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 처먹은 아들의 엉터리 심리학 4

통과의례 기피심리

by 작은별송이

2018년은 어머니가 칠순을 맞은 해였다. 칠순 기념으로 형과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베트남 하롱베이로 떠났다. 우리 가족 첫 해외여행이었다.


아들, 손주, 며느리가 하나로 뭉친 열 명의 가족여행단은 베트남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더운 날씨가 복병이었지만 온 가족의 첫 해외여행이 주는 기쁨 덕분인지 땀방울조차 재미있었다.


여행 셋째날은 하롱베이 투어 일정이었다. 큰 배를 타고 멋진 섬들이 체스말처럼 서 있는 바다를 가르는 기분은 그만이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진 찍고, 군것질하고, 깔깔대며 뱃놀이를 즐겼다. 적당히 뿌리는 빗방울은 열기를 식혀 주어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우리 가족의 웃음을 싣고 온 배는 티톱섬에 정박했다. 전망대에 오를 목적이었다. 전망대에서는 하롱베이의 수많은 섬들과 어우러진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고 했다. 다만 그 멋진 그림을 보려면 450개의 계단을 올라야만 했다. 사람들 말로는 이삼십 분 정도 걸어야 한다는데, 등반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고 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해가 쨍 날을 세웠다. 전망대 등반로 입구에서부터 땀이 줄줄 흘렀다.


“너희들끼리 올라갔다 와라. 난 여기서 쉬고 있을게.”


아버지가 먼저 등반 포기를 선언했다. 곧바로 어머니가 뒤를 이었다.


“나도 다리가 아파서, 자신이 없네.”


그 틈을 타서 별아가 할머니한테 찰싹 달라붙었다.


“나도 안 갈래. 힘들어.”


마침 등반로 입구에는 코코넛 주스를 파는 매점이 있었다. 별아는 할머니를 그쪽으로 슬금슬금 잡아당겼다.


“할머니, 나 코코넛 주스 먹고 싶어요.”


할머니는 냉큼 맞장구쳤다.


“그래! 할머니가 사줄게.”


눈 깜빡할 사이에 세 명이 빠져나갔다.

수인이도 빠져나갈 조짐이 보였다. 언니가 코코넛 주스를 마신다니까 마음이 흔들린 거다. 수인이는 전망대에 가기 싫다는 말은 안 꺼냈지만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수인이가 엄마에게 넌지시 말했다.


“엄마, 나도 코코넛 주스.”


나는 잽싸게 대답을 가로챘다.


“수인아, 전망대 갔다 와서 아빠가 사줄게. 가자! 아빠가 목말 태워줄게.”


이렇게 해서 수인이가 마음을 바꾸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전망대로 향하면서 5분도 안 돼 후회막급이었다. 수인이를 목말 태우고 가는 게 장난 아니었다. 황소 한 마리를 이고 가는 느낌이었다. 가볍기만 했던 아이가 베트남에 와서 갑자기 무거워졌을 리도 없고, 하롱베이의 신선이 짓궂은 도술을 부렸을 리도 없고……. 수인이와 나는 출발하자마자 꼴찌로 처졌다. 수인이와 떨어질 수 없는 아내도 덩달아 꼴찌 그룹에 끼었다.


결국 꼴찌 세 명은 전망대에 오르지 못했다. 절반쯤 올랐을 때 이미 다른 식구들이 전망대에서 장관을 감상한 뒤 하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마주치면서 맥이 탁 풀리고 다리마저 쫙 풀려서 더는 올라갈 수 없었다.



저녁에는 대관람차를 타러 갔다. 관람차 한 칸에 몇 명씩 나누어 탔는데, 나는 형이랑 중학생인 두 조카 녀석과 함께 탔다. 우리가 탄 관람차가 높이 오를수록 하롱베이와 그 하롱베이를 곱게 물들이는 노을이 가까이 다가왔다. 야속하리만큼 아름다웠다.


‘가족들이랑 여행 좀 많이 다닐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을까?’


부모님이 더 젊었을 때 함께 여행을 다니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붉은 노을에 티톱섬에서 힘들어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아롱졌다. 연세가 있어 당연하다 생각이 들면서도 등반을 포기하던 그 모습을 못내 인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본디 강골은 아니지만 티톱섬 정도 높이의 산은 가뿐하게 오르던 분들이었다. 어지간한 거리는 차를 안 타고 일부러 걸을 만큼 부지런한 분들이었다. 특히 교편을 잡았던 아버지는 20분 거리의 지하철역까지 수십 년을 걸어서 오갔을 만큼 걷기에는 그야말로 달인이었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다 옛날 일이 되었다는 게 서글펐다.


언뜻 하롱베이 여행이 끝나면 더는 기쁜 일이 없을 거라는 어두운 생각이 들었다. 이듬해 이맘때에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했지만 백지처럼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경조사만 챙기다가 인생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왠지 경사는 없고 조사만 있을 것 같네.”


그러자 형이 피식 웃었다. 왠지 뜨끔했다. 형 앞에서 몹쓸 소리를 한 것 같아서. 그런데 형은 엷은 미소를 짓더니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형도 내 말에 동의하고 있다는 느낌이 설핏 들었다. 마음 한 켠엔 날 용서하고 있다는 생각도 슬몃 들었다. 평소 같으면 나의 어리석은 생각을 꾸짖었겠지만, 부모님을 위한 귀한 여행의 시간이기에 웃음으로 넘긴 듯했다.


내가 말한 조사는 부모님의 장례다. 크고 무거운, 인생의 통과의례. 맏이인 형은 어쩌면 나보다 더 그 통과의례의 무게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뱉은 부정적이고 염세적이고 거지같은 말을 금방 눈치 챘을 거다.


바보 같지만, 나이 들수록 점점 더 통과의례가 싫어진다. 결혼, 입학, 출산 같은 기쁜 일들을 맞아도 그 기쁨이 이내 식는다. 정말 바보 같지만, 그것들이 모두 죽음이라는 마지막 통과의례로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남은 통과의례를 의연히 통과하기는, 이번 생에 틀린 것 같다. ‘통과의례 기피 심리’가 갈수록 깊어만 가는 나를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나는 어른이 아닌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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