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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욱 Aug 12. 2021

‘운동들의 운동’

《광장이 되는 시간》

《광장이 되는 시간
윤여일 지음, 포도밭출판사


‘천막촌’은 어디인가. 2018년 12월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난산리 주민 김경배 씨가 제주도청 맞은 편 길가에 천막을 치고 단식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반년이 넘도록 함께 투쟁하며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곳이다. 책의 부제는 ‘천막촌의 목소리로 쓴 오십 편의 단장’이다. 천막촌 사람이, 천막촌에서, 천막촌의 목소리로 쓴 책이다. (책의 저자는 ‘윤여일’로 되어 있지만, 그는 스스로도 ‘증인’임을 자처하기에 이 책의 성취는 천막촌 사람들 모두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다만 편의를 위해 앞으로 나오는 ‘저자’라는 말은 ‘윤여일’을 지칭하는 것으로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천막촌 내부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천막촌이 성취하고 있는 ‘운동들의 운동’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회운동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운동들의 운동’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저자가 택한 이 책의 문체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운동을 담으려면 문장 또한 운동해야 한다고 여겨 분석적이기보다 함축적인 문체를 취한다. 당신의 머리와 마음 속에서 운동하는 문장이기를 바란다.”


이 말처럼, 이 책의 문장은 함축적이다. 하지만 뜬구름 잡지 않는다. 문장이 천막촌이라는 구체적 현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장은 운동을 분석하거나 명쾌히 정의하지 않는다. 운동을 가두지 않으려 한다. 역시 천막촌이라는 시공간 자체가 특정한 운동방식에 가둬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둬지지 않는 것. 어딘가로 계속 움직이는 것. 동어반복에 불과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운동은 정지가 아니다. 정지가 아닌 것으로서의 운동을 바탕에 두고, 저자는 다양한 차원에서 ‘운동들의 운동’을 말한다.


먼저, 지금 여기의 운동은 과거의 운동으로부터 이어지는 운동이다. 천막촌의 운동은 강정, 더 거슬러 제주4.3까지 이어지는 제주에서의 사회운동을 계승한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의 운동은 존재해왔던 모든 운동들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의 운동이 단순히 과거의 운동을 계승하는 것으로만 멈추지는 않는다. 운동은 계속 운동한다(움직인다). 운동을 지속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발명하고, 새로운 사고와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한다. 이렇게 운동은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를 앞당겨 시도한다.”


과연 어떤 미래일까. 천막촌은 단순히 제주 제2공항만을 넘어 제주 전역의 난개발과 환경 문제, 군사기지 전용 가능성으로 제기되는 평화의 문제, 이주민과 선주민 간의 관계 문제, 난민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천막촌은 위계나 다수결과 같은 편안한 의사결정 방식에 기대지 않으며, 새로운 방식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심한다. 누군가 더 많이 책임지고 결국은 피폐해지지지 않도록 하는 “활동을 떠받치는 새로운 순환구조”를 모색한다.


저자가 천막촌의 운동이 방금 언급한 모든 것을 성취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천막촌의 운동은 계속해서 운동하고(움직이고) 있으며, 그것은 “살아가고 싶은 모습”의 “윤곽을 조금씩 그려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금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할 수는 없을까. 운동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다만 저자가 말하는 운동의 확실한 성취란 “참여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변화”다. 천막촌의 한 사람은 천막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민으로 지낸”다고 썼다. 이외에도 수많은 변화의 고백이 책 곳곳에 담겼다. 지금 여기의 운동은 언젠가 멈출 것이지만, 누군가는 “더 이상 운동 이전으로 돌아가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운동들의 운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더 멀리 가”게 될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이다. “천막촌은 운동들을 위한 운동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답할 수 없다. 이 물음에 입술을 움직이는 것은 지금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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