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마침내 붙잡힌 로키는 아스가르드의 깊은 곳에 있는 땅 속 동굴로 끌려갔다. 로키는 오랜 도망으로 남루한 행색이었다. 아스가르드로 끌려오며 로키는 잠이 들지 못했고, 물한모금 마시지도 못했다. 로키의 양손은 뒤로 묶여 있었고, 힘겨운 듯한 걸음을 걸으며 몇번이나 비틀거렸다. 로키의 뒤에서 로키를 묶은 줄을 잡고 있던 토르가 재촉했다.
[힘든 척 하지 말고, 빨리 걸어. 네 연기는 이제 신물이 나니까.]
[칫!]
토르의 말에 로키는 이를 갈며 동굴 속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오딘이 로키에게 형벌을 내리기 위해 미리 정해놓은 곳이었다. 오딘은 동굴 안에서 로키가 끌려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딘의 곁에는 프리그를 비롯한 수많은 신들이 이미 도착해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로키를 향한 분노로 가득했다. 미리 오딘이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로키를 두들겨 팰 신들도 많았다. 그런 신들 사이에 로키의 가족들도 끌려나와 있었다. 그들은 죄인의 가족드로 대접받았다. 로키는 오딘의 앞으로 걸어가다가 다리에 힘이 빠진듯 그대로 쓰러졌다. 그는 상처입고 지친 몸을 내어보이며 오딘에게 자비를 구했다.
[명예롭고, 자비로운 신들의 왕이시여. 제발 이 가련한 생명에게 자비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그동안 내가 당신을 위해 한 모든 기쁜 일들을 떠올려야 합니다! 내가 당신의 충실한 신하였으며, 당신의 의형제로서 당신의 오른팔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당신과 당신의 가족, 그리고 모든 신들을 위해 한 그 모든 기쁨과 은공을 생각해서라도 당신은 내 생명을 구해주어야 합니다!]
로키는 퀭한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오딘을 올려다보았다. 오딘은 그런 로키를 잠시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네가 나에게 준 것은.]
오딘은 여기까지 말을 하고 잠시 멈추었다. 오딘의 침착했던 시선이 차갑고 싸늘하게 변했다.
[내 아내와 내 아들과 딸들. 그리고 그동안 너와 함께한 아사 신족의 모든 형제들에게 준 것은 가슴이 찢어지고 더이상 눈물 조차 흐르지 않을 고통과 슬픔뿐이다! 지금 네가 네 입으로 뱉은 그 모든 말은 거짓이다!
넌 그 어떤 기쁨도, 그 어떤 충성도 보여준 적이 없다! 넌 나에게 스스로 나의 신하라 하지만, 난 너를 내 신하라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넌 너를 나의 의형제라 칭하나, 난 너를 내 의형제라 여긴 적이 없나니!
오직 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은 것 뿐이다! 너는 모든 것이 거짓이니라!]
오딘의 대답을 들은 로키는 참을수 없는 모욕과 배신감을 느꼈다. 로키는 더이상 자비를 갈구하지 않았다. 그는 오딘을 향해 분노로 가득한 눈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할 오딘이 아니었다. 오딘은 차갑고 싸늘하다못해 광기로 가득해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목숨 만은 구해달라고? 그래, 네 목숨을 살려줄 것이다. 지금은. 어차피 처음부터 너에게 죽음으로서 너의 죄를 사해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나와 나의 아내, 그리고 모든 아사 신족의 형제들이 받은 고통을 너에게도 똑같이 되갚아 줄 것이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구걸이라도 하려무나! 아니지. 구걸을 한다고 해도 난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죽지 못하게 할 것이다. 너의 온 몸에서 모든 진액이 빠져나가고, 너의 몸이 뼈와 가죽만 남는다해도 난 너에게 죽음을 선물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 뼈가 검게 변하고 산산히 흩어져 가루가 된다면 난 그 가루를 모아 너에게 더한 고통을 줄 것이다! 넌 영원히 안식을 찾지 못하리라!]
오딘의 저주와 광기어린 목소리가 온 동굴에 울려퍼졌다. 그 목소리가 어짜나도 차갑고 무서운지 온 동굴이 벌벌 떨었고, 함께 있던 신들조차도 사색이 되어 두려움에 떨었다. 광기로 가득한 오딘에게서 니플헤임보다도 더욱 차갑고 푸른 불길이 이는 것 같았다. 로키는 그런 와중에도 오딘을 향한 분노의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오딘과 로키사이에 한동안 눈싸움이 벌어졌다. 모든 이들이 침묵했다. 잠시 후, 로키의 온 몸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급기가 그는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로키는 자신의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고, 그의 시야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로키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그제서야 보았고, 깨달았다. 지금 오딘은 진정으로 분노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 무슨 방법으로도 피해갈수 없다는 것. 아직까지 그 누구도 오딘이 이렇게 까지 분노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오딘의 시선을 받는 매 순간마다 차가운 얼음 칼이 온몸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울릴 때는 온몸이 차가운 서리기둥으로 변하면서 갈기갈기 깨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로키는 이리저리 바닥을 뒹굴며 신음했다. 그가 내는 신음소리는 점점 커져 커다란 울부짖음이 되었고 그의 몸과 머리칼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얼어붙었다. 그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로 인해 온 몸을 덜덜 떨었다. 한동안 로키의 울부짖음을 듣고 있던 오딘이 다시 말했다.
