸음으로 지평선 위를 지나던 어느 눅눅한 저녁이었다. 바람이 유난히도 많이 불던 그날, 나는 웃자란 풀로 뒤덮인 교회 묘지 앞에 서 있었다. 그곳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너무 일찍 등진 다섯 형제가 나란히 잠들어 있었다.

교회 건너편에 늪지대가 있었고, 그 뒤로 낮게 펼쳐진 지평선을 따라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바람은 저 멀리 야생 동물들의 소굴에서 불어온다는 것을, 또 그 너머에는 끝을 알 수 없는 드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몸을 동그랗게 만 채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무덤사이에서 벌떡 일어나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찍소리 말고 가만히 있어! 요 악마 같은 놈. 소리 지르면 네놈 목을 잘라 버릴테다."

- p 10





9f6cf493-a183-4f4a-8bd3-92f55ff782e4.png?type=w966




산업혁명의 런던, 그리고 오늘의 세계


19세기 런던은 산업혁명의 심장부였다. 자본의 논리가 인간의 운명을 재단하던 그 도시에서, 신분과 부는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풍경은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자본주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AI 혁명과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부와 지위, 효율과 성과라는 동일한 신화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위대한 유산』은 19세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의 초상화를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인간다움의 역설

핍의 후원자는 귀족 여인이 아니었다. 바로, 사회의 밑바닥에 내던져진 탈옥수였다. 사회가 낙인찍은 ‘범죄자’ 속에서, 핍을 향한 가장 인간적인 유산이 흘러나온 것이다.

이것은 역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 본성의 진실이다. 우리는 종종 성공과 권력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고, 실패와 추락의 자리에서 오히려 그것을 발견한다. 디킨스는 핍의 운명을 통해 이렇게 속삭인다. “인간의 가치는 신분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손길에서 드러난다.”




78afb1b8-07b8-40e1-8b5d-3abe564fc15c.png?type=w966






신사의 조건

핍은 신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매형 조의 따뜻한 손길을 외면한다. 그러나 결국 깨닫는다.

신사의 본질은 화려한 사교계도, 막대한 유산도 아닌

“사랑과 도덕적 선택으로 완성되는 인간다움”이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도 이 메시지는 그대로 유효하다. 명문 학벌, 화려한 직함, 높은 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다. 진정한 신사는 옷이 아니라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유산은 무엇인가

『위대한 유산』의 맥락은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과도 연결된다.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디킨스가 그 시대를 두 갈래로 가르는 통찰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울린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듯, AI 혁명은 우리 앞에 또 다른 문턱을 세우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유산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그것이 ‘인간다움의 유산’인지, 아니면 ‘야만의 유산’인지다.



결론 –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


『위대한 유산』은 결국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거대한 재산도, 화려한 혈통도, 역사에 남는 이름조차도 ‘위대한 유산’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남기는 계산 없는 손길, 책임을 지는 사랑, 그리고 인간다운 존엄이다.

이것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해 변하지 않는, 진정한 ‘위대한 유산’ 아닐까.



09ed4fc8-37cc-4237-836a-a4e0605c492f.png?type=w966





『위대한 유산』을 덮으며 나는 묻게 된다.

오늘 나에게, 그리고 우리 세대에게 남겨질 ‘유산’은 무엇일까.

나에게도 시간이 멈춘 듯했던 날들이 있었다. 아픈 아이의 소식을 기다리며, 밤마다 달력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 있던 시간. 그때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거대한 재산이나 성공의 자취가 아니었다. 오직 누군가의 작은 손길, 지켜주려는 마음, 그리고 “끝내 무너지지 않겠다”는 내 안의 의지뿐이었다.

그래서 디킨스가 말한 참된 유산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서로에게 내밀 수 있는 온기, 끝내 삶을 지켜내게 하는 '사랑과 존엄'이다.




original_4.png?type=p100_100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오늘 하루, 내 곁의 누군가를 위해 내민 작은 손길, 그 온기가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것이다.산업혁명이 그랬듯, AI혁명 역시 우리의 삶을 근본에서 바꾸려 하고 있다. 물질적 풍요가 주어져도,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과 도덕적 나침반을 잃는다면, 그 길은 천국이 아니라 또 다른 야만일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길을 새롭게 찾아가는, 리부팅(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