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계급투쟁』
『아이들의 계급투쟁』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9
“이 단절을 단 1밀리미터씩이라도 좁히는 것”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저자가 영국의 공공 탁아소, 그러니까 하층 계급이나 이민자의 아이를 위해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탁아소의 직원으로서 겪었던 일들을 적어 내려간 책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변화의 징후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이다.”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의 변화는 안 좋은 쪽으로의, 그것도 가장 가혹한 쪽으로의 변화다. 우선 이 탁아소는 매우 가난한 지역에 있다. 탁아소의 아이들 대부분은 일상적인 비속어와 폭력, 약물 의존 경험이 있는 싱글맘, 유색인종 이민자 가정과 같은 환경 중 적어도 하나에는 발을 걸치고 있다.
그렇기에 탁아소에서는 언제나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를 나 몰라라 하는 가정, 유색인을 차별하는 백인, 역으로 비도덕적이라고 여겨지는 백인 하층계급을 백안시하는 이민자 가정, 보고 자란 폭력과 차별을 그대로 체현하는 아이들……. 저자가 적어 내려간 수많은 가난과 차별의 목록이다. 하지만 이 목록이야말로 저자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의 목록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는 어떤 선입견이나 재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하지 못한다. 그 현실에 대해 책임을 가진 사람이 하층 계급이나 이민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 현실이야말로 저자가 발 딛고 살아가는 땅이기 때문이다. “분열된 영국 사회에 대한 분석은 학자나 평론가, 저널리스트에게 맡기면 된다. 땅 위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단절을 조금씩이라도, 단 1밀리미터씩이라도 좁히는 것이다.” 땅바닥에서 철저하게 굴러본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고백이다.
KEEP ON SMILING
이 책의 구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책은 2부로 나뉜다. 1부는 긴축 탁아소 시절(2015.3-2016.10)이고, 2부는 저변 탁아소 시절(2008.9-2010.10)이다. (‘저변’이라는 말은 실제 쓰이는 용어는 아니고 영국 최악의 1퍼센트 지역, 즉 밑바닥을 표현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하는 말이다.) 시간을 역순으로 배치한 이유는, 저변 탁아소에선 있었지만 긴축 탁아소에서는 사라져버린 ‘그 무엇’을 독자가 읽어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긴축과 저변 사이. 거기에는 정권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교체되면서 일어난 긴축 재정 정책이 있다. 가장 많이 긴축된 예산은 “바로 하층 계급 사람들을 지원하는 제도와 시설에 대한 투자였다.” 저변 탁아소 시절도 역시 힘들고 어려웠지만, 하층 계급에게 지원되는 실업 급여나 사회 급여를 통해 어느 정도의 생활이 보장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밑바닥을 맡바닥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일어나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고, 그들을 통해 말 그대로의 ‘저변’을 넓혀가는 풀뿌리 운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긴축은 사람들을 흩어지게, 고독하게, 그리고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부자-빈자의 주거지·교육시설 분리가 심화되고, 상층 계급에게 하층 계급은 점점 비가시화되어 TV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이른바 ‘소셜 레이시즘’이다. ‘소셜 레이시즘’은 인종차별이 아니기에, 차별자들은 그것이 정치적 올바름에 반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하층 계급의 그 ‘작은 파이’조차 점점 작아지면서, 저변 탁아소 시절 아이를 사회복지사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우던 부모들은 이제 아이를 포기하려 한다. 그것은 “결코 부모들이 박정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부모에게 남은 힘이 없”기 때문이다. ‘저변’을 넓혀가던 이들은 이제 생활에 치여 ‘녹초’가 된 얼굴로 돌아다닌다.
‘긴축의 풍경’에서 사라진 것은, 바로 가난과 차별과 폭력을 그대로 대물림하는 가정에 대고 그러면 안 된다고, 그것은 틀린 것이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그 마음이자, 그들 앞에 계속 머무르려는 마음이다. 저자는 고백한다. 개인에게 그 모든 가난과 피차별의 책임이 귀속된, 엄혹한 ‘긴축의 풍경’ 앞에서, 그 마음이 없어져버렸다고. 하지만 긴축 탁아소 시절인 1부를 마치는 대목에서, 저자는 “웃을 수 있는 한 우리는 진 것이 아니”라고, “KEEP ON SMILING”을 외친다. 도대체 왜일까.
“썩어 문드러진 세계에는 썩었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가장 쉽게 이해한 사람이 / 가장 오래 서 있었을 자리에 서서’
김소연의 시 「여행자」의 한 대목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 구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쉽게’와 ‘오래’는 그 의미가 즉각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오래 머무르며 대상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길임을 이 시는 보여준다. 어떤 자리에 오래 머물렀을 때야만 생겨나는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
아름다움.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이다. 문장의 수려함이나 탄탄한 내러티브 때문이 아니다. 저자는 숨 막힐 정도로 황폐한 긴축의 사막에서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풍경 한 줌을 길어 올린다. (이 짧은 지면에서 그 풍경들을 묘사하는 것은 오히려 풍경을 발견한 갸륵한 태도를 훼손하는 것이 될 것 같아 하지 않도록 한다.) 그 풍경 속에서 살아가고, 슬퍼하고, 다시 웃는다. 그 풍경을 발견하는 마음이야말로, 오래 머물렀을 때야만 생겨나는 마음이자 “썩어 문드러진 세계”를 긍정할 수 있게 하는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