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 같은 어둠
기타 강사가 첫 수업부터 늦었다. 처음엔 여울문화센터가 외진 곳에 있어서 찾느라 늦었나 보다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시간에도 그다음 시간에 계속 늦었다. 지원처의 담당자가 참관을 오기로 한 날도 15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정해진 수업료보다 웃돈을 얹어주기 위해 지원처와 협상까지 해서 만든 수업인데, 강사의 태도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받는 대우에 비해 아니 꼭 대우가 아니라도 수업에 대한 기본자세가 안 된 사람처럼 보였다.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만 열리는 강습인데다, 각종 국경일이 하필 수요일로 몰리기까지 하는 바람에 달이 지나도록 자리가 잡히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 수업이 있는 당일 기타 강사에게서 오후 느지막이 전화가 걸려왔다.
"이건 정말 아닌 거 아는데……, 저도 당일에 이러는 거 아닌 거 아는데요."
'이 인간이 지금, 수업을 펑크내겠다는 거야. 그러기만 해봐.'
수인이 하고 싶은 말을 주워삼켰다.
"아! 제가 정말 사정이 생겨서 그러는데, 내일로 수업을 옮길 수 없을까요?"
'내 이럴 줄 알았어. 센터를 뭘로 보고. 수업을 장난으로 아나.'
"선생님, 그렇게 되면 참여율이 떨어질 거예요. 다들 어렵게 시간 내서 다니는 건데, 갑자기 요일을 바꾸시면 수업이 제대로 되기 어렵죠."
"그렇긴 한데, 제가 사정이 생겨서 그래요. 그럼 그냥 수업을 빼고 다음 주에 할까요?"
'지금 뭐라는 거야. 차라리 그만둔다고 그래라.'
"선거일에도 빠졌고, 이번 달엔 근로자의 날에다 부처님오신날까지 모두 수요일에 몰려 있어서 수업이 얼마 안 되는걸요. 수업에 재미 못 붙이면 회원들 빠져나가는 건 시간 문제예요."
늘 지각하는 강사 때문에 매시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참에 너무 쉽게 편의를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인이 지금까지 여울문화센터를 거쳐 간 강사들에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러니까요. 오늘은 도저히 안 돼서 그래요."
"사정이 그러신데, 어쩔 수 없죠, 뭐. 일단 단톡방에 공지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죄송하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말만 감사하다지 목소리는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수인은 면접도 안 보고 뽑은 자기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물밀 듯 밀려왔다. 몇 년 동안 문화 프로그램 강사를 섭외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여울문화센터를 거쳐 간 강사 중 그 누구도 수업 시간에 늦거나 펑크낸 적은 없었다. 인근 도시에서 한 시간가량 자가 차량으로 이동하는 강사들도 시골에 위치한 센터까지 제시간에 잘 도착했다. 그러니 수인이 강사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가져본 적은 거짓말처럼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수인은 아무래도 너무 다급하게 뽑은 게 동티가 난 것 같았다. 이틀 만에 강사를 결정해서 보고해야 할 사정이 있었다. 문화예술 예산이 삭감되다 보니 지원처에서도 프로그램 심사 같은 걸 시작했다. 문화센터 성격에 맞게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려고 했지만, 강사가 작성한 강의 개요가 마음에 안 든다며 거절 의사를 보내왔다. 강의 개요를 수정해 다시 올려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그때 수인은 인문학 강좌 개설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처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씩 조건을 맞춰 수정해주었다. 하지만 어느 선에서 틀어버린 건지 다 된 줄 알았던 기획안이 반려되기를 반복했다. 강좌 개설 시기가 임박한 끝에 지원처 쪽에서 기획안을 내달라는 통보가 왔다. 수인은 거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별생각 없이 기타 수업을 개설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획안도 없이 바로 허가가 떨어졌다. 그렇게 이틀을 남겨둔 시점에 묻고 따질 것도 없이 시간이 맞는 강사를 부르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원했던 수업은 엎어지고 엉뚱한 수업이 어부지리로 개설된 마당에 제시간에 오지 못하는 강사를 보고 있자니 탐탁지 않은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기타 강사의 개인 사정으로 수요일 수업이 목요일로 변경된 날이었다.
