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0. 수녀의 이삿짐

사라진 둥지

by 박진희


추수가 끝난 가을 들녘이 다시 파랗게 채워지고 있었다. 다시 볍씨를 맺을 양인지 잘려나간 벼의 밑동에서 싹이 트고 순식간에 잎이 웃자랐다. 추석이 지나서도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아침 저녁으로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차가워졌다. 수인이 침대 위의 전기요를 켜고 잘 준비를 할 때였다. 마당으로 승합차 한 대가 들어왔다.

“올 사람이 없는데, 이 밤에 누굴까?”

창문으로 불빛이 들어오자 커튼을 제치며 밖을 내다보던 수인이 말했다.

“그러게.”

산이 주섬주섬 겉옷을 걸치고 마당으로 나갔다. 수인도 풀었던 머리를 질끈 묶고 산을 따라 나왔다. 두 사람이 마당을 나왔을 때 승합차에서 중년의 수녀가 내렸다.

“가타리나 수녀님, 이 밤에 무슨 일이세요?”

누군지 알아본 수인이 말했다.

“오늘 하루만, 아니 며칠만 거처할 곳이 필요해서요.”

수녀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누가요?”

“다문화 가정 여성인데, 남편 폭력 때문에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집으로 경찰이 다녀갔어요. 성당엔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고, 가까운 곳은 또 찾아와서 괴롭힐 것 같아서 일이 해결될 때까지 칩거할 장소가 필요해요.”

수인이 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스트 룸이 있으니 며칠이든 거기서 지내시면 돼요.”

수인의 집엔 친척들이 오면 지낼 수 있는 게스트 룸이 있었다. 친척들이 와서 잘 수 있는 여분의 방이 없는 이웃들이 가끔 빌려 쓴다는 걸 수녀도 알고 찾아온 것이다.

“방값은 지불할게요.”

“아닙니다.”

수인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다문화의 집으로 나오는 지원금으로 내는 거니까 받으셔도 됩니다.”

수녀의 표정이 단호했다.

“네, 수녀님. 방은 바로 쓰시면 되세요.”

갈재를 조금만 벗어나도 모텔과 민박집이 즐비했지만, 굳이 이곳으로 온 수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던 수인은 방값을 지불하겠다는 걸 더는 마다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마치자 승합차에서 동남아 여성이 가방도 하나 없이 맨몸으로 내렸다. 어둠 속이라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겉으로 보기에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낯선 타국으로 와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폭행까지 당하고 몸을 피신해야 할 처지에 놓인 여성이 수인은 그저 측은했다. 이런 측은한 마음을 가지는 것조차 미안할 지경이었다. 수인과 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게스트 룸으로 여자를 안내했다. 두 사람이 게스트 룸으로 피해 여성을 안내하는 동안 승합차를 몰고 나간 수녀는 잠시 후 다시 차를 몰고 마당으로 들어와 게스트 룸으로 향했다.

“다문화 가정에 문제가 많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긴급하게 몸을 숨겨야 할 만큼 폭력이 심한지는 몰랐네.”

방으로 들어온 수인이 산에게 말했다.

"민수네 아빠가 그러는데 우리 마을에 있는 다문화 가정에 이혼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데. 국제 결혼해서 제대로 사는 사람이 몇 안 된다고 그러더라."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게. 아이들도 문제지. 집집 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대부분 여자만 떠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더라고."

"그럴 수밖에 없겠지. 경제 능력이 안 되니까."

"여자가 애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도 문제지. 낯선 타국에서 어떻게 살아내겠어."

"그나저나 수녀님들도 다문화 가정을 돌보면서 많이 놀라시겠다.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을 계속 주시해야 하는 거잖아. 수녀님들이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저렇게 피신시키고 경찰들과 만나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겠어. 속세를 떠나 기도 속에 평온을 찾으려고 수녀가 된 분들일 텐데."

이런 말을 나누면서 수인은 문득 산이 얼마나 든든한 존재인가를 생각했다. 두 사람은 마을의 다문화 가정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녀의 승합차가 마당을 빠져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이날의 소요는 마치 숨겨야할 비밀처럼 고요히 사그라들었다.

게스트 룸으로 들어간 여성은 한 번도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수인과 산이 출근으로 집을 비운 사이 게스트 룸이 비어 있었다. 한 집에 머물렀지만 한 번도 얼굴을 대면하지 못한 여성은 어두운 마당에 세워진 승합차에서 내릴 때의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수인은 여성의 이미지가 어딘지 낯이 익었지만 도무지 어디서 봤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그렇게 홀연이 여성이 게스트 룸을 비운 후에도 피해 여성이 다시 집으로 들어갔는지, 들어갔다면 무사한지 궁금했지만 산에게 조차 그 일에 대해서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수인이 둥지 베이커리에서 가타리나 수녀를 만났다. 수인은 평소처럼 단팥빵과 식빵을 사기 위해 간 것이었다. 수녀가 밝은 얼굴로 수인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마침 수녀님도 나와 계셨네요."

