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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Apr 05. 2024

토끼 몰이와 머릿수

  취업 비자로 들어올 수는 없나 봐요?


  한 씨가 불법 체류자 운운하는 바람에 내가 물었다.


  취업 비자도 직종에 따라 기간이 다르고, 특별한 기술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취업 비자를 얻을 수 없죠. 여기 사람들 대부분은 방문 비자로 왔다가 불법체류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은근히 호기심을 보이며 집중하는 모습 때문인지 한 씨는 더욱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베트남, 필리핀 사람들 여기 오려고 빚을 엄청나게 지고 와요. 그 빚 다 갚으려면 못해도 사오년 정도

는 일해야 하는데, 그 안에 단속반에 잡혀서 자기 나라로 추방되면 진짜 거지처럼 살아야 해요.


  브로커들에게 주는 돈을 마련하려고 빚을 지는 모양이지요?


  그럼요. 몰래 밀입국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들은 전 재산을 다 걸고 넘어오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목숨을 걸죠.


  목숨을 걸다니요?


  아니, 그, 며칠 전에도 뉴스에 떠들었잖아요. 단속반 피해서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사람이 죽어서……, 토끼몰이 어쩌고 하면서 티브이 안 봤어요?


  며칠 전에 그런 뉴스를 들었는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뉴스에 나왔다고 하더라도 아마 신경을 안 써서 기억을 못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속으로 ‘역시 이런 쪽에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우는구나.’ 생각했다. 한 씨는 도무지 뉴스며 신문이며 신경 쓰며 살 것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속반이 뜨면, 우린 딱, 핸드폰 꺼버려요. 잘못했다간 우리도 같이 걸려들어서 곤욕을 치르게 되니까요.


  어떤 곤욕요?


  벌금이 겁나게 많아요. 불법 체류자들이야 자기 나라로 추방되는 게 다지만 우린 걸리면 벌금형이에요. 한 사람당 300만 원씩 내야 한다니까. 재수 없으면 벌금으로 몇천만 원 날릴 수도 있어요.


  그래서 숙소를 따로 쓰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죠. 같이 있다가 엮이기 좋으니까. 그리고 게네들 더럽기도 참 더러워. 예전엔 같은 차로 함께 다녔는데 짐으로 바퀴벌레가 옮아와서 혼났다니까요. 그러고 나서는 차도 따로 타고, 거리를 두는 게 여러모로…….


  한 씨는 이런 일에 이골이 난 사람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의 속사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리고 외국인노동자들을 도구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머릿수에 따라 우리한테 수당이 떨어지니까 노동자를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돈이 커지죠. 코로나 때문에 입국이 제한되기도 하고 밀입국도 쉽지 않아져서 많이 줄어버린 거예요. 우린 사람만 데려다주면 돈이 되니까 최대한 많이 모으려고 하죠. 이 일 하다가 다른 일 못 해요. 제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이런 돈 만져 보겠어요.


  도대체 돈이 얼마나 되길래요?


  나는 사실 액수가 궁금하지는 않았다.


  우리야 때에 따라 크게 하기도 하고 좀 덜할 때도 있지만 몇억은 그냥 벌어들여요. 다 현금 거래라 세금도 없고 사람들 많이 데리고 있으면 그게 밑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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