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에든버러』, 알렉산더 지 지음, 서민아 옮김, 필로소픽, 2020
『에든버러』는 사랑하던 이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은 한 소년이, 그 무덤가에서 써내려간 이야기다. 소설의 첫머리에서부터 죽음이 언급된다. “피터가 죽은 뒤,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마치 호수의 차가운 구역을 수영하는 것과 같다. 아주 가까워진 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따뜻한 물에서 모두들 웃고 있는데.” 어떤 생은 의도적으로 사회에서 배제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죽음 역시 누군가에 의해 지워진다. 그리고 그 죽음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을 잊지 않는 소년의 이름은 아피아스 제. 줄여서 ‘피’라고 부른다. ‘피’는 한국계 이민자 2세이자 동성애자다. ‘피’는 십대 초반에 성가대에 들어간다. 성가대에서 만난 피터를 사랑했다. 잭과는 여러 차례 섹스를 했다. 성가대 선생이자 소아성애자 남성인 에릭 고렌츠는, ‘피’를 포함한 여러 성가대원 소년에게 성폭력을 가한다. ‘피’는 자신의 피해 경험을 알리지 못했고, 함께 피해를 겪은 피터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다가는 자신의 사랑마저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피터는 자신의 피해 경험과 ‘피’와의 관계를 혼란스러워 하고, 잭은 ‘피’에게 찾아와서 자신을 게이라고 생각하냐고 묻기도 한다. 그리고 피터와 잭은 둘 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피’는 그 죽음에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소설의 제목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약 350쪽 분량의 소설에서 ‘에든버러’가 등장하는 부분은 10쪽도 되지 않는데 소설의 제목이 되었다. 에든버러는 작성된 지 수백 년이 지난 편지가 발견된 곳이다. 1361년, 중세 흑사병이 휩쓸고 간 에든버러의 한 무너진 성당 첨탑에서 살아남은 앤드류 포터가 편지를 썼다. 아마 그 성당이 위치한 지역은 흑사병 피해로 인해 버려지고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앤드류 포터는 편지에서 “여기 남아 죽은 이들과 이곳으로 끌려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이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고 있다고 쓴다. 그렇게 그는 “이곳에 묻힌 영혼들의 이름”을 가진 무덤가에 이 편지를 남긴다.
흑사병은 치사율이 매우 높은 전염병이다. 앤드류 포터는 편지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맺는다. “나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다면. 내가 죽은 줄 아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위장할 수 있다면.” ‘피’ 역시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사랑으로부터 피터와 잭을 보호할 수 있다면.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위장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랑을 ‘질병’으로 여기며 죄악시하는 사회에서, 어떤 생과 죽음은 사회 바깥으로 ‘내동댕이쳐’지거나 스스로를 위장할 수밖에 없다.
『에든버러』는 보다 복합적인 소수자의 지평을 보여주기도 한다. 백인 남성을 사랑하는 ‘피’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넌 백인의 힘을 사랑하는 거야. 백인의 승인을 구하는 거지.” ‘피’의 고모할머니,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누나들은 ‘위안부’로 끌려갔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일본군에 의해 황립 무관학교에 보내져 제1언어로 일본어를 배운다. ‘피’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적국의 활자가 자신의 사고를 형성할 정도로 내면에 평생 새겨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 지금은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이처럼 신체에 새겨지는 억압은 자신의 몸을 혐오하도록 만든다. 피터는 스스로의 몸을 불태웠다.
소설에서 소수자성은 자주 실제와 환영을 오가는 이미지로 그려진다. ‘피’의 조상으로 언급되는 ‘레이디 타마모’는 여우 귀신이지만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붉은 머리(“당시 한국에서는 머리카락이 붉은 사람을 귀신으로 여겼다”라는 소설 속 문장은 ‘빨갱이’를 떠올리게도 한다)를 한 여자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의 후손들은 여우 귀신의 능력을 물려받진 못했지만 붉은 머리카락을 지녔는데, ‘피’는 아버지에게서도 자신에게서도 붉은 가닥을 발견한다. 잭의 죽음을 본 후에는 여우를 목격하기도 한다. 또한 ‘피’는 종종 죽은 이들을, 피터와 잭, 그리고 에릭 고렌츠의 아들인 랠프(아마 똑같은 성폭력을 당했을 것으로 짐작되는)와 ‘위안부’로 끌려간 고모할머니들을 목격하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단 한 번도 소리가 사라진 적이 없다. 파동은 그야말로 무한히 퍼진다.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 … 내가 피터의 목소리를 다시 들으려면 태양계만 한 귀가 필요할 것이다.”).
‘피’가 마주한 죽은 이들의 모습을 단순히 환영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사회가 엄연히 존재하는 소수자를 ‘귀신’이라고 간주해 두려워하거나 실제라고 인정하지 않기 떄문이다. 그리고 분명하게도, 소수자에게는 죽음이 더 가깝게 있다(나는 이은용, 김기홍, 변희수 세 사람과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죽은 이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잊지 않는다.
에든버러에서 발견된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1361년. 에든버러. 파괴된 이후로 날짜는 모름. 마지막 편지. 누군지 모르지만 언젠가 이곳을 발굴할 정도로 열의가 있어, 이 편지를 발견하는 이에게.” 『에든버러』는 또다른 에든버러에서 ‘피’가 보낸 편지다.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라 문장과 문장 사이의 넓은 공터에서 행간을 파악하느라 오래 머물러야 할지도 모른다. 비약하고 침잠하는 문장들 속에서 소수자의 삶과 아픔을 선연하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당신도 이 편지를 발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