'설마 오늘은 늦지 않겠지.'
수업 시간이 다 되어갈 때 단톡방에 회원들의 문자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일정이 있어 참여가 힘들어요."
한 명이 불참을 알리는 메시지를 올리자 아래로 줄줄이 참여가 어렵다는 문자가 달리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바였다. 문제는 강사였다. 수업 시간인 저녁 7시가 지났는데 와야 할 강사는 오지 않고 단톡에 문자가 올라왔다.
"아무도 안 계신 거 아니죠?"
'도대체 어디서 문자를 넣고 있는 거야.'
단톡을 확인한 수인이 속엣말을 주워 삼키며 댓글을 달았다.
"기다리는 회원들 있어요."
차마 늦은 걸 나무랄 수 없어 빨리 오라는 의미로 수인이 댓글을 달았을 때, 다시 문자 하나가 올라왔다.
"제가 좀 늦을 거 같아요."
수인의 인내력을 시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사의 댓글이 올라왔다. 강사는 수업 시간 30분이 지났을 때 들어왔다. 기타도 없이 빈 몸으로 들어섰다. 그는 수인의 기타를 빌려 시범을 보였다. 그가 시범을 보이고 회원들이 따라 하는 동안 수인은 멀뚱멀뚱 가만히 있어야 했다. 기타 강사가 기타 없이 들어오는 것도 수업 시간에 늦는 것만큼이나 기본이 안 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왜 기타도 없이 오는 거예요’라고 따질 수는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른 중반이나 된 성인 강사에게 간섭처럼 들리는 말을 하기는 싫었다. 답답한 마음을 꾹 참고 있던 터에 수인도 모르게 한 마디가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선생님, 왜 맨날 늦고 그래요?"
기타 강사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본 사람처럼 당황했다.
'뭐야? 이 반응은. 얼마나 많이 늦었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갑자기 생긴 일을 좀 하고 오느라고요. 이동하는 거리가 있다 보니 좀 많이 늦었어요."
"평소에도 계속 늦으시잖아요."
"그날은 직전까지 방과 후 수업이 있어요."
"그럼 시간이 안 맞는데 우리 수업 맡으신 거예요?"
"이동 시간 20분 잡았는데, 교통 여건에 따라서 좀 달라지기도 하고……, 저녁도 못 먹고 막 달려와도 그렇더라고요."
"사정이 그렇다고 미리 말씀하셨으면 되잖아요. 매번 그렇게 늦으시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니까, 제가 선생님 사정을 어떻게 알아요."
강사의 저녁 먹을 시간도 없다는 말이 수인의 명치에 턱 하니 걸려 더는 뭐라고 나무랄 수도 없었다.
"그럼 앞으로 그냥 수업 자체를 10분 뒤로 미루면 되겠어요? 제가 회원들에게 양해를 구할 테니, 앞으로 10분까지 오세요."
수없이 속엣말을 주워 삼키다가 수인이 처음으로 불만을 터뜨렸는데, 기껏 한다는 게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었다.
"네, 죄송합니다."
'이럴 땐 감사하다고 하는 거지.'
수인은 강사가 나이에 비해 언어를 선택하는 것도 어설프다고 느꼈다. 이날 수업엔 두 명의 회원만이 참석하여 넓은 강의실이 텅 비어 보였다. 수업 시간 중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하거나 통화하는 태도는 여전했다. 기타야 가르치는 게 단순해서 코드 몇 개를 가르쳐주고 무한 연습을 하는 과목이다 보니 수업에 실질적인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수인의 눈에 거슬렸다. 마음이 늘 딴 곳에 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다시 기타 수업 시간이 되었다. 이번엔 어쩐 일로 강사가 7시 정각에 시간에 맞춰 들어섰다. 기껏 회원들에게 7시 10분까지 오면 된다고 공지까지 해 둔 상황에 청개구리처럼 제시간에 들어서는 강사를 보며 수인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선생님, 오늘은 어쩐 일로 제시간에 오셨어요."
기타 강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저녁 식사도 못 하셨을 것 아니에요?"
