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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따 Sep 17. 2022

방황의 서른다섯,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하다.


나는 서른여섯에 주니어 개발자가 되었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근무하고 있고 이제 6개월 차다. 어떻게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시작했던 시기부터 이력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보고 또 입사를 해서 지금까지의 경험과 기억들을 회고하며 기록해두려고 한다. 이제 글을 적으려니 조금 미화되거나 왜곡되기도 할 것 같은데 최대한 날 것대로 써야지. 그 시기에 이런 회고글들을 남겨뒀더라면 감정이나 상황이 더 다이내믹했을 텐데 좀 아쉽긴 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기억을 정리하고 가공해서 글로 남겨 놓으면 멋진 자산이 되리라.


# 나도 한 때는 사장님이었는데..

서른 하나, 작게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4년 동안 조금씩 꾸준히 성장했고 부족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서른다섯, 모두가 힘들었던 코로나.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함께했던 내 파트너 회사가 어렵게 되고 그 타격이 나에게 까지 왔다. 받아야 할 거래대금이 밀리고 현금이 돌지 않았다. 관계가 깊이 쌓였던 파트너 회사여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코가 석자면서 이해는 무슨.. 조금 후회가 된다. 그래도 어떻게든 사업을 유지해야 할 것 같아 공사현장 막노동을 시작했다. 낮엔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엔 노트북 앞에 앉아서 처리해야 될 것들을 챙기며 또 일을 했다. 자존심을 챙기고 실패감을 느낄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내게 말은 못 하지만 속으로 속상해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6년을 함께하고 다음 해에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도 있었으니. 


# 내 인생 진짜 괜찮을까?

막노동과 사업을 병행하며 어떻게든 사업을 살려보려고 고군분투를 했는데 문득 깨달았다. '놓지 못하고 있구나.. 억지로 붙들고 있구나..' 새로운 걸 잡으려면 양손에 움켜쥐고 있는 걸 놓아야 한다. 그때부터 고민을 했다. 내 삶을 어떻게 다시 그려가야 할까. 대학 전공도 잊힌 지 오래, 장교로 근무하면서 헬기조종을 했지만 그 경력도 잊힌 지 오래, 내가 가진 것으로는 살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시기에 뉴스 기사를 보게 된다. 웹이든 앱이든 서비스를 하고 있는 기업들의 몸이 커져가면서 개발자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고 개발자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생겨나고 나이 상관없이 비전공자도 개발자를 할 수 있다는 기사였다. 관련된 기사나 정보를 좀 더 자세히 찾아보니 지금 만큼 넘쳐나진 않았지만 개발자 양성을 위한 국비지원 프로그램이나 부트캠프가 몇 군데 있었다. 그리고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알아보니 내 성향과 잘 맞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한 번 시작하면 몇 시간을 집중할 수 있는 엉덩이의 무게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잠을 잘 못 이루고 매뉴얼을 중요시하는 성격.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국비지원 프로그램이 나은지, 부트캠프가 나은지, 각각 어떤 기술을 가르쳐주는지, 내가 있는 지역에 개발자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회사가 있는지, 회사마다 어떤 기술을 쓰는지 등등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며 2 -3 주 가량 고민을 했고 도전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 한 번 해보자. 개발자!

지금은 국비지원 프로그램이나 부트캠프가 넘쳐나지만 내가 공부를 시작할 시기에는 선택지가 몇 없었다. 본인의 노력에 의해 달라지긴 하겠지만 국비지원 프로그램은 수료 후에 이력서를 넣을 회사에서 인정을 해줄지, 강사들이 잘 이끌어 줄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찾아보지 않았고 부트캠프 몇 군데를 비교해보고 선택하게 되었다. 근데 내가 지금 다시 그 시기로 돌아간다면 국비지원도 부트캠프도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기 싫어서 일을 하면서 저녁에 공부를 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그래서인지 심도 있게 공부한다는 생각보다는 훑고 지나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해도 될 것 같아서 여기까지. 그렇게 나는 낮엔 막노동을 하며 저녁엔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공부했다. 참 열심히 살았다. 



한 여름, 길도 없는 가파른 산에 길을 만들며 데크 계단을 설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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