[실망이군. 아직 너에 대한 형벌은 시작도 하지 않았거늘. 난 내 아내가 흘린 눈물 한방울만큼의 처벌도 너에게 내리지 않았다. 내 며느리의 심장이 터져나갈 때의 그 고통은 아직 시작도 안했어. 우리 아사 신족이 너에게 당한 수모와 치욕, 고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꼴값떨지 마라! 듣거라! 나 오딘이 너 로키에게 형벌을 내리겠다!]
- 로키의 아내, 시긴, 해리 티커 그림(1930, 출처 : https://www.germanicmythology.com)
오딘이 손짓을 하자, 신들 사이에서 로키의 가족들이 끌려나왔다. 로키의 아내인 '시긴(Sigyn : 포승을 헐겁게 하는 자)'과 두 명의 아들인 '발리(Vali : 찢어버리는 자, 오딘의 아들인 발리와는 다른 인물)'와 '나르피(Narfi : 우물쭈물하게 하는 자, 또는 나리-Nari : 우물쭈물하는 자- 라고도 불림)'가 끌려나왔다. 로키의 두 아들은 오딘이 내뿜는 공포에 완전히 사로잡혀 떨었는데, 그래도 시긴은 지아비에 대한 사랑이 강한 지어미였다. 로키는 그때까지도 공포에 사로잡혀 바닥을 구르고 있었는데, 시긴은 그런 로키에게 다가가 그를 꼭 끌어안으며 진정시키려고 했다. 시긴은 애절한 눈으로 오딘과 신들을 바라보며 자비를 구했다.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오딘은 무표정하게 로키와 시긴을 보다가 로키의 두 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 아들들이 당한 고통은, 이제 네 아들들의 몫이 될 것이다.]
도인은 발리를 보며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자 발리가 갑자기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곧 그의 온 몸에서 길고 검은 털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놀란 발리가 양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려 했지만 몸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양손가락에는 긴 발톱이 생기고, 그의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니로 변했다. 두려움에 휩싸인 발리가 로키와 발리, 나르피를 불러보았지만 그의 목에서는 말대신 그르렁 거리는 소리만이 나왔다. 발리는 그대로 검은 늑대가 되어버렸다. 그는 곧 무언가 참을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여지껏 이런 느낌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피에 대한 굶주림이었고, 살육에 대한 굶주림이었다. 이제 발리의 이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는 야수의 본성이 온전히 자리잡았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잃었다. 입안 가득 침을 흘리며 신선한 고기와 피를 찾아 코를 킁킁거렸다. 발리를 보던 오딘이 가만히 나르피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발리가 자신의 동생인 나르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발리는 광기로 가득한 미소를 지었고, 허연 침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혀.. 형.. 형...!]
나르피는 발리의 무시무시한 송곳니를 보며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했다. 발리는 광기로 빛나는 눈으로 나르피를 바라보며 그의 주위를 멤돌았다.
[아버지! 어머니! 제발 살려주세요! 형이 이상해! 형!!]
겁에 질린 나르피가 소리쳤다. 그러나 로키와 시긴이 할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로키는 신음하며 이 광경을 지켜볼수 밖에 없었고, 시긴은 로키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오딘이 가만히 외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나르피의 주위를 맴돌던 발리가 나르피를 덮였다. 나르피는 공포와 고통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발리는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나르피의 몸을 물어 뜯었다. 곧 나르피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이미 그의 몸은 발리에 의해 조각조각 찢겨나갔다. 나르피의 사지는 진작에 뜯겨나갔고, 그의 몸도 갈기갈기 찢겨져 더이상 그 형체를 알아볼수 없었다. 발리는 즐겁다는 듯 자신의 몸에 묻은 동생의 살점과 피를 핥아먹었다.