"네, 오늘 말리카가 일이 있어서 자리를 좀 채워주고 있어요. 아 그리고 일전엔 감사했어요."

"아! 아닙니다. 방값까지 다 챙겨주시고선 뭘요. 그때, 그 여성분은 일이 잘 해결되었나요?"

잠시 망설이던 수인이 피해 여성의 안부를 물었다.

"그게 그래요. 한 번 경찰이 다녀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서요. 그때 그 엄마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필리핀으로 갔어요."

"필린핀에서 오신 분이었군요. 그럼 영 가버린 거예요?"

"그러기가 쉽나요. 애들까지 줄줄이 있어서……. 좀 잠잠해질 때까지 있다가 올 거예요. 자신도 회복할 시간이 좀 필요하고요."

"아이들 학교는요?"

“어쩔 수 없죠. 상황이 그러니 학교도 나갈 수 없는 거죠. 애가 둘인데 모두 초등학생이에요.”

초등학생인 애들을 데리고 필리핀으로 잠시 피신을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수인은 윤의 말을 떠올렸다.

“엄마, 우리 반 친구 중에 엄마랑 같이 필리핀 가서 학교 못 나오는 애가 있어.”

“학기 중인데, 엄마랑 필리핀을 갔어. 왜?”

“그건 우리도 모르는데, 애들이 진아는 왜 안 나오냐고 물으니까 담임 선생님께서 막 짜증을 내면서 자기도 모른다고 하더라.”

“짜증을 냈다고?”

“음, 선생님이 막 짜증을 내니까 애들이 더 물어보지도 못했어.”

그날 윤과 대화를 나눌 때만해도 수인은 별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나쳤다. 이후 마을 슈퍼에서 우연히 만난 학부모를 통해 진아 아버지가 유별나다는 소리까지 듣게 된 수인은 그때서야 가정 폭력이 발생한 모양이라고 짐작했었다. 게스트 룸에서 머무는 며칠 동안 얼굴 한 번도 보지 못한 피해 여성은 수인과 상관없는 어느 먼 곳의 타인이 아니라 윤과 같은 반 친구의 엄마였던 것이다. 피해 여성의 얼굴이 어딘지 낯이 익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날은 어둠 속에서 서로가 경황이 없어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지만, 언젠가 학교 행사에서 진아의 어머니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민아 어머니의 옆에 서 있던 진아의 아버지까지도. 진아 어머니의 아버지라고 해도 믿을 만큼 나이 차가 많아 보였던 모습을 보며 이런 국제 결혼이 과연 마땅한가 생각했었다.

"그렇군요. 애들도 고생이네요. 아빠라는 사람이 애들 생각해서라도 정신 차려야 하는데……."

"그 정도 정신이 있는 사람이면 이 지경이 되게 하지 않겠지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들이 제일 불쌍해요."

둥지 베이커리의 문을 열었을 때만해도 밝았던 가타리나 수녀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걸 본 수인은 괜한 소리를 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근데, 빵 종류도 그렇고 양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네요. 맛이 있던데, 잘 안 팔리나 봐요."

"그러니까요. 재고가 쌓이면 안 되니까 딱 팔릴 만큼만 만들어요."

"이렇게 적게 팔아서 남는 게 있어요?"

"늘 적자죠. 그것도 걱정이에요."

수인은 그저 건넨 말이 모두 가타리나 수녀의 근심을 건드리는 말인 것 같아 서둘러 둥지 베이커리를 빠져나왔다. 검은 봉지에 담긴 빵이 유난히 헐겁게 느껴졌다.

'좀 더 살 걸 그랬어!'

적자를 면치 못한 채로 몇 해를 더 버티던 둥지 베이커리는 결국 간판을 내리게 되었다. 수인이 둥지 베이커리가 문을 닫게 된 사연을 듣게 된 건 가타리나 수녀가 다문화의 집 아이들을 데리고 여울문화센터를 방문했을 때였다.

“둥지 베이커리는 어떻게 된 거예요? 빵 사러 갔는데 간판이 없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휴 말도 말아요. 적자를 면치 못해서 걱정은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지원을 딱 끊을 수 있는지……. 다문화 여성들이 마을 사람들하고 만나고 소소하게 보람도 느끼던 곳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여건을 갖추는 데만도 많은 예산이 들어갔어요. 그런 걸 아까워하지 않고 없애버리기만 하니 참 안타까워요.”

