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포비아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거의 안 탄다. 딸들과 함께 있을 때도 운동을 하자면서 걸어서 오르내린다. 딸들은 아이답게 툴툴대지만, 4층이라서 크게 불평은 안 한다. 나 혼자서는 무거운 짐을 들었을 때 빼고는 계단을 뛰어다닌다. 사십대 초반까지는 거뜬했는데, 지금은 ‘그럭저럭’ 할 만하다. 아무튼 조만간 뛰는 건 힘들어질 전망이다.
엘리베이터에 관한 서글픈 추억이 하나 있다. 2년쯤 전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은 무척 더웠고, 나는 땀을 비처럼 흘린 상태였다. 여느 때처럼 계단을 달려오르려는데,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서 있었다. 많이 지쳐 있던 터라 그냥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4층 버튼을 누른 뒤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갔다. 에너지 절약을 한답시고 ‘닫힘’ 버튼은 안 누른 거다.
몇 초쯤 멍하니 있자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닫혔다. 그런데 닫히자마자 다시 열렸고, 여섯 살배기로 보이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깡총 뛰어들었다. 내가 타 있는 줄 모르는 눈치였다. 아이는 들어오자마자 닫힘 버튼과 10층 버튼을 꾹꾹 눌렀다. 순간 ‘엄마는 없나? 혼자 다니기엔 아직 어린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이가 나를 향해 돌아섰고, 우리는 눈이 딱 마주쳤다.
“으어어…….”
갑자기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겁에 질린 눈에서는 눈물이 터지기 일보직전!
‘낯선 아저씨랑 같이 있는 게 무서운 거구나!’
본능적으로 이 생각이 든 나는 또 본능적으로 아이를 가라앉혀야 한다는 의무에 사로잡혔다. 얼른 내릴까 했지만 엘리베이터는 이미 올라가고 있었다.
“으응, 괜찮아.”
엉겁결에 괜찮다는 말을 뱉으며 애써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아이의 얼굴에서 두려움이 조금 지워졌다. 나는 일부러 엘리베이터 천장에 눈길을 던지며 ‘아저씨 너 안 볼게’ 하고 신호를 주었다. 아이에게서 별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는 곧 4층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이 몇 배 더 길게 느껴졌다.
문이 열리자마자 잽싸게, 하지만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내렸다. 문이 닫히는데 괜히 뒤통수가 따가웠다. 픽, 엷은 웃음이 입술 새로 비어져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아이는 ‘아저씨 포비아(phobia 공포증)’를 앓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내가 아저씨라는 사실이, 어린아이에게 공포감을 주는 아저씨라는 현실이 서글펐다. 아저씨를 무서워하는 꼬마아이를 혼자 다니 게 두는 그 부모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누굴 탓하겠는가. 다 나와 같은 ‘아저씨’ 탓인데.
세상엔 착하고 듬직한 아저씨도 많지만, 나쁘고 못 믿을 아저씨가 적다고 보기도 어렵겠지 싶다. 낯부끄럽지만, 범죄 뉴스에서 우리는 무서운 아저씨를 종종 마주한다. 강력범죄를 비롯해 어린이를 대상으로 유괴, 납치, 성범죄 등을 저지르는. 그러니 아저씨를 향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게 당연하다. 누군가의 행동은 ‘대표성’을 띠기 마련 아닌가. 가슴 아픈 예이지만, 몰카를 당한 여성에게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남성이 몰카범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별아도 학교에서 이렇게 안전 교육을 받았다.
“낯선 아저씨가 내 몸을 만지려고 하면, ‘싫어요’, ‘안 돼요’,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엘리베이터의 그 여자아이도 유치원이나 엄마 아빠에게 아저씨에게 당하지 않는 ‘안전 교육’을 받았을 거다.
세상의 안전을 지켜야 할 아저씨가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설핏 섭섭한 기분도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아저씨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더 잘하는 수밖에!
좀 의아하게도 그날 이후 다시는 그 여자아이를 보지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더라도 아파트 놀이터나 동네 길에서 한 번쯤은 마주칠 듯한데, 혹시 얼마 안 돼 이사를 갔을까? 그랬다면 새 동네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자라나기를 기도한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그 동네 아저씨들이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