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로키는 정처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그러다 어느 숲에 도착했는데, 그때까지도 로키는 입이 댓발은 나온 채였다. 비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는데, 역시나 로키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참나, 이것들이 미친거아니야? 내가 뭘 어쨌다고? 응?! 내가 잘못한게 뭐가있어?]
그러자 로키의 머릿 속에서 다른 로키가 중얼거렸다.
[음.. 그래도 피마펭의 목을 그은 게 잘한 일은 아니지. 발드르의 일도 있고..]
로키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버럭 화를 냈다.
[넌 닥치고 있어! 왜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와서 지랄이야?]
[내 말이. 아주 그냥, 지만 천사표지. 흥! 이봐, 로키. 저런 이중인격자는 무시해. 우리가 언제 저 놈 말 들어서 재미 본 적 있어?]
또 다른 로키가 나와 로키를 거들었다. 결국 바른 말을 한 로키는 다시금 생각의 심연 속으로 쫓겨났다. 또 다른 로키가 말했다.
[근데 어디로 가려고?]
[내가 오라는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어!]
로키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로키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의 발걸음은 그저 숲 속을 빙빙 맴돌 뿐이었다. 말을 그렇게 했지만 로키의 발은 막상 어디로 향해야 할지 갈 길을 잃었던 것이다. 로키의 말대로 갈수 있는 곳은 많을 것이다. 그 곳에서 로키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지. 또 다른 로키가 로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좀 걷지? 다리 아프다고.]
[이건 내 다리야. 네가 참견할 게 아니라고!]
[아니야. 이건 내 다리이기도 하니까. 근데 말이지.. 이대로 있을꺼야? 천하의 로키가 고작 저런 것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숲이나 헤멜꺼냐고?]
또 다른 로키가 짜증을 내며 물었다. 로키는 인상을 확구기며 되물었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아니, 이대로 물러난다는게 쪽팔려서. 생각해봐봐.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애초에 신 씩이나 되는 것들이 고작 하인 나부랭이에게 실실거리는게 잘못 된 거 아냐? 우린 땅바닥까지 떨어진 신들의 체면을 살려준거라고. 그럼 감사를 받을 일이지, 이렇게 쫓겨날 일이 아니지.]
로키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로키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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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 이건 칭찬받을 일이었네?]
[그렇지! 그렇다니까. 이건 지들(신들)이 못하는 걸 네가 하니까 질투가 나서 그러는거야.]
[그치? 그런거지?]
로키의 표정이 점차 풀리려다가 다시 심각해졌다. 로키의 마음 속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로키의 마음 어두운 곳에 있는 로키였다.
[정신승리는 잘 들었어.]
[넌 또 뭐야? 왜 끼어드는데?]
또 다른 로키가 낯선 로키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낯선 로키가 조용히 입을 뗐다.
[이러는 니들이 너무 한심해서. 대체 언제까지 저것들에게 끌려다니고, 홀대를 받으면서도 정신승리나 할건지 원. 뭐가 모자라서? 세상에서 가장 잘나고 유능한건 로키아닌가?]
[음.. 그거야.. 그렇지.]
[그래서 어쩌라고?]
로키가 낯선 로키에게 물었다. 낯선 로키가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로키답게 살라는거지.]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던 로키의 표정이 점차 밝아졌다. 누군가 말했듯, 답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 애초에 가란다고 순순히 갈 로키가 아니고, 쫓아낸다고 순순히 쫓겨날 로키가 아니다. 그건 로키답지 않은 일이다. 로키는 손가락을 코를 비비며 훌쩍거렸다. 그는 스스로에게 감동했다. 로키는 몸을 돌려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이대로 물러서는 건 로키의 정체성에 문제가 되는 일이었다. 로키는 다시 에기르의 황금 궁전으로 향했다. 황금 궁전의 정문에는 엘디르가 경비를 서고 있었다. 엘디르는 로키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곧바로 그를 제지하고 나섰다.
[멈추시오! 여길 다시 오다니 제정신이 아닌게로군.]
[흥! 나에게 말해보거라, 엘디르. 넌 너의 발 한걸음도 앞으로 내딛지 말고.]
로키가 엘디르를 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위엄이 서려있었고, 불의 신 답게 그의 '신성(神性)'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순간 엘디르는 몸이 굳는 듯했고, 로키의 말대로 한 발짝도 뗄수 없었다. 엘디르는 로키에게 압도되어 로키를 보기만 할 뿐, 전혀 움직일수가 없었다. 황금 궁전의 안에서 신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로키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 그래,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믿는 신들의 아들들은 술을 마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
[그대에게 승리를 거둔 신들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무기와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소.]
엘디르의 대답을 들은 로키를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소롭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그러자 엘디르가 로키에게 경고했다. 그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로키, 이 안에 있는 아사 신들과 요정들 중 그 누구도 당신에게 우호적인 자는 없소. 누구도 그대를 환영하는 이는 없을꺼요.]
[그래서? 난 연회 구경을 좀 하려고. 난 에기르의 홀로 갈꺼야.]
로키는 몸을 떨며 땀을 흘리는 엘디르의 곁을 지나가려다 멈춰섰다. 그는 엘디르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가 검지와 엄지를 가까이 포개며 말했다.
[아, 아사 신의 아들들에게 분쟁과 증오도 좀.. 가져다주고, 그들의 미드(벌꿀술)에는 고뇌를~ 아주.. 약간~! 섞어줄꺼지만.]
[다.. 당신은 제 정신이 아니군! 당신이 저 친절한 신들에게 모욕과 요구를 퍼붓는다면, 그 모든 것은 그대에게 되돌아갈 것이오!]
엘디르가 로키에게서 풀려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대답했다. 그러자 로키가 팔꿈치로 엘디르를 툭 밀었다. 엘디르는 몸이 굳어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고, 서있는 모습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로키가 엘디르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엘디르, 엘디르. 왜 내가 너랑 말을 섞고 있어야 하지? 넌 아무것도 모른단다. 네가 아무리 모진 말을 해도, 내가 너보다 더 모진 말로 대답할 것을 왜 모르지? 한심한 놈.]
로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엘디르를 뒤로 하고 황금 궁전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