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밥
어릴 적 강원도의 부엌은 늘 감자의 향으로 가득했다.
어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 커다란 강판에 감자를 갈았다.
그 곱게 갈린 감자즙을 항아리에 담아 물속에 가라앉히면, 바닥에는 노란 전분이 차곡차곡 쌓였다.
시간이 지나 그 전분을 걷어내 말리면, 겨울 내내 먹을 수 있는 감자떡의 재료가 되었다.
처음 찜기에 오를 때는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던 감자떡이, 뜨거운 김을 만나면 말랑하게 변하며 달큰한 향을 피워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맛이 달갑지 않았다.
밥상에 감자떡이 오르면 “또 감자야…”
하며 투덜거렸고, 감자밥이 놓이면 밥숟가락을 멈춘 채 고개를 돌리곤 했다.
감자송편 역시 추석이면 늘 등장했지만, 송편 속의 소박한 소를 보고 친구 집의 화려한 송편을 부러워하던 기억도 있다.
그때는 몰랐다. 지겹다고, 싫다고 투정부리던 그 감자 음식들이 사실은 우리 집을 지켜주는 강원도의 힘이었다는 것을.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고, 흉년이 들어도 식구들을 든든히 지켜주었다.
감자의 고소한 냄새와 푸슬푸슬한 식감은 그 자체로 삶의 끈이자, 강원도 사람들의 땀과 정성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의 맛을 찾아다닌다.
시골 장터에서 만난 감자떡 한 입에, 어린 시절 부엌 가득 퍼지던 김내음이 되살아난다.
감자밥을 한 숟가락 뜨면, 쌀 사이사이에 박힌 감자의 포슬포슬한 식감과 은근한 단맛이 어린 시절의 투덜거림을 무색하게 만든다.
추석에 고향에서 마주하는 감자송편은, 이제는 어떤 화려한 음식보다 마음을 채우는 제일 소중한 한 끼가 된다.
감자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강원도의 바람과 흙, 그리고 어머니의 손길이 담긴 기억이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촉촉한 감자떡의 무게, 김이 오르며 풍기는 따스한 향, 입안에서 퍼지는 담백한 맛은 곧 강원도의 풍경을 불러온다.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나 우리를 살찌운 감자처럼, 나 또한 그 강인한 땅의 아이였음을 깨닫는다.
“어릴 적엔 지겨워서 외면했지만, 지금은 찾아 먹는 맛. 강원도의 감자는 결국 나의 기억과 삶을 버무려 놓은 소박한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