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공기를 얼린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기를 얼린다고요?

by 마루

“공기를 얼린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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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바람도 없고, 공기도 미지근했던 오후였는데, 내 앞에 앉은 친구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응, 공기를 얼려서 전기를 저장한대.”

나는 웃음이 터졌다.
“에이, 그건 무슨 SF영화에 나올 이야기 아냐?”
하지만 친구는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줬다.
‘Liquid Air Energy Storage’ — 공기를 액체로 만들어 전기를 저장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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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꽤나 진지하게 ‘공기를 얼린다’는 주제를 따라가게 됐다.

처음 알게 된 건 이랬다.

태양이 쨍쨍한 날, 태양광 발전은 전기를 많이 만들어낸다.
바람이 거센 날, 풍력 발전기도 미친 듯 돌아간다.
하지만 그 전기가 꼭 그 순간에 필요한 건 아니지 않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남은 전기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으니,
‘공기’를 얼리는 데 쓰기로 한 거다.
아주 단순하고도 놀라운 생각이었다.

공기는 우리가 숨 쉬는 바로 그것.
눈에도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걸 −196도까지 냉각하면, 액체가 된다.

실제로 탱크 안에 물처럼 ‘뚝’ 떨어지는 ‘액체 공기’를 본 순간,
나는 뭔가 새로운 시대의 문턱을 살짝 엿본 느낌이 들었다.

이제 전기가 필요할 땐 어떻게 하냐고?

간단하다.
액체 공기를 다시 기체로 바꾸면, 팽창하면서 압력이 생긴다.
그 압력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말 그대로, 냉장고에 넣었다 꺼낸 ‘에너지’를 다시 쓴다는 얘기다.

이 기술은 공기 배터리, 혹은 액체 공기 저장 시스템이라고 불린다.
세상은 지금, 리튬 없는 배터리를 실험하고 있다.
불타지 않고, 자원이 고갈되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는 전기 저장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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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건, 이게 먼 나라의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개발이 진행 중이다.
기계연구원에서는 하루 10톤의 액체 공기를 만들 수 있는 설비를 테스트했고,
국내 연구진들은 이 시스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터보팽창기,
그리고 콜드박스(초저온 냉각 시스템)를 국산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남겨둔 햇살 좋은 날의 전기에서 시작된다.

나는 아직도 ‘공기를 얼린다’는 문장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상한 건 늘 낯선 것이고,
낯선 건 때때로 아주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어쩌면,
기체와 액체 사이 어딘가에 전기를 숨겨 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세상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을 항상 감싸고 있던 그것.
공기는 이제
단순히 숨 쉬는 것이 아닌,
전기를 저장하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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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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