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조급증
부모님댁 냉장고에는 늘 아이스바가 들어 있다. 아버지가 틈틈이 사다가 쟁여둔다. 자녀들이 찾아왔을 때 맘껏 꺼내 먹으라고. 아버지에게 자녀들이란 맏아들, 맏며느리, 고등학생 손자 둘, 막내아들, 막내며느리, 초등학생 손녀, 유치원생 손녀 이상 여덟 명이다. 내가 막내아들에 해당한다.
기독교를 믿는 우리 가족은 보통 일요일에 모인다. 모두 한 교회에 다니기에 오전 예배를 마치고 부모님 댁에 모여서 점심을 먹는다. 밥 먹는 시간까지 포함해 두 시간쯤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어쩌면 요즘은 보기 드문, 가정의 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점심식사 풍경은 거의 변함없다. 거실에 교자상 두 개가 놓이고, 아버지의 자리만 지정석으로 정해진다. 나머지 식구는 앉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앉아 편하게 먹는다. 식사 자리를 가장 먼저 뜨는 사람은 언제나 아버지다. 식사를 빨리하는 습관 때문이 아니다. 자녀들에게 후식을 챙겨주기 위해서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부엌으로 간다. 손수 과일을 깎아 쟁반에 담아 거실로 돌아온다. 이건 아버지가 반평생 해온 일이다. 어쩌다 한두 번 빼고는 기상나팔을 부는 군인처럼 규칙적으로. 내일모레면 팔순인데, 아버지는 그 규칙을 바꿀 의향이 전혀 없어 보인다.
처음엔 자녀들이, 특히 며느리들이 아버지가 과일 준비하는 것을 말렸다. 송구한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꿋꿋이 후식을 베풀자 그냥 감사히 받아먹기로 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그게 아버지 방식의 사랑이라는 걸 다들 알게 된 거다.
한 3년 전부터 과일에 아이스바까지 추가되었다. 누가바, 비비빅, 아맛나, 메로나, 호두마루 등 신구 세대를 아우르는 메뉴로.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으로 후식은 한층 풍성해졌다. 옥에 티가 있다면 아이스바의 서빙 시간이었다. 여전히 일등으로 식사를 마치는 아버지는 과일에다 아이스바까지 자녀들의 식탁에 놓아 주었다. 한창 밥을 먹는 중인데 아이스바를 가져다주니 대략 난감했다.
“다 녹잖아요. 밥 다 먹으려면 멀었는데…….”
“다시 냉장고에 넣어둘게요. 저희가 알아서 꺼내 먹을 테니, 쉬고 계세요.”
형도, 나도 아버지를 말렸지만, 아버지는 쿨하게 받아쳤다.
“괜찮다.”
결말은, 괜찮지 않았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밥그릇을 비우고 아이스바 껍질을 뜯었을 때 녹아내리고 있는 아이스바 속살과 마주해야 했다. 별아와 수인이는 얼른 아이스바를 먹고 싶어서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별아는 한 가지 반찬만 공략하며 후딱 밥을 해치우려 했고, 수인이는 배부르다는 거짓말로 밥을 남기려 했다.
이런 일이 대여섯 번 되풀이되고 나서야 아이스바 서빙 시간이 바뀌었다. 아니, 방식이 달라졌다. 각자 알아서 밥 먹은 다음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방식으로. 아버지도 식사 중 아이스바 제공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끼셨는지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말씀하셨다.
“밥 먹고, 아이스크림 꺼내들 먹어라.”
과일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제공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아버지는 과일칼을 손에서 놓지 않으실 것 같다. 존경스럽다. 아버지는 후식 과일 차리기의 장인(匠人)이다.
아버지 덕분에 3년 넘게 시원하고 맛있는 아이스바를 점심 후식으로 먹고 있다. 메뉴는 한결같이 누가바와 그 친구들이지만 조금도 질리지 않는다. 아이스바에 사랑이 담겨서 그런 모양이다.
밥 먹는 중에 아이스바를 밥상에 놓아주던 아버지의 모습을 찬찬히 되새겨본다. 노년기의 강을 건너고 있는 아버지는 이제 자녀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의 사랑을 서둘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중년인 내가 노년의 삶을 낱낱이 헤아릴 수는 없다. 자녀인 내가 부모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그저 짐작만 할 따름이다. 내 짐작에 아버지는 ‘내리사랑 조급증’을 앓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 조급증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조급증과 달리 행복한 병일 거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이 병이 나으면 오히려 행복에서 멀어질 것만 같다.
그래서 내심 후회스럽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도 “아버지, 진짜 맛있어요.” 하며 즐겁게 먹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