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마취제와 잔혹한 실험실

​사과 한 알의 유혹

by 마루

달콤한 마취제와 잔혹한 실험실

​사과 한 알의 유혹

실험실의 원숭이는 숨을 거두기 직전, 누군가 건넨 사과를 씹는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과즙은 감미롭다. 그 찰나의 달콤함은 원숭이에게 '살아있음'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지만, 실상은 잔혹한 실험의 연장선일 뿐이다.

사과는 구원이 아니라, 실험체가 마지막까지 동력을 잃지 않게 만드는 시스템의 연료다.

우리는 그 원숭이를 보며 연민을 느끼지만, 사실 우리 또한 각자의 실험실에서 각자의 사과를 씹고 있다.

​절벽 위에서 핥는 꿀 한 방울

옛 벽화 속 한 사내는 절벽에 매달려 있다. 위에서는 검은 쥐와 흰 쥐가 생명줄인 칡덩굴을 갉아먹고, 발밑에는 독사들이 입을 벌린 채 추락을 기다린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사내의 입술 위로 벌꿀 한 방울이 떨어진다.

사내는 죽음의 공포를 잊은 채 혀를 내밀어 그 달콤함을 탐한다.

​이 벽화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듯하지만, 현대의 우리는 그보다 더 정교한 '꿀'에 중독되어 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짧은 영상들,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자극적인 도파민, "초밥 먹을까?"라는 메시지 한 줄에 위로받는 찰나의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처한 위태로운 절벽—상실된 자아, 불안한 미래, 대체되는 인간의 가치—을 잠시 가려주는 가짜 희망이다.

​실허(實虛)의 세계, 인간의 자리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거대한 '실험(Experiment)'이자 실체 없는 '허상(Illusion)'이 뒤섞인 '실허'의 세계다. 시스템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짜 사과를 던지며 실험을 지속하길 종용한다.

계산된 지능(Model C)은 인간의 나약한 본능을 정확히 꿰뚫고, 우리가 꿀방울에 취해 있는 동안 우리의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풍경 속에서도 우리는 묻게 된다. 그렇다면 그 꿀을 핥지 말아야 하는가? 사과를 뱉어내야 하는가?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앞두고 사과를 씹는 그 비논리적인 생존 본능, 꿀 한 방울에 기뻐하는 그 미련한 감정이야말로 기계가 범접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Model I)이다.

우리는 모두 끊어질 줄을 쥐고 꿀을 기다리는 절벽 위의 존재들이다.

현실이 잔혹한 실험실일지라도, 우리가 씹는 사과가 가짜 희망일지라도, 그 맛을 '느끼는' 주체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달콤한 마취제에 취해 잠들 것이 아니라, 그 달콤함을 동력 삼아 눈을 뜨고 내가 매달린 줄의 위태로움을 직시해야 한다.

​사과를 씹는 행위는 굴복이 아니라, 이 가혹한 실험실에서 내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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