이번에도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는 걸 보니 굶고 온 게 틀림없었다. 애초에 10분 늦게 수업을 시작한다고 공고를 한 탓에 이번엔 회원들이 늦게 왔다. 회원들도 처음엔 착실하게 오다가 점점 오는 시간이 늦어졌고, 아예 빠져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설할 때부터 맞지 않았던 타이밍이 계속 어긋나는 것 같았다. 수인은 문화센터에 초등학생들이 오면 나눠주려고 챙겨두었던 과자를 강사에게 내밀었다.
"회원들이 좀 늦으시나 봐요. 간식 드시면서 한숨 돌리세요."
수인이 한결 친절한 태도로 강사를 대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것도 같고, 양심이 없는 사람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강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과자를 입에 넣고 씹고 있던 강사가 서둘러 삼키고선 전화를 받았다.
"네, 제가 9시 20분쯤 갈 거예요. 그때 결제하시고, 연습하고 계세요."
기타 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인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통화했다. 평소엔 기타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던 통화 내용이 들려왔다. 기타 수업이 끝나고 20분 뒤에 또 약속을 잡는 것 같았다.
"제가 탁구 교실에도 나가는데, 연락이 와서요."
통화를 끝내고 돌아온 강사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탁구도 하세요?"
"네, 기타도 유행이 지났는지 점점 수강생이 줄어들고 있어서요."
"그럼, 이 수업 끝나고 또 일정이 있으신 거예요?"
"네, 11시까지요."
서류 문제로 수인이 문자를 넣으면 답변이 늦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정 가까이 밖에서 일하고 있으니, 어디에 앉아서 서류를 작성할 시간이 없었던 거였다.
'도대체 일을 몇 가지를 하고 있는 거야.'
그날 이후 강사는 무슨 변고인지 수업 시간에 맞춰 착실하게 들어왔다. 여전히 휴대전화기를 들여다보며 어딘가 딴 데 정신을 팔고 있었지만, 수업은 나쁘지 않았다. 완전 초보였던 회원들이 두 달 만에 중급 수준의 연주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계약 기간까지만 고용하고 바꾸려고 했던 수인의 마음이 점점 희미해졌다. 이대로 괜찮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초반에 제대로 잡히지 않은 분위기 때문인지 회원들이 하나둘 나오지 않았고, 지금은 절반만 남게 되었다. 이 상태로라면 내년까지 이 수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강사가 수업에 애착을 가지고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수인은 강사가 이전보다 성실하게 수업에 임하는 게 기뻐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절반만 남은 회원들도 매시간 빠지는 사람들이 있었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어느 날이었다. 수인이 센터 뒷정리를 끝내고 나가는데 주차장 바로 앞에 있는 가로수 아래 차가 약간 기울어진 채 멈춰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방금 수업을 끝내고 나간 장년의 남자 회원이 차를 밀고 있었다. 기타 선생 차의 뒷바퀴가 도로를 벗어나 게울을 향해 경사진 하천부지 쪽으로 반쯤 걸쳐져 있는 것이었다.
"엑셀을 밟아 봐요!"
당황한 기타 선생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있자 뒤에서 밀고 있는 회원이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굉음과 함께 차가 도로 위로 올라왔다.
"아니, 엑셀을 안 밟으니, 차가 올라갈 수가 있나!"
장년의 남자 회원이 땀이 범벅이 된 채 풀이 무성한 하천부지에서 도로 위로 올라왔다. 겨우 위기를 모면한 기타 선생은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또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렇다는 걸 수인은 알고 있었다. 수인은 여전히 그의 언어 선택이 서투르다고 생각했다.
'이럴 땐 고맙다고 하는 건데…….'
잠근 센터 문을 다시 열어야만 했다. 차를 밀어준 회원이 손을 씻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 참, 젊은 사람이 저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원. 가로등이 없는 것도 아닌데 거길 다 빠지네요. 여기 그렇게 다녀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손을 씻고 나온 회원이 말했다.
"아마 여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오늘은 유난히 어둡네요. 가로등이 이렇게나 어두웠나요."
수인은 늘 익숙하게 다니던 길이라 유심히 보지 않았던 거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느티나무 가로수 아래로 도로와 하천부지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빠질 법한 웅덩이 같은 어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