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피하기 사랑법
사촌여동생 결혼식 날, 결혼식 하객의 의무를 다하고 피로연장에 갔다. 형과 형수, 부모님이 한 식탁에, 우리 네 식구가 또 한 식탁에 앉았다. 몇 걸음 떨어진 곳이었지만 부모님 식탁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가는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뷔페식이라 저마다 자리를 들고 나기 바빴고, 나는 수인이를 챙기는 데 신경을 기울이고 있던 터였다.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가왔다.
“내가 먼저 가련다. 천천히 먹고 와라.”
나는 아버지가 다른 볼일이 있는 줄 알고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네, 조심해서 가세요.”
별아도, 수인이도 한목소리로 밝게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아버지는 미소 띤 얼굴로 손녀들에게 손인사를 건넨 뒤 자리를 떴다.
배가 불러 더는 못 먹겠다 싶을 때쯤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먼저 간 이유를 듣게 되었다.
“형 차에 앉을자리가 없어서 먼저 가신 거라구?”
토요일이지만 회사에 출근했던 형은 결혼식장에 차를 가지고 왔다. 회사 일을 마치고 혼자 결혼식 중간에 온 거다.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지하철을 타고 왔다.
형과 부모님은 식사 중에 집에 가는 방법에 대해 의논했다고 한다. 형네 집은 부모님 집과 차로 1시간 거리, 우리 집은 부모님 집과 마을버스로 20분 거리. 그래서 형은 부모님 집에 우리 모두를 데려다준 뒤 본인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형의 차가 5인승이라는 점이었다. 결혼식장에 모인 가족은 모두 여덟 명, 그중 아내는 결혼식장에서 치킨집으로 바로 출근할 예정이었다. 아내가 빠지면 일곱 명이 남게 되는데, 아이들 몸집이 작다 해도 5인승 차에 다 끼어 타는 건 위험했다. 때문에 아버지는 다른 가족을 위해 스스로 빠지기로 작정했다.
“그런 줄 알았으면, 말씀하시지. 내가 지하철 타고 가면 되는데…….”
“아버지가 넌 애기들 봐야 한다고 해서.”
아내와 나는 결혼식 접수를 맡았기 때문에 결혼식장에 일찍 왔다. 그 바람에 별아와 수인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와야만 했다. 아버지는 손녀들이 집에 돌아갈 때마저 엄마 아빠 없이 가는 게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 몰래 손을 쓴 게 아닐까 싶다. 혹시 형과 어머니에게 “내가 사라질 때까지 지하철 타고 가는 이유를 둘째아들에게 말하지 말라.” 하고 특명을 내린 건 아닐까?
아무튼 아버지의 희생 덕분에 나는 두 딸과 함께 편하게 집에 올 수 있었다. 일차로 부모님 집에 도착해서 먼저 와 있던 아버지의 환한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얼마나 송구하고 감사했던지…….
어른의 위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겐 ‘자리 피하기 사랑법’이 있는 듯하다. ‘자리 피하기 사랑법’이란 어린 사람들, 아랫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려는 심리라고, 나는 정의한다. 장모님만 봐도 그렇다. 내가 처가에 가면 거실에서 편하게 텔레비전을 보라는 듯 안방으로 들어간다. 한숨 푹 자라며 일부러 손녀들을 데리고 쇼핑을 가기도 한다.
똑떨어지는 예시는 아니지만, 부장님이 회식 때 일찍 자리를 뜨고 2차는 부하직원들만의 자리로 만들어 주는 상황에 빗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경우는 부하직원들의 암묵적인 요구(혹은 강요)에 떠밀리듯 피하는 면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속 뿌리에 부하직원을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이런 배려는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 ‘자리 피하기 사랑법’을 떠올리면서 나는 뜨끔했다.
‘혹시 나도 부모님에게 자리 내주기를 무언으로, 말로, 행동으로 요구한 적은 없었을까?’
왠지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틀림없이 있을 터였다. 내가 몰라서,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아니, 꽤 많은 것 같았다. 부모님이 스스로 자리를 피하게끔 만든 일들이!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줄인 일, 함께 있을 때 무뚝뚝했던 일, 도움주려고 할 때 알아서 한다며 거절한 일…….
부모님은 이런 아들의 마음을 알고 피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나는 그 사랑을 받으면서도 눈치 채지 못했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뜨끔했던 가슴이 철렁했다. 장모님 얼굴이 떠올라서.
‘보나마나 나는 장모님한테도 똑같이 굴었을 거야.’
부끄러웠다. 나는 부끄러워서 생각을 딱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