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 처먹은 아들의 엉터리 심리학 2

불후의 소확행 추구 욕구

by 작은별송이

수인이가 태어나기 전, 별아가 한두 살 즈음이던 때 이야기다. 그때는 가족 모임을 주로 토요일 저녁에 가졌다. 저마다 교회에서 맡은 사역이 있어 일요일 점심때에 맞춰 모두 모이기가 힘들었다.

별아는 우리 집안의 첫 딸이라 사랑을 듬뿍 받았다. 두 손자에게도 사랑을 퍼준 할머니는 귀한 손녀에게도 사랑을 전하고 싶어 툭하면 나를 닦달(?)했다.


“별아 봐 줄 테니, 좀 자주 와라.”


그 시절 어머니 댁과 우리 집은 걸어서 15분, 마을버스로는 10분 거리였다. 마음만 먹으면 자주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하지만 자주 안 갔다. 혼자서 아기를 돌보는 게 힘들었지만 그냥 꾹 참고 집에서 별아와 둘이 지냈다.

집을 뜨기 위해 아기용품을 챙기는 게, 어머니 댁 갔다 와서 그것을 정리하는 게 엄청 귀찮았다. 원고를 다듬는 일을 하는 내게 아기용품 챙기기와 정리하기는 꽤나 무거운 스트레스를 안겼다. 업무 리듬과 집중력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집에 있으면 그냥 뭐든 널브러진 채로 두었다가 일 마친 뒤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어머니 댁이 우리 집보다 넓은 것도 찾아가기를 꺼리게 한 주요 이유였다. 그래봤자 32평인데, 내게는 운동장처럼 느껴졌다. 별아가 쉴 새 없이 구석구석 쑤시고 다녀서 긴장을 풀 수 없었던 탓이다. 특히나 집 안 곳곳에 놓인 아기자기한 화분들은 그야말로 지뢰였다. 별아가 그 지뢰를 건드려 폭발사고를 일으키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이런 나를 별난 아빠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도 나를 은근히 그렇게 보는 것 같았다.


“남들은 할머니한테 애기 좀 봐 달라고 안달하는데, 너는 어째 봐 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니?”


어머니의 의문 어린 지청구에 나는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두 가지 이유를 미주알고주알 설명하기가 좀 애매했기 때문이다. 게으르다, 유별나다, 라는 말만 돌아올 것 같았다.

내가 안 찾아가면 어머니가 우리 집에 찾아올 법도 한데,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일하랴 육아하랴 정신없이 사는 아들과 며느리를 위한 배려였다. 나도 어머니를 초대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오면 아들된 도리로 차 한잔이라도 대접해드려야 하는데, 솔직히 그것조차 번거로웠다. 물론 어머니는 괜찮다고 만류하겠지만, 그래도 아들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아무튼 이래저래 어머니는 주말이나 되어야 별아를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손녀를 향한 사랑을 풍선에 물처럼 채워두셨다가 일주일에 한 번 그 사랑 물풍선을 빵 터뜨렸다.


아기 별아도 할머니를 좋아했다. 할머니한테 안겨 생글생글 웃는 별아는 세상 가장 행복한 아기 같았다. 집에서는 엄마 껌딱지가 되는데, 할머니 집에서는 엄마와 떨어져 있어도 잘만 놀았다. 아빠에게는 할머니 집의 빗자루를 보듯 무관심했다.

그런데 물폭탄처럼 쏟아지던 할머니의 사랑이 잠시 주춤할 때가 있다. 바로 <불후의 명곡>에서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는 시간이다. 이때만큼은 할머니는 별아가 아닌 텔레비전에 빠진다. 어머니는 특히 알리와 임태경을 좋아했다.


알리든 임태경이든 알 리 없는 별아는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고 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천진난만하게 안기고 매달리면서 사랑을 구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꼭 애원하는 사람처럼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 잠깐만 노래 좀 듣자.”


구애에 실패한 별아는 시무룩해진다. 다행히 울지는 않는다. 대신 할아버지든, 큰엄마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얼른 간다. 자기가 텔레비전에게 밀린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별아가 떠나면 할머니는 마음 편하게 방청객처럼 감타사까지 터뜨린다.


“와아, 정말 잘한다. 끝내주네.”


어머니와 별아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남몰래 웃곤 했다. 마치 둘이 ‘밀당’을 하는 것처럼 보여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아내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도대체 어머니에게 <불후의 명곡>은 무엇일까?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사랑둥이 손녀도 <불후의 명곡>을 이기지 못하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소확행’이란 말을 떠올린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 <불후의 명곡>은 어머니에게 소확행인 듯하다.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중년인 나도 날이 갈수록 소확행을 추구한다. 내게 소확행은 혼자 조용히 즐기는 순대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병이다. 나는 이걸 1년에 다섯 번도 못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부터가 어렵고,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순댓국집도 근처에 없다. 소확행을 충분히 누리지 못해서 나는 때로 우울하다. 소확행이 깨지거나 금이 가는 상황이 벌어지면 왈칵 짜증이 난다.

나의 경우로 미루어 짐작할 때 나이 들수록 소확행은 필요하다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소확행 없는 노년은 왠지 을씨년스러울 것 같다. 모래 섞인 밥알을 씹는 느낌일 것 같다.


그 시절 어머니는 <불후의 명곡>을 여생의 종착점까지 누릴 수 있는 소확행으로 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멸하지 않는 ‘불후의 소확행’. 노년의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불후의 소확행 추구욕구’가 생겼을 거라 짐작한다.



별아가 열두 살에 이른 지금, 어머니는 <불후의 명곡>보다 배구에 더 애정을 갖는 것 같다. 잘된 일이다. <불후의 명곡>은 언젠가는 막을 내릴 프로그램일 테니 말이다. 배구는 영원히 계속될 가능성이 <불후의 명곡>보다 훨씬 높다. 비록 1년 내내 하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어머니, 지금은 두 가지 소확행을 골고루 즐기세요. 그러면 <불후의 명곡>이 끝나도 아쉬움이 덜할 거예요. 배구가 남아 있으니까.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소확행을 만드세요. 제가 소확행을 팍팍 만들어드리고 싶지만 저는 능력이 부족하니, 알아서……. 하하하하하…….”


이전 01화나이만 처먹은 아들의 엉터리 심리학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