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따 May 09. 2023

정리해고 당하고 제주도로 온 개발자.

그 간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난 2월, 개발자로 처음 취직한 회사에서 우리 팀이 해체돼서 정리해고 되었고 3월에 제주도로 내려와 구직을 하고 4월에 이직을 해서 지금은 제주도의 it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가 제주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고 있다니.

 

#

가을 쯔음부터 회사가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조짐은 여름부터였고.

사실 회사가 불안한 것은 둘째고 고작 4명밖에 안 되는 팀 안에서 팀원들과의 관계가 좋지는 않았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3명(백엔드 개발자, 프론트엔드 개발자(나), 디자이너)은 관계가 좋았다. 돌이켜보면 팀이 해체된 것도 결국엔 팀장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개인 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팀장은 젠틀한 척, 다 이해하는 척, 다 들어주는 척 하지만 젠틀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 듣지 않고 결국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요즘 말로 꼰대였다. 어쩌면 꼰대 정도는 팀장에게 좋은 표현일 수도.

 

인성은 논외로 하고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를 적으려는 찰나, 리더십도 어쩌면 인성의 연장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팀장 이야기만 해도 엄청나게 적을 수 있다.)

 

우리 팀은 리더십의 부재가 가장 컸다. 우선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대표와 팀장의 뜻이 맞지 않았다. 대표는 투자유치를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개발팀에 요구하곤 했는데(내 생각엔 당연한 요구이다.) 그때마다 본인의 방향과는 맞지 않지만 대표의 뜻이니 따른다. 그래서 실패는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뉘앙스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곤 했다. 팀장이 팀에 책임을 안 지면 누가 책임을 지나. 이런 마인드는 서비스를 런칭하고 기능을 하나씩 추가하면서 더 심해져 갔다. 결국엔 대표가 서비스 기획과 개발의 방향성에 대해서 모두 팀장에게 위임을 했지만 그 이후부턴 말을 바꿔서 이 서비스는 내가 원하던 서비스가 아니다라며 또 책임을 회피하며 월급 받으니까 일한다는 마인드로 일을 했다.

 

투자금도 간당간당한 마당에 이런 마인드의 팀장 아래에 있으니.. 목숨 걸고 매달려도 성공할까 말까 하는 스타트업인데 팀원들은 목적과 열정을 잃어갔고 결국엔 어차피 안 쓸건대. 어차피 안될 건데.라는 생각으로 까지 번지며 대충 기능들 추가하면서 시간만 때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규모가 좀 있는 투자회사에게 우리 팀을 스핀오프 하는 조건으로 투자를 받게 되었고 새로운 활력을 기대하며 3월에 스핀오프를 계획했다. 그런데 스핀오프 이후 새로운 팀의 대표를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엔 팀이 해체가 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팀을 해체한다는 것은 사실 명분이라고 생각한다. 대표는 팀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했지만 팀장이 책임을 전가하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팀원들도 팀장으로 인해서 슬슬 지쳐가던 시기였다. 대표는 팀장, 팀원들이 프로젝트에 마음이 크지 않은데 스핀오프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팀을 해체하자고 했다. 그렇게 1년 동안 그래도 열심을 쏟아부었던 서비스는 중단이 되었고 팀은 해체되었다.

 

#

내가 진짜 제주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22년 여름 여자친구와 4박 5일 동안 서귀포에서 여름휴가를 보냈었는데 여자친구는 그 시간이 참 좋았나 보다.

 

여자친구의 직장에서 제주도와 강원도는 격오지로 분류가 돼서 해당 지역으로 발령을 신청해서 근무를 하면 주거지원금도 주고 월급도 더 줬는데 마침 지원을 받는다는 공고를 여자친구가 보고는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 결혼 시기이기도 하고 나는 새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어서 고민을 해보자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떻게 타이밍이 이렇게 잘 맞았는지.

 

결국 여자친구도 나도 제주도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서귀포에 집을 구했고 전입신고도 했다.

 

#

정리해고를 당했으니 어쩔 수 없이 다시 이직을 해야 되는데 사실 걱정이 되긴 했다. 개발자로 1년을 채우긴 했지만 내 경력이 그렇게 인정을 받을지 확신이 들지도 않았고 제주도에 개발직군의 회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개발직군 공고를 보니 50개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50개 중에서도 내 스택과 맞는 회사는 진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러니 걱정을 할 수밖에.

 

3월에 제주로 내려와서 이직 준비를 하면서 내가 어느 정도 끌리기도 하고 내 경력으로 비벼볼 수 있겠다 싶었던 곳은 딱 다섯 군데였다. 과연 이 다섯 군데 중에 나를 불러줄 곳이 있을까.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을 설치기도 했고 또 한 켠으로는 개발자로 이직이 안되면 목수나 하지 뭐. 이런 생각도 했었다.(목수 초보, 일당 18만원 구인 광고를 봐서) 그리고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니 개발시장이 작은 만큼 개발자도 없다. 나를 안 뽑으면 누굴 뽑나. 이런 마인드를 가지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리고 다행히 나를 좋게 본 회사가 있어서 내 경력으로는 넘치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

다사다난하고 불안했던 봄이었지만 이제 편한 마음으로 여름을 맞는다.

지난 회사에 다니는 동안 백엔드 개발자의 도움으로 빡세게 공부를 한 덕에 지금 회사에서 한결 편하다. 여가시간에는 항상 공부를 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 적당히 목표를 세우고 적당히 공부한다. 쉬는 날엔 여자친구랑 여기저기 바람도 쐬러 다니고 좋은 카페, 맛있는 음식점을 다니면서 쫓기지 않는 삶을 산다. 제주도로 여행 오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한라봉을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결국엔 모든 게 다 잘 풀렸다.

이 블로그에 제주여행 카테고리도 추가해야지.

작가의 이전글 나는 살아남았다. 빡센 사수로부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