“문을 닫으라고 그러던가요?”

“예산을 끊어버리니 닫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지요. 제가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제빵기계들이랑 도구들은 모두 처분한 거예요?”

“폐업신고 하고, 군에서 다 처분했어요. 지금 그곳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아마 처분하고 남은 것도 없을 거예요.”

“아까워서 어떻해요. 제빵사 자격증까지 갖춘 분들도 그렇고……. 거기에 들어간 시간이며 비용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게 맞을 텐데 참 안타깝네요. 저는 마을에 빵집이 있어서 좋았거든요. 많이 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빵 생각날 때면 동네에서 살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유기농 우리밀 사용하고 좋은 재료 써서 만든 빵이라 단골이 있었어요.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어서 영 안 될 건 또 아니었거든요. 인건비까지 감당이 안 돼서 그렇죠. 인건비 지원이 없으니 유지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랬구나! 그간 고생한 보람도 없이 많이 서운하시겠어요.”

“서운하다 뿐이겠어요. 제빵사로 일하던 말리카와 엉클지나는 울었어요.”

“아! 둥지에서 일하는 동안 정말 좋았나 보네요.”

“빵 만드는 일을 좋아했어요. 그 덕분에 농사일에서 잠시 벗어날 수도 있었고요.”

수인은 수녀 한 명이 감당하기엔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빵을 살 때마다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일이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좀 더 자주 들러 빵을 살 걸 그랬다는 후회마저 밀려 들었다.

“문화센터에 큰 책이 들어왔다고 해서 아이들이랑 읽으러 왔어요.”

표정을 가다듬은 수녀가 다문화의 집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한 이유를 말했다.

“네, 잘 오셨어요. 매년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또북또북 책을 보내주고 있는데, 이용하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아이들한테 책 읽어주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겨두어도 될까요?”

“그럼요. 얼마든지.”

“활용 사진을 제공처에 보내면 지원을 받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책을 이렇게 크게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찮을 텐데, 수요처에서 잘 활용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죠.”

“얘들아, 이리로 와서 책 읽자.”

가타리나 수녀가 흩어져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아이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답게 수녀의 말을 곧잘 따랐다. 수녀가 책을 읽어주는 동안 아이들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책을 바라봤다. 수인의 눈에 아이들은 아무리 봐도 온전히 한국 사람으로 보였다.

둥지 베이커리가 사라지고, 다문화의 집으로 들어온던 예산도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던 어느날, 가타리나 수녀가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갈재 이장이 성당에 다니고 있어 소식을 들은 수인은 가타리나 수녀에게 전화를 걸어 뵙기를 청했다. 근무지에서 가까운 백반집에 수인이 미리 와서 음식을 주문하고 수녀를 맞이했다.

“수녀님, 이렇게 갑자기 떠나게 되시다니 너무 섭섭해요.”

수인이 두손을 가슴에 얹으며 말했다.

“아이고, 이렇게 섭섭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고 고맙습니다.”

“저만 그렇겠어요. 마을 분들도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요.”

“오래 있었는 걸요. 보통은 4년 안에 다 떠나는데, 전 10년 넘게 있었잖아요. 갈 때가 한참 지났어요.”

“이삿짐은 다 정리하셨어요?”

“짐이랄 게 없어서 여행 가듯이 싸면 돼요.”

“그래도 10년 묵은 짐들을 정리하려면 몇 날 며칠을 싸야할 텐데요.”

“수녀 이삿짐이 트렁크 하나면 됐죠.”

“지금, 여행용 트렁크 말씀하시는 건가요?"

수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전 갈재로 이사올 때 5톤 트럭에 짐을 실었는걸요.”

수녀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웃었다.

“그것도 오래된 가구들은 죄다 버린 게 그래요. 버리면서도 아까워서 이걸 어떻게 리폼을 해볼까 했는데, 사는 값보다 리폼 값이 더 비싸서 포기했죠. 그때 버린 것도 다 가져왔으면 5톤 트럭도 모자랐을 겁니다.”

수인은 말하면서도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10년 넘게 갈재에 살면서 버리고 온 짐이 무색하게 다시 살림살이가 늘어난 것이다. 집에 모두 두지 못해 옥상과 뒤뜰에 창고 두 개를 새로 지어 우겨넣은 짐까지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짐이 있다는 걸 문득 떠올렸다.

그날 백반집에서의 식사가 가타리나 수녀와 마직막 자리였다. 가타리나 수녀를 위해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하던 수인은 수녀의 이삿짐을 생각하며 무게가 없는 손수건을 선택했다. 이것조차 거부할 수 없도록 ‘가타리나’ 이름을 새긴 손수건을 새로 둥지를 틀 곳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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