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 처먹은 아들의 엉터리 심리학 3

모범생 대물림 증후군

by 작은별송이

나는 정장 입기를 싫어한다. 활동이 불편해서다. 무엇보다 구두 신기가 힘들다. 구두는 내게 발의 감옥이다. 구두에 발이 갇히면 온몸이 갑갑하다. 세 번째 싫은 이유는 양복이 안 어울려서다. 속된 말로 뽀다구가 안 난다. 조금 창피하지만 내 몸은 양복과 양극이다. 양복은 키 크고 다리가 긴 남자를 위한 옷이다.


내 첫 번째 직장은 통신 회사, 두 번째 직장은 환경 회사였다. 정장을 싫어하니 회사 생활도 힘들었다. 세 번째 직장은 출판사였고, 이후 몇 군데 출판사를 옮겨다니다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섰다. 출판사에서는 기획편집자로 일했다. 큰 출판사 한곳만 빼고, 나머지 출판사는 모두 업무 복장이 자유로웠다. 사복을 입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회사 다닐 맛이 났다.


이 정도로 정장을 기피하니, 정장을 선호하는 부모님과는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더구나 형은 정장을 즐겨 입고 소화도 잘 해내는 편이라 피할 수 없는 비교대상이다.


“넌 왜 양복을 안 입고 다니냐? 한 벌 사주랴?”

“맨날 티셔츠 바람으로 다니지 말고 와이셔츠라도 입고 다녀.”

“교회 갈 때만이라도 정장 좀 입지 그러냐?”

“형처럼 점잖고 단정하게 하고 다니면 좀 좋냐?”


거짓말 한 숟가락만 보태면, 이런 말들을 한 오백 번은 들은 것 같다. 햇수로는 어림잡아도 27년?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군대 제대한 뒤로는 주야장천 들어왔으니까.


아버지는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몇 년 동안은 해마다 새 양복을 덥석덥석 사 주셨다. 당신의 양복을 물려주시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 일을 기술적으로 해치우셨다. 내가 양복을 사거나 받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니까 옷 얘기는 일절 함구한 채 “잠깐 좀 오너라.”라고만 했다. 영문을 몰라 찾아가면 어김없이 양복점에 데려가거나 옷장에서 양복을 꺼내 내밀었다. 물려주시는 옷은 입에 거품을 물며 안 받기도 했지만, 사 주시는 옷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불효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부모님이 아들인 내게 강요하는 것은 정장만이 아니다. 머리와 수염도 포함된다. 나는 앞머리는 이마를, 뒷머리는 목덜미를, 옆머리는 귀를 살짝 가릴 정도의 길이를 좋아한다. 수염은 약간 거뭇하게 자란 채로 다니는 게 편하다. 집중해서 글을 쓸 때는 열흘 정도 기르기도 한다. 그래도 숯이 원래 적은 편이어서 털보아저씨가 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우리 가족 남자 중에 이런 스타일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도, 형도 머리는 칼같이 단정하고, 얼굴은 매끈하다. 머리와 수염을 깎으라는 말도 나는 숱하게 들으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내가 내 스타일을 시도 때도 없이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식, 장례식, 엄숙한 교회 의식 때는 정장을 갖추고 머리와 수염도 정리한다. 그런데 부모님은 내가 그런 자리에 너저분한 채로 나타날까 봐 늘 가슴 졸인다. 오죽하면 아내에게 전화해 이런 말까지 할 정도다.


“별아 애비, 단정하게 하고 오라고 해라.”


한번은 이모가 부모님 댁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친구 어머니 장례식에 갔다가 잠깐 부모님 댁에 들렀었다. 구두를 벗고 집 안에 들어서자 어머니가 대뜸 말했다.


“바짓단이 너무 긴 거 아니니? 좀 줄여서 입어라.”

“나름 줄인 건데?”

“요즘 누가 그렇게 길게 하고 다니냐?”

“구두 신으면 괜찮아. 길에 끌릴 정도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그래도 좀 줄여 입는 게 낫겠다.”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모가 푸하하 웃었다. 웃음을 머금은 채 날 보고 말했다.


“너희 엄만 평생 너한테 ‘자르라고’ 한다. 바지 잘라라, 머리 잘라라.”


상황을 정확히 꿰뚫는 이모의 발언에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게. 근데 문제는 내 키까지 잘라버린 거지!”



아버지도, 어머니도 타고난 모범생이다. 교직에 평생 몸담았던 아버지, 독실한 신앙으로 전도사로 봉사한 어머니는 모범생의 표본이다. 두 분은 누구에게든 예의를 갖추고, 어디에서든 품위를 지킨다. 양보도 솔선수범하며, 배려도 넉넉하다. 바른 삶을 살아온, 살고 있는 분들이라, 나는 인정한다. 존경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불만이다. 바른 삶은 옷차림부터 시작한다는 가치관, 그 가치관을 자녀에게 물려주려는 마음!


형은 그 마음을 순순히 물려받았다. 물론 형도 모범생이지만 타고났다고 볼 정도는 아니다. 형은 부모님에 의해 만들어진 모범생이다. 모범생 만들기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영락없는 ‘불량학생’이다. 부모님은 나를 모범생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도 끈질기게 노력 중이다. 아마 평생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성공을 위해 달려갈 게 틀림없다.

그래서 솔직히 피곤하기도 하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범생 대물림 증후군’이 확실하다. 치료법도 확실하다. 내가 부모님 뜻을 따르면 된다. 적어도 형처럼만 하고 다니면 된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못 하는 혹은 안 하는 나는 불효자일까?

이전 02화나이만 처먹은 아들의 엉터리 심리학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