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 처먹은 아들의 엉터리 심리학 8

불효자의 고개

by 작은별송이

우리 동네엔 높은 언덕이 많다. 어디 가려면 고갯길을 넘거나 언덕바지를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동네는 한적하고 공원과 놀이터도 많아 살기 좋은데, ‘높이’가 문제다. 어린아이, 어르신,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그 높이를 안고 사는 건 참 만만치가 않다. 무더운 날이나 추운 날엔 몇 배 더 벅차다. 무더운 날 언덕의 햇볕은 땡볕으로 내리쬐고, 추운 날 언덕의 바람은 된바람으로 분다.


부모님 댁도 언덕에 있었다. 4년 전까지는. 그 언덕은 본디 작은 동산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친구들과 소나무에 오르고, 아카시아를 따먹고,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벌였다. 조금 컸을 때는 산꼭대기에 서서 달구경에 빠지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였던 동산이 어느 날 깎여 나갔다. 깎여 나가 반반해진 자리에 5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가 서고 9년쯤 지났을 무렵 우리 가족도 그 아파트의 주민이 되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이후 나는 대학 진학, 군입대, 취업 등으로 둥지를 이곳저곳 옮겨 다녔다. 부모님은 재건축으로 인해 언덕 아래로 잠시 이사했다가 새로 지은 아파트로 다시 들어갔다. 재건축 기간 몇 년을 빼면 언덕에 줄곧 머무른 셈이다.


서울 다른 동네로, 전라도로, 강원도로 떠돌던 나는 결혼하면서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신혼집을 동네 가장 낮은 지대에 마련하면서 부모님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언덕 기슭의 우리 집에서 언덕바지의 부모님 댁까지는 걸어서 15분쯤, 마을버스로는 12분쯤 걸렸다. 마을버스가 빙 돌아서 가기에 걷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어쩌다 마을버스가 늦게 오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


여하튼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부모님을 자주 찾아뵐 수 있는 거리였다. 비탈길이 힘들긴 해도 찾아뵈어야겠다는 의지를 꺾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게을렀기에 부모님 댁에 이따금 갔다. 육아를 하면서는 홀몸일 때보다 횟수를 더 줄였다. 그래도 가게 되면 부모님 자동차를 정비하든, 누수를 점검하든, 음식쓰레기를 내가든 뭔가 착한 일을 했다(물론 맨날은 아니고). 아주 가끔은 그냥 안부를 확인하러 들르기도 했었다.


그런데 4년 전 부모님이 고개 너머 지하철역 근처 평지로 이사 간 뒤에는 방문이 더 뜸해졌다. ‘아주 가끔’ 그냥 안부를 확인하러 들르는 일은 아예 없어졌다. 원인은 고개였다. 정말 우습게도 그 고개 하나 넘는 게 이상하리만치 힘들었다. 그래봐야 걸어서나 마을버스로나 10분쯤 더 가게 된 건데, 그 거리가 참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스스로 더 멀리 떨어뜨린 건지도 모르겠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외출하고 오면 일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나도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핑계들로 발길을 줄인 것은 아닌지……. 그 핑계들은 퍽 오래전부터 써먹던 거다. 케케묵은 핑계를 대는 내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니까 ‘부모님 댁이 멀어져서 못 가겠네.’ 하고 주저앉아 버린 것은 아닌지…….


“넌 어쩜 찾아오지도 않냐? 전화도 없고.”


언젠가 어머니가 이렇게 타박을 했었다. 찾아가지 않은 건 둘러댈 수 있어도, 전화를 안 한 건 입이 열한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건 ‘빼박 증거’다. 내가 스스로 부모님을 멀리했다는.

할 말이 없는 나는 이런 군색한 변명이나 내놓았다.


“카톡으로 했으면 됐지.”


부모님이 평지로 이사 간 까닭은 이제 언덕을 오르내리기가 힘겨워져서다. 나는 그 이유를 뻔히 알면서도 찾아뵈지 않았다. 지하철역 부근으로 옮긴 것 역시 기력이 쇠해졌기 때문이다. 자녀로서는 더 효도를 해야 할 시점이 온 거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슬며시 외면했다. 나도 힘들다는, 억지 핑계로.


어릴 적 정겨운 추억의 고개는 중년인 내게 ‘불효자의 고개’가 되었다. 나는 잘 자라지 못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아파트가 사라지고 그 옛날 그 동산이 되살아난다면, 다시 그 동산에 오른다면 한없이 부끄러울 것 같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불효자의 고개가 있을까? 나만 그런 걸까? 솔직히 다른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 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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