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수인은 사람보다 나무가 흔한 마을에 집을 샀다. 비가 오면 이름 모를 풀 냄새와 나무 향기가 집 안으로 배어들었다. 깊은 숲의 냄새가 진동하는 집으로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와 해거름에 활공하는 하늘다람쥐가 은밀하게 살림을 들인 집이었다.
“방금 지붕 위에서 저기 떡갈나무로 날아가는 거 봤어?”
산이 아내 수인과 딸 윤을 향해 소리쳤다.
“응, 방금 날아가는 거 나도 봤어! 박쥐 아니었어? 날개를 쫙 펼쳐서 날아가던데…….”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윤이었다. 고개를 잔뜩 뒤로 젖힌 채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처럼 내려오지 못했다.
“하늘다람쥐야! 우리 집에서 나온 녀석 같아. 지금 집에서 나오는 걸 보니 야행성인 모양인데……!”
산 역시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 저녁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마당을 거닐다가 우연히 하늘다람쥐의 활공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하늘다람쥐는 겨울 동안 수인의 집에 머물면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가끔 천정에서 호도독 작은 발이 재빠르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산과 수인은 들쥐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쥐약을 놓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언제부턴가 천정에서 들리던 소리가 멎으면서 약을 놓는다는 걸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봄이 되었을 때 천정에서 소리를 내던 주인공이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엄마야! 이게 뭐야! 으아악!”
새벽 2시경 수인의 비명 소리에 깜짝 놀란 산이 얼른 불을 켰다. 비명 소리에 놀라 미쳐 도망가지 못한 하늘다람쥐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갑자기 불이 밝혀진 방안에서 산과 수인과 하늘다람쥐가 모두 놀란 채 정지된 화면처럼 멈춰있었다. 잠든 수인의 머리카락을 하늘다람쥐가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이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하늘다람쥐는 너무 놀란 탓인지 수인이 두 손으로 감싸 쥐어도 발버둥 치지 않고 얌전히 잡혀있었다.
“어머, 아기인가 봐. 성체 같았으면 벌써 도망갔을 텐데……, 너무 작고 앙증맞다!”
수인의 손 안에서 하늘다람쥐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봄에 태어난 새끼였다.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어미의 품인 줄 알았는지, 어느새 꼬리를 동그랗게 만 채로 잠이 들었다.
간밤에 그 수선을 피운 뒤, 어디로 하늘다람쥐를 놓아주어야 할지 몰라, 산이 비어 있던 새장에 넣어 두었다. 마침 앵무새를 키울 때 먹였던 해바라기 씨가 남아 있어서 줘봤더니 곧잘 받아 먹었다. 처음에는 겁을 잔뜩 머금은 검정콩 같은 눈을 꿈벅이기만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손처럼 보이는 앙증맞은 발로 해바라기 씨를 야무지게 쥐고선 까먹기 시작했다. 가장 신이 난 건 딸아이 윤이었다.
“엄마, 하늘다람쥐 키우고 싶다. 우리가 키우면 안 돼?”
아침에 일어나 새 장 안에 있는 하늘다람쥐를 발견한 뒤 옆을 떠나지 않던 윤이 말했다. 윤이 내민 견과를 하나씩 받아먹는 모습을 보니 이미 애완동물이 된 것처럼 친밀해 보였다. 산과 수인은 하늘다람쥐에 대해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하늘다람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시중에 파는 것도 있었지만 그런 건 모두 외래종이고, 야생동물은 키우면 불법이 되는 거였다. 결국 하늘다람쥐는 제자리로 돌려보내야 했다. 산이 윤에게 돌려보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윤아, 하늘다람쥐는 빨리 엄마에게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아. 어차피 키우지 못할 건데 사람 손 타면 야생성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단다.”
계속 고집을 피울 줄 알았던 윤은 오히려 빨리 어미를 찾아주자고 성화를 부렸다.
“봄이긴 하지만 아직 밖이 차가워서 나무에 놓아주는 건 안 될 것 같아. 천정에서 가끔 소리가 났었잖아.”
수인이 말했다.
“그래, 천정에 놓아주면 어미가 냄새 맡고 찾으러 오겠지.”
산이 대답했다.
“그럼 빨리 놓아주자. 동물들은 새끼한테서 사람 냄새가 나면 돌보지 않는 때도 있데. 빨리 보내주자 우리…….”
