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치 보존욕구
몇 년 전 일이다. 어느 날, 형이 가족 단톡방에 상무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가족들은 저마다 축하의 말을 남겼다. 오랜만에 단톡방이 웃음과 행복으로 채워졌다. 나도 진심으로 기쁜 마음을 몇 자 적었다. 내 일처럼 기분이 좋았다.
핸드폰이 고장 나는 바람에 그때 어떤 축하의 말이 오고갔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아버지의 이 한마디는 머릿속에, 가슴속에 똑똑히 남아 있다.
-겸손하거라
아버지는 축하 메시지를 먼저 남긴 뒤 이 말을 바로 덧붙였다. 정말 아버지다운 말씀이다.
아버지는 겸손이 몸에 밴 분이다. 학교나 교회에서 여러 책임 있는 직책을 맡았지만 함부로 그 권한을 휘두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아랫사람의 의견을 존중했고, 당신의 주장만 내세우지 않았다. 형과 내가 성장기를 거칠 때는 겸손의 가치를 가르쳤다. 어떤 자리에 올랐을 때 겸손하면, 섬김은 따라온다고 했다. 평소에 겸손하면, 적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덧 내 나이도 쉰이 코앞이다.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짧게 살지도 않은 것 같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아버지 말씀이 맞았다. 겸손은 아름답다. 때에 따라 겸손을 뒤로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내세워야 할 필요도 있긴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겸손은 꼭 지녀야 한다. 겸손은 본질적으로 존중이니까. 자신을 내세울 때도 남은 존중해야 하는 거니까.
-...... 기도하마.
이건 어머니의 축하 메시지다. ‘기도하마’ 앞부분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히 옮기기 어려워서 말줄임표로 처리했다. 상무라는 직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어머니가 기도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건 아니지만, 안 봐도 비디오다. 어떤 기도를 했을지 불 보듯 뻔하다. 형이 아랫사람 넉넉히 품고 윗사람 든든히 보좌하는 상무가 되게 해달라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고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상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거다.
굳이 어머니에게 확인할 필요는 없다. 어머니는 바른 신앙인의 자세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분이다. 두 아들이 어릴 적부터 신앙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가르쳤다. 그렇게 기도했다. 상무의 직책을 맡은 형을 위한 기도도 결국은 신앙인의 자세를 잃지 말라는, 더욱 굳건히 하라는 기도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변하지 않을 거다.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 부르실 그날까지 당신들의 가치를 지니고 살 게 틀림없다. 내가 아는 부모님은 그러고도 남는다.
누구에게나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픈 자신만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가치를 지키려는 마음을 ‘나의 가치 보존욕구’라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 노년에 접어들면 이 욕구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을 거라,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나의 가치 보존욕구’는 지금껏 걸어온 삶을, 많은 이들이 부정하더라도, 자기 자신만큼은 인정해 주고 싶은 욕구일 테니까. 이 욕구마저 없다면 노년을 버티기가 만만치 않을 듯하다.
내 생각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의 가치 보존욕구’가 남들보다 조금 센 것 같다. 그 센 기운 때문에 솔직히 살면서 피곤한 적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피곤함은 나를 일깨운 힘이었다. 내가 비뚤어지지 않게 붙잡아준 버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