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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Sep 18. 2022

비스듬하게 서 있는 사람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비스듬하게


직장상사나 동료들과의 불화 때문에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조그만 더 참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기사에는 늘 댓글이 많이 달리기 마련이다. 그만둔 사람을 두둔하는 댓글에는 공감 숫자가 대체로 많은 편이고, 그만둔 사람도 문제가 있다는 댓글에는 비공감이 압도적이다.


댓글읽다 보면 대인관계라는 것이 상대적이어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었나 싶어, 마치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란다.



대인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은 나까지 나서서 굳이 한번 더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론적 해답이야 서점 진열대에 널려 있고, 커피 한잔 비용이면 가까운 곳에서 무료 상담사를 자처하는 지인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얻은 해답과 위로는 일회용인 경우가 많다. 비슷한 상황을 다시 겪게 되새롭게 책을 뒤지거나 하소연을 받아 줄 술친구를 찾아야 한다.


대인관계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에 분명하다. 원인을 상대에게서만 찾으려고 한다면 상황은 계속 꼬여갈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어려운 경지에 도달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답을 찾기 어려울 때는 서둘러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잠시 옆으로 제쳐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잠시 잊고 있다 보면 저절로 해결되거나,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릴 때도 있다. 흙탕물은 일정 시간을 기다린 사람에게만 바닥을 보여준다.


또 하나 제안하고 싶은 방법은 대인관계에서 오는 불편한 감정을 약간 '비스듬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정면으로 맞서서 이기려고 하다가는 나만 상처를 입게 다. 조그마한 상처조차 안 입으려고 아예 피하거나 숨으려고 하다가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비스듬한 각도로 상대를 대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양보할 타이밍이 보이고 잠깐의 손해가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극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화면이 느리게 돌아갈 때가 있다. 주로 전투 장면에서 적이 쏜 화살을 피하거나 일대일 대결 중 상대의 칼을 피하는 장면에서 '슬로 모션' 기법이 사용된다. 긴박한 상황의 세세한 부분을 관객이 놓치지 않고 감상하도록 일부러 느린 동작을 보여주는 것이다.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비껴가거나 신체 한 부분을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칼날은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어깨에 가벼운 상처를 내고 지나간다. 이때 무사들은 몸의 각도를 비스듬하게 틀면서 시선은 상대를 응시한다.


화살이나 칼을 맨손으로 막으려고 하다가는 손에 치명적 상처를 입는다. 작은 상처조차 안 입으려고 바닥에 엎드리거나 점프를 하는 등 몸동작을 크게 하다가는 오히려 다음 동작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지, 허점을 노출하여 상대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아내는 못난 남편을 따라 긴 해외생활을 하는 바람에 '경단녀'가 되고 말았다. 아내가 가지고 있던 특기와 경험은 경력 단절의 공백을 메꾸기 쉽지 않은 분야였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어렵게 전공분야와 다른 계약직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일 보다도 직장 상사와 동료들 간의 관계를 더 힘들어했다. 하던 일도 아닌 데다가 젊은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탓에 한국 직장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평생을 직장생활만 하고 있는 나도 대인관계에서는 매일 새로운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데 아내는 오죽할까. 아내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한 번씩 삐그덕거릴 때마다 나한테 자문을 구하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저 '비스듬하게'라는 말만 반복해줬다. 처음에는 성의 없는 답변이라고 화를 내더니 어느 시점부터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는 것 같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몸을 틀어서 비스듬하게 서 있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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