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 처먹은 아들의 엉터리 심리학 9

노인성 분리불안

by 작은별송이

어머니 집을 나서려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던 중이었다. 어머니가 작별인사차 별아를 살며시 안으며 한마디 건넸다.


“별아야, 방학인데 할머니한테 전화도 좀 하고 그래.”


어머니는 환하게 웃었고, 별아는 희미하게 웃었다. 어머니는 나름 부담을 안 주려고 웃었던 거고, 별아는 머쓱해서 웃은 거다.

나는 곁에서 남몰래 웃음을 흘렸다. 어머니가 별아에게 건넨 그 말, 언젠가 누군가에게 똑같이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란 바로 내 쌍둥이 조카들이다. 형의 두 아들, 할머니에게 손주 보는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사랑둥이들, 어느덧 고3으로 쑥 자라나 범접하기 힘든 녀석들.


어머니는, 그러니까 내 쌍둥이 조카들의 할머니는 녀석들이 어릴 때 말 그대로 물고 빨았다. 녀석들도 ‘남자답지 않게’ 사근사근하고 싹싹하고 잘 안겨서 사랑을 배로 받았다. 삼촌인 나한테도 멀리서부터 “삼촌!” 하고 달려와 덥석덥석 안겼다. 하지만 세월은 야속한 법! 아기새처럼 품을 파고들던 그 아이들도 크면서 점점 멀어져갔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할머니에게 곧잘 하던 안부전화도 추억 속에 묻어버렸다. 온 가족이 모인 어느 날 할머니는 쌍둥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할머니한테 전화 좀 하고 그래.”


그때 할머니는 밝게 웃었고, 쌍둥이들은 멋쩍게 웃었다.



한 3년 전쯤인가? 뜸하게 찾아오는 내게 어머니는 푸념하듯 말했다.


“나이 먹으니까 애들이 자꾸 보고 싶어진다. 별아도 보고 싶고, 수인이도 보고 싶고……. 잘 때도 아른거려.”


그때 나는 그냥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애들 데리고 더 자주 올게요, 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눌러 삼켰다. 핑계 같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간 괜히 어머니에게 미안함만 더 커질 것 같아서 조그마한 웃음으로 넘겼다.


3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별아도 핸드폰 동아리에 끼었다는 거다. ‘핸드폰 동아리’란 고3 쌍둥이들과 별아를 가리킨다. 쌍둥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할머니 집에 오면 이 방 저 방 처박혀 핸드폰만 하던 베테랑들이고, 별아는 최근에 합류한 새내기다. 별아는 4학년이던 지난해에 처음 핸드폰을 갖게 되었다.


할머니 집에 오면 핸드폰만 하지 말고 할머니랑 이야기도 좀 나누라고 별아에게 가르친다. 하지만 별아도 머리가 굵어진 터라 아무리 부모라도 시시콜콜 행동을 강제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종종 오빠들과 핸드폰으로 같이 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더 통제하기가 뭣하다. 어머니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지 ‘아주 가끔’ 손주들한테 섭섭함을 비치기는 하지만 핸드폰 동아리의 활동을 간섭하지 않는다. 한 가지! 어머니가 ‘아주 가끔’, 특히 별아에게 섭섭함을 표할 때 나는 가슴이 찔린다. 별아의 핸드폰은 바로 어머니가 준 생일선물이기 때문이다. 내심 어머니는 핸드폰을 사주면서 별아가 더 자주 전화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에게 전화 좀 자주하라는 당부를 받은 그날도 별아는 줄곧 핸드폰만 했다. 여름방학이라 학기 때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있을 텐데 연락이 없었으니, 어머니는 자못 서운했던 모양이다.


어머니 마음이 십분 이해간다. 그 마음을, 어머니나 어머니와 같은 어르신은 불쾌할지 모르겠지만, ‘노인성 분리불안’이라 표현하고 싶다. 나이 들수록, 늙어갈수록 가족과 분리될까 봐 염려되는 게 노인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노년에는 아무래도 죽음을 무시하고 살기가 더 어려우니 분리불안이 늘 자리하고 있을 듯싶다. 나의 오판일지 모르겠지만. 그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가슴이 묵지근하다.


우스갯소리지만, 요즘 어머니가 별아에게 용돈 주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만큼 별아가 자라서 씀씀이가 커진 까닭이다. 나는 별아의 성장을 인정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장난삼아 삐딱한 시선을 던진다. 그 용돈은 무언의 ‘뇌물’일지 모른다. 할머니한테 자주 오고, 자주 전화하라는 바람을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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