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샵
청주의 손
청주에 한 사람이 있었다.
사진사가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앉아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손이 빠르지 않았다.
대신 집요했다.
필름 시절부터였다.
확대경을 들여다보며
연필로 머리카락을 한 올씩 그려 넣고,
칼로 점을 긁어냈다.
사진은 찍는 게 아니라
고치는 거라고 믿던 사람이었다.
그 믿음이
그의 밥이었고
그의 자존이었다.
—
시대가 바뀌었다.
포토샵이 들어왔다.
어떤 사람들은 그때 떠났다.
손맛을 모욕당한 것 같다며.
그는 남았다.
도구가 바뀌었을 뿐
손은 여전히 자기 것이었다.
잡티를 지우고,
주름을 펴고,
빛 반사를 죽이고,
없던 표정을 만들어냈다.
청주에서 소문이 돌았다.
"저 사람 손 거치면
사진이 살아난다."
어디는 청와대 사진도 만진다더라,
그런 말까지 붙었다.
그는 그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청와대 같은 건 관심 없었다.
다만
사진 한 장이 살아나는 순간,
그 순간만은
자기가 여기 있다는 게 느껴졌다.
—
그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많이 걷지는 못했지만
의뢰는 계속 들어왔다.
그의 세계는
책상 위 모니터 안에 있었고,
그 안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바깥은 느려도 괜찮았다.
모니터 안에서만큼은
그가 가장 빠른 사람이었다.
—
그리고
AI가 들어왔다.
—
처음엔 별거 아닌 줄 알았다.
"저런 건 티 난다."
"결국 사람 손 못 따라온다."
그렇게 넘겼다.
사실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
몇 달 뒤,
손님이 줄었다.
처음엔 계절 탓을 했다.
경기 탓을 했다.
자기 홍보가 부족한 탓을 했다.
—
"이건 그냥 앱으로 했어요."
"요즘엔 다 자동으로 되더라고요."
누군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
머리카락은 버튼 하나로 채워졌고,
피부는 슬라이더 하나로 정리됐고,
안경 반사는 클릭 한 번이면 사라졌다.
그가 몇 시간 쓰던 작업이
몇 초로 줄었다.
정확도는
그보다 높았다.
—
그는 오래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AI가 만든 사진과
자기가 만든 사진을
나란히 놓고 봤다.
차이를 찾으려 했다.
—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다만
그 차이를
아무도 찾지 않았다.
—
사람들은
결과만 필요했다.
과정은 필요 없었다.
그가 몇 시간을 들였는지,
몇 번을 다시 했는지,
어느 부분에서 멈칫했는지.
그런 건
사진 안에 남지 않았다.
—
그는 알고 있었다.
이건 경쟁이 아니라는 걸.
이미 끝난 거라는 걸.
다만
끝났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정말 끝나버릴 것 같아서
아직 말하지 않았다.
—
예전엔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누구나 되는 것"이 됐다.
잘하는 것과
누구나 되는 것 사이.
그 간격이
그의 밥이었는데.
—
그는 그대로였다.
몸도,
자리도,
방식도.
바뀐 건
세상이었다.
억울하다고 말하기엔
세상이 잘못한 게 없었다.
그냥
흘러간 것뿐이었다.
물이 낮은 곳으로 가듯.
—
모니터를 켜놓고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예전에는
마감이 밀렸는데
이제는
일감이 없다.
마감이 없는 사람에게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느리지 않다.
그냥
방향이 없다.
—
미래를 생각하면
답이 없다.
답이 없다는 걸 아는데도
자꾸 생각하는 건
포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달리 할 일이 없어서다.
—
그는 두 가지를 안다.
하나는
이 길을 계속 가면
서서히 사라진다는 것.
다른 하나는
AI를 쓰면
자기 자신이 사라진다는 것.
—
이상한 선택지다.
사라지거나,
사라지거나.
—
그래서 그는
세 번째 길을 만들기로 했다.
있지도 않은 길을.
—
AI를 쓰되
티 내지 않는다.
사람이 한 것처럼 보이게
다시 손을 얹는다.
완벽하게 만들지 않는다.
조금 남긴다.
어설픔,
흔들림,
사람 냄새.
—
그건 기술이 아니라
위장이다.
그도 안다.
—
그러나
위장도 손이 필요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위장이 아니다.
수십 년을
사진을 고쳐온 손만이
어디를 얼마나 남겨야 하는지
안다.
—
이제 그는
포토샵 장인이 아니다.
AI 사용자도 아니다.
—
그 사이에 있는
이상한 존재다.
이름이 없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
그리고
그건
청주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
카메라를 드는 사람도,
글을 쓰는 사람도,
사진을 고치는 사람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버티거나,
숨거나,
아니면
이름 없는 세 번째 자리를
스스로 만들거나.
—
그는 오늘도
모니터를 켠다.
의뢰가 있어서가 아니다.
켜지 않으면
자기가 없어질 것 같아서.
—
사진은 찍는 게 아니라
고치는 거라고 믿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믿음은 남아 있다.
다만
이제는 묻는다.
고친다는 게
무엇인지.
—
모니터 안에서
오늘도
그의 손이 움직인다.
느리지만
집요하게.
작가의 말
이 글을 쓴 건 청주의 그 사람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나도 그 사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고, 글을 쓰고, 때로는 AI와 함께 작업한다. 도구가 늘었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다만 가끔은 묻는다.
지금 움직이는 게 내 손인지, 아니면 내 손을 흉내 내는 무언가인지.
답은 아직 없다.
그래도 오늘 모니터를 켰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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