로키는 이 처참한 광경에 괴로워했다. 동굴 안에 로키의 괴로운 외침이 울려퍼졌다. 시긴은 한마디 탄식조차 내뱉지 못하고 혼절해버렸다. 로키의 외침에 발리는 잠시 자신의 이성을 되찾았다. 발리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발리는 견딜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에 울부짖으며 동굴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막거나 잡지 않았다. 그를 이렇게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로키에게 내려진 첫번째 형벌이었다. 물론 이것은 앞으로 로키가 겪어야 할 죄의 댓가에 대한 맛보기에 불과했지만. 로키는 오딘을 노려보았다. 피눈물이 흐르는 가운데 불꽃처럼 타오르는 눈빛이었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나를 찢어죽이라고! 오딘! 네 놈은 미쳤어! 네 놈이 생각한다는 형벌이라는 게 이토록 야만스러운 것이냐! 너는 저 요툰보다도, 저 구더기들보다도 못한 쓰레기다! 내 너를 숟가락으로 후벼파서
떠먹을 것이다! 산채로 네 녀석의 뼈를 씹을테야!
내가 배신자라고?! 내가 배은망덕하다고?! 웃기지마! 네 놈이야 말로 진정으로 사악한 존재야! 네 할애비를 죽이고! 네 형제들을 죽인 놈이 너 아니던가?! 수많은 여자들과 놀아나고, 그녀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게 너 아니냐고!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한 녀석이 뭘 어째?
오딘! 너야 말로 결코 죽어도 쉴수 없으리라! 너와 너의 아내, 모든 아스가르드와 모든 세상에 나 로키의 저주가 유황불처럼 쏟아져 내릴 것이다! 구멍이란 구멍이 모두 터져 더러운 피를 흘릴 것이다! 오딘! 너를 영원히 저주한다! 영원히!!!]
오딘은 잠자코 로키가 쏟아내는 저주를 묵묵히 들었다. 그리고 거친 숨을 내뱉는 로키를 보며 대답했다.
[이제 다 한건가? 지금 네가 떠들어 댄 것이 너의 마지막 변론이라고 생각해주마. 헤임달, 로키를 형틀로 데려가라!]
오딘의 명령을 받은 헤임달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부관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전사들이 로키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워 형틀로 데려갔다. 형틀은 평평하고 커다란 바위 세 덩이로 만들어졌는데 바위에는 큰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었다. 전사들은 로키를 바위에 눕힌 뒤,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았다. 오딘이 나르피의 찢겨진 몸둥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나르피의 몸뚱이에 손을 넣더니 그의 창자를 모조리 꺼내들고 형틀로 다가왔다. 오딘은 나르피의 내장으로 로키의 온 몸을 바위에 묶었다. 첫번째 돌에 그의 어깨가 묶였고, 두번째 돌에 그의 허리가 묶였다. 세번째 돌에는 그의 무릎 아래가 묶였다. 로키를 묶은 나르피의 창자는 세상 그 어떤 밧줄보다도 무겁고 단단하게 그의 몸을 옭죄여왔다. 로키가 이리저리 몸을 틀어보려 했으나 한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로키는 말은 커녕, 숨쉬기 조차 힘이 들었다. 겨우 헉헉 거리며 숨을 쉬는게 전부였다.
[어때? 네 자식의 창자로 포박된 기분이? 네 자식의 창자는 그 어떤 강철보다도 강하고 단단하게 네 몸을 조여올 것이다. 이게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이야.]
오딘이 로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도 무섭고 차가웠다. 그제서야 간신히 의식이 돌아온 시긴이 오딘의 발을 부여잡고 매달리며 애원했다.
[제발.. 제발, 관대함을!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제발.. 제발... 흐흑..]
오딘은 대답대신 매몰차게 그녀의 손에서 다리를 빼냈다. 시긴은 바닥에 엎드려 흐느꼈다. 그녀에게도 이런 고통은 도무지 견딜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은 오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딘은 여전히 로키를 내려다보았다.
[괴로운가? 네 몸뚱이가 자식의 피로 젖는 기분은 어때? 네 자식의 피로 온 몸이 물들어가면서 더욱 고통스럽겠지. 이 고통은 온전히 내 아내의 몫으로 하리라! 발드르의 몸을 부여잡고 흐느끼던 그녀의 아픔이 너에게도 그대로 돌아갈 것이다! 로키! 이제 나르피는 너를 묶는 밧줄이 되었다. 발리는 형제를 죽인 괴로움으로 광야를 헤맬 것이며, 아무리 피를 보고 아무리 피로 씻는다해도 결코 굶주림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게 광야를 떠돌다 아주 비참하게 말라 죽겠지! 결국 굶주림에 지쳐 스스로 자신의 몸을 파먹다가 죽게 될 것이다!]
오딘은 자신의 발치에 쓰러져 흐느끼는 시긴의 얼굴을 지팡이로 들어올리며 말했다.
[시긴! 너 역시 네 남편의 고통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너는 지어미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으니! 너는 이곳에서 로키의 고통을 바라봐야한다. 그것이 네가 받아야 하는 몫이다!]
시긴은 공포와 두려움, 슬픔과 비탄에 빠져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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