살아 있는 것에 유난히 흥미를 느끼는 윤은 동물도감과 곤충도감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곤 했다. 그래서 수인과 산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윤이 알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산은 하늘다람쥐를 놓아주기 위해 천정의 환기구를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겨울 동안 하늘다람쥐들이 싸 놓은 똥이 무더기로 남아 있었다. 천정에선 알싸한 허브 냄새가 났다.
“얼른 엄마 만나야 해, 잘 가, 안녕……!”
천정으로 새끼 하늘다람쥐를 놓아주자 윤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산과 수인도 빨리 엄마를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 인사를 건네며 환기구를 닫았다.
그날 이후 하늘다람쥐들은 화장실과 거실, 작은방과 큰방의 천정을 오가며 자주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떻게 그렇게 조용히 지냈는지 신기할 정도로 마주치는 날이 잦아졌다. 하늘다람쥐가 출몰하는 날이 잦아질수록 수인과 산의 눈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점점 늘어났다. 천정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함께 똥과 오줌 냄새도 심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몇 마리나 사는 건지, 오줌 줄기가 벽을 타고 내려올 때도 있었다. 게다가 밤이 되면 활동이 활발해지는 바람에 잠귀가 밝은 수인이 밤을 하얗게 지새워야 할 때도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두었다간 그야말로 하늘다람쥐의 집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생활에 불편함이 지속되자 산과 수인은 누구랄 것도 없이 어떻게 해서든 이 야생동물들을 집에서 몰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모르는 미로를 따라 무시로 들고나는 숲의 전령을 집 밖으로 쫓아낼 재간이 없었다.
간단하게 약을 뿌려 몰아낼 수도 있었지만 소중한 생명에 지장을 주게 될까 봐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민 끝에 환경청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예상대로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를 보기 위해 환경청 직원 두 명이 왔다.
“하늘다람쥐들 좀 얼른 데려가 주세요.”
환경청 직원들이 마치 하늘다람쥐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산이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집보다는 숲속이 서식지로 적합할 텐데, 숲속으로 유인할 방법은 없을까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환경청 직원이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살피며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하늘다람쥐들이 싸놓은 똥과 오줌의 흔적들만 확인한 채 도울 방법이 없다는 말만 남겨두고 떠났다. 결국 윤이네 가족은 하늘다람쥐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처럼 불편함을 감수하며 동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해를 보내자 하늘다람쥐의 출몰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 같았다. 다시 봄이 무르익었을 무렵, 환기구를 따라 보일러가 있는 지하로 떨어진 하늘다람쥐를 발견한 날이었다. 체구가 작은 새끼인 탓인지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어디로 보내줘야 하나 고민하던 산은 날이 많이 풀렸으니 밖으로 보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 앞에 있는 떡갈나무 가지에 하늘다람쥐를 놓아주었다. 그런데 나무 위로 후다닥 도망쳐야 할 녀석이 나뭇가지를 얼마 오르지 못하고 자꾸만 떨어지는 거였다. 떨어지는 녀석을 손위로 올려 자세히 살펴보니 발 한쪽이 기형이었다. 녀석이 환기구를 따라 지하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그때 숲으로 몸을 숨기지 못하고 떡갈나무 주변을 맴도는 하늘다람쥐 한 마리가 보였다.
"저 녀석이 새끼 어미구나!"
산이 혼잣말을 했다. 산은 새끼를 떡갈나무 중간쯤에 안전하게 올려준 뒤 어미가 데려갈 수 있도록 집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뒤 밖으로 나왔을 땐 하늘다람쥐들이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날 어미와 새끼가 숲속으로 떠난 이후로 하늘다람쥐는 보이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까지 집에 머물러 있던 발이 성치 않은 자식과 그의 곁은 맴돌던 어미의 애틋함이 산의 마음에 아련하게 고여 들었다.
"호도도독 호도독."
천장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려오는 밤이면 수인과 산은 누구랄 것도 없이 하늘 다람쥐를 떠올렸다.
"여보, 걔들이 겨울을 보내러 다시 온 걸까?"
수인이 어둠 속에서 말을 걸었다.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하늘 다람쥐가 아니면 뭐라는 거야. 이번엔 들쥐라도 온 걸까?"
"박쥐일 수도 있겠지. 옥상에서 숲으로 날아가는 걸 본 적 있거든."
산의 말에 아무런 답이 없었다. 적막속에 그 사이 잠든 수인의 숨 소리만 들렸다.
"호도도독" 작은 발자국 소리가 재빠르게 이동했다.
"그 때 마지막으로 나갔던 발이 기형이던 아기 하늘다람쥐 말이야. 무사하겠지."
산은 수인이 듣고 있지 않은 걸 알면서도 혼잣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