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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따 Nov 20. 2022

나는 살아남았다. 빡센 사수로부터.

내가 개발자로 처음 입사한 회사는 스타트업이었다. 서비스 분야를 확장하고자 하나의 팀을 더 꾸리기 위해서 채용을 하고 있었고, 내가 입사하기 전에 우리팀은 마케팅을 담당하는 이사 1명, 개발팀장 1명, 기획자 1명, 백엔드 개발자 1명, 디자이너 1명으로 총 5명이었고 나를 포함한 프론트엔드 개발자 2명을 새로 채용해서 우리팀은 7명이 되었다.


개발팀장은 17년차 개발자였고 백엔드 개발자는 5년차였는데 입사한지 2달 정도 된 상태였다. 나를 포함해 새로 채용된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1년 정도의 경력이 있는 개발자였지만 팀에서 사용하는 스택은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개발팀장의 경우 주니어로부터 기대하는 실력의 기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백엔드 개발자는 달랐다.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의 경우에는 면접볼 때 정말 기본적인 질문에도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백엔드 개발자가 이 정도 수준의 사람과는 같이 일 못한다고 본인은 반대했고 그래도 개발팀장은 의지를 보고 한 번 뽑아 보자고해서 뽑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백엔드 개발자는 굉장히 빡빡하고 기준이 높은 사람이었다. 전반적인 케어는 개발팀장이 하겠지만 나의 사수는 이 백엔드 개발자였다. 


#뭐? 사수가 나보다 다섯살이 어리다고?

사실 나는 나이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장교생활을 하면서도 익숙했던 부분이고 업무에 있어서 경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역을 존중해주고 사람대 사람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 예우?를 해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근데 내 사수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원래 성향도 본인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지만 내가 나이가 많으니 더 의식해서 나와 동기를 누르려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한 숨으로 답답함을 표현하고 그런 것도 모르냐는 늬앙스의 표현들이 상처가 될 때가 많았다. 그로 인해 참기 어려울 때도 참 많았다. 나도 자존심이 센 편이고 욱하는게 있는 성격이라 마음을 다스리기가 참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개발팀장을 통해서도 사수가 나와 동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전해 듣곤 했다. 물론 동기부여를 해주기 위해서 많이 필터링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나는 어떤 경험을 하든 처음은 있고 그 시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성장과 정체를 결정하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어떤 소리를 하든 젠틀하게 '아, 제가 몰랐던 부분이네요.', '그 부분 더 공부해볼게요. 지적해줘서 고마워요.' 이런 태도로 그를 대했다. 점심을 먹고 같이 산책하면서 그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도 서로 오가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대 사람으로 관계가 쌓이면서 사수가 나를 좋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기 싫은 신입에서 실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런 태도면 가르쳐 주면서 같이 일할 수 있는 신입이 되었다. 2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사수의 칼날

같이 입사한 동갑내기 동기는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는 일을 못하겠다고 퇴사를 했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참 많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사수와 동기의 의견 충돌로 생긴 감정섞인 언쟁이었다. 동기는 끝까지 예의를 갖추면서 얘기를 했지만 사수는 그게 아니었다. 감정이 격해지는걸 느끼고 내가 말리긴 했지만 그 찰나에 내뱉은 말은 '여긴 직장이고 내가 상사다. 나이 어리니까 만만하냐.'였다. 


사실 사수는 동기로부터 쌓인 감정이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 동기는 보통의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천성이 느긋하고 여유가 있다. 그리고 갈등을 싫어해서 좋은게 좋은거지 하면서 늘 서글서글하게 웃고 젠틀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편이다. 하지만 동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고 행동에 드러난다. 그리고 여유가 없다. 업무적으로 쫒길 땐 출근해서 말한마디 하지 않고 일만 한다. 본인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할 땐 주변 사람이 멋쩍을 정도로 감정이 상했다는게 드러났다. 그리고 적당히 팀원들과 어울리고 점심도 같이 먹고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다같이 점심을 먹을 때도 혼자 점심을 먹고 다같이 산책을 할 때도 혼자 산책을 했다. 이 부분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복합적으로 봤을 때 썩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수도 복합적으로 봤을 때 동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다. '실력도 없으면서 사회생활도 안하려고 하네?' 이런 류의 평가였겠지. 그 덕에 내가 비교적 좀 더 나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는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퇴사를 했다.



#이제는 누구보다 고마운 사람

입사를 한지 8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8개월 동안 우리팀도 많은 일을 겪으며 전우애가 생겼고 업무 외적으로도 모두 끈끈한 관계가 되었다. 스타트업이라 어쩔 수 없는 명확하지 않은 미래 탓인지 사수는 내 앞으로의 커리어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응원해준다. 내가 질문을 하면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를 때도 사수는 내가 모르는 부분을 파악해서 공부해보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요즘은 수십만원이 되는 강의를 공유해 주기도 하고 매주 과제를 내주고 피드백을 해준다. 피드백이 여전히 날카롭긴 하지만 서로의 진심을 알고 있으니 그 날카로움이 좀 무뎌지기도 했다. 잘 이끌어준 사수 덕에 이제는 업무가 좀 익숙해졌고 나쁘지 않은 속도로 괜찮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내고 있다. 피드백보다는 칭찬이 더 많아지기도 했고. 


누군가 그랬다 시간이 지나서 남아있는 건 결국 좋은 사람이라고. 지금 사회는 내가 드러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남의 부족함을 들춰야 하고 그렇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해야 한다. 나의 뛰어남은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남는 게 뭘까. 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다. 셈이 빠르기 보다 느긋하고 때로는 손해를 보는 사람이고 싶다. 알아도 적당히 모른척 할 줄 알고 하고 싶은 말이 열마디여도 한마디 정도만 하는 사람이고 싶다. 말하기 보다는 듣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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