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 처먹은 아들의 엉터리 심리학 7

너는 내 아들 증후군

by 작은별송이

별아가 2학년 때였다. 부모님 댁에 갔던 어느 날 어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별아, 공부 더 시켜야 되지 않니? 너무 놀기만 하는 것 같다.”

“때가 되면 다 시킬 거야. 지금은 실컷 놀아야지.”

“그러나 너무 뒤처지는 거 아니냐?”

“으이그, 우리가 알아서 해. 공부는 부모한테 맡겨!”


나는 손녀 공부는 부모인 나한테 맡기라는 말로 못을 박았다. 어머니가 다소 섭섭하다는 투로 나직이 말했다.


“얘는! 할머니가 그런 말도 못 하냐?”


나는 한 번 더 탕, 못질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냥 오냐오냐 하면서 놀아주면 돼. 왜 애한테 스트레스를 줘?”


그때 묵묵히 텔레비전만 보고 있던 아버지가 불쑥 끼어들었다.


“걱정 마라. 더는 공부시키라고 안 할 테니까.”


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웃음 속엔 회초리가 있었다. ‘아들아, 너의 언행은 손녀를 향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깎아내리는 짓이다’ 하며 후려치는 웃음 같았다. 마음이 불편해진 나는 ‘볼일’도 없으면서 괜히 화장실로 향했다.


아버지에게 웃음 회초리를 맞고 두세 달쯤 뒤였던 것 같다. 별아가 할머니 집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따 친구와 놀이터에서 놀아도 되냐는 물음에 내가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제도 많이 놀았잖아. 오늘은 좀 쉬자. 너무 무리하면 병날 수도 있어.”


나는 부드럽게 말했지만 별아에게는 아빠의 말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허락을 못 받았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별아는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금방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때 할머니가 쓱 끼어들었다.


“별아야, 뭘 그런 걸로 우니? 어제도 실컷 놀았다면서.”


어머니는 여기서 딱 멈췄어야 했다.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진도를 나갔다.


“툭하면 울고 그러면, 친구들이 싫어한다.”


내 가슴이 철렁했다. 안 그래도 요즘 별아에게 최고로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를 어머니는 끄집어낸 거다. 한마디로 역린을 건드린 거다.


본디 별아는 울음보에 눈물이 가득한 아이였다. 조그만 생채기에도 울음보에서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떼를 쓰며 울지는 않고 흑흑 서럽게 울었다.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울고 싶으면 울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그랬다. 잘 놀다가도 마음을 다치면 흐느껴 울었다. 문제는 친구들도 같은 어린아이라는 점이었다. 마냥 즐겁게 뛰어놀고만 싶은. 처음 몇 번, 친구들은 별아가 울 때 달래 주고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울음이 자꾸 되풀이되자 친구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별아가 울어서 놀이 분위기가 깨지는 것에 지치고 만 거다. 나는 친구들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걸핏하면 우는 친구와 함께 놀아 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괜히 말했네.’


나는 어머니에게 별아의 친구 관계 이야기를 꺼냈던 스스로를 질책했다. 언젠가 자주 우는 것을 고쳐야 한다고 충고하는 어머니에게 안 그래도 친구들이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했었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별아도 친구들의 달라지는 마음을 느끼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별아도 눈물을 참으려고 나름 애쓰는데, 마음대로 잘 안 된다는 거다.


‘친구들이 싫어한다’는 할머니의 말에 별아가 더 상처를 받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별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조용히 흐느껴 울기만 했다. 아마도 할머니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별아의 눈치를 살피며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할머니 역시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어머니에게 별아의 울음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를 건넸다.


“별아가 울 때 아무 말씀 안 하시면 안 될까? 안 그래도 별아, 자기가 잘 우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거든.”

“문제가 있는 행동은 얼른 고쳐야지.”

“물론 고쳐야지. 근데 지금은 충분히 울게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스스로 고치려고 애쓰는 중인데…….”


순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소프라노 톤으로 변했다.


“넌 맨날 네 생각만 다 맞는 줄 아냐? 엄마 말대로 좀 해봐라!”

“아니, 내가 별아 부모잖아. 부모로서 아이한테 맞는 방식대로 하겠다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셔?”

“그런 넌 왜 부모 말은 안 듣는데?”


나는 입을 꼭 닫아버렸다. 대화를 이어가 봐야 물과 기름처럼 미끄러질 게 뻔했다. 살면서 그런 경험을 수백 번도 더했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 들어도 부모 눈에는 어린아이로 보인다고들 한다. 나는 이 말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어머니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아이처럼 가르치고 타이른다. 물론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건 너무나 잘 안다. 어머니 아버지의 지혜가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온 것도 백번 인정한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내가 옳다고 믿는 바대로 나아가고 싶은 때가 있다(부모님은 ‘가끔’이 아니라 ‘언제나’라고 생각하지만). 자녀 양육에 관해서는 특히 그렇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당신들의 양육 방식을 끊임없이 나에게 주입한다. 그런 부모님에게서는 ‘너는 내 아들이니까 말 들어라. 다 널 사랑해서야.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는 마음이 생방송처럼 보인다.


어머니 아버지 덕분에 ‘너는 내 아들 증후군’이란 표현을 생각해냈다. 우리 부모님을 비롯해 세상 모든 부모들에게 이 증후군이 조금씩은 있지 않을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닐 거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부모님 흉을 보고 있지만, 나도 늙어서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부모님처럼 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다. 아, 혹시 더 심해지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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