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가죽공방 아저씨의 ‘자아’ 탐구생활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인간은 할 수 있지만 AI는 할 수 없는 것” 이걸 찾는 일이었다.
왜 이런 접근을 하게 되었는지 근사한 이유 따윈 없었다.
이것 말고는 ‘인간과 AI의 자아’를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AI를 비교하는 사고실험을 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전문용어로 ‘뇌피셜’이라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내 학문적 깊이는 딱 이 만큼 좁고 얕은 수준이었다.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영감’이었다.
논리적으로 절대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창조적인 발상.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AI가 ‘영감’을 구현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영감’이 계산을 통해 얻어지는 값은 아닐 거라고 봤다.
인간이 학습을 통해 영감을 얻지 못하듯, AI도 안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물론 근거는 없었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건 안 된다” 싶었다.
그런 이유로 AI가 가질 수 없는 인간 자아의 요소로 ‘영감’을 정의할 수는 없었다.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막연한 느낌만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는 없었으니까.
결국, 자아의 요소로 처음 꺼냈던 ‘영감’은 서랍 안쪽에 다시 넣어두었다.
영감을 제외한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AI도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을까?”
내 사고실험에서 AI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것이 스마트 워치의 형태를 하건 휴머노이드 로봇의 형태를 하건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걸 경험으로 인식하느냐”였다.
여기서 또 한 번 발목이 잡혔다.
AI가 인간의 감정을 느끼느냐 보다 더 큰 근본적인 문제였다.
내가 AI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AI를 접해 본 적이 없으니 이해를 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때마다 서랍 속에 몽땅 넣어 두었다.
가끔 생각나면 잠시 꺼내보고 다시 넣기를 반복했다.
술자리 이후 친구 K와 ‘AI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더 나누었다.
주로 동네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나누었다.
그 친구는 언제나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미래의 AI는 인간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
감히 인간은 AI의 자아 획득 여부조차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 AI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인간을 제거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초등학생도 한 번쯤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구조적으로 ‘AI가 자아를 가질 수 있는가’였다.
쇼핑백을 들고 카페에 나타난 친구 K.
나무젓가락 풍차와 영구자석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이쯤에서 눈치챘겠지만...
모두가 예상하는 바로 그거였다.
어디서 이상한 유튜브를 봤는지, 무한동력에 꽂혀 있었다.
옆 테이블의 여학생 두 명이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친구 K는 작동 원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창피함은 나의 몫이었다.
그날은 어떤 얘기를 해도 기승전 무한동력이었다.
가방끈 짧은 나도 아는 게 열역학 법칙이다.
프로그래머인 친구 K는 이걸 가볍게 무시했다.
친구 K는 자신이 구상 중인 무한동력이 세상을 놀라게 할 거라고 믿었다.
엔트로피 증가로 인해 무한동력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한마디 했다.
친구가 대답했다.
“너는 내가 잘되는 게 그렇게 싫냐”
정말 서운하게 생각하더라.
그래서 조용히 응원만 하기로 했다.
더 이상의 감정 소모는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었으니까.
“혹시 알아... 진짜 성공하면 소고기나 실컷 얻어먹어야지.”
그날 이후.
친구와 지인 그 누구와도 AI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