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오딘, 로키, 스카디
#. 복수는 나의 것
스카디는 고개를 돌려 오딘과 신들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녀석의 독은 뼛속 깊이까지 파고 들어가며 정신까지 썩게 만들죠. 게다가 한번 흐르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답니다. 아마도.. 영원히? 하하!]
로키는 연실 괴로움에 비명을 질렀고, 스카디의 웃음소리가 화음을 맞추듯 온 동굴에 메아리쳤다. 이런 로키의 형벌을 지켜보는 신들 사이에서 애처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토르와 헤임달이었다. 분명히 로키는 배신자이고, 그가 벌인 행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들의 친구였고, 이웃이었다. 로키때문에 골탕을 먹고 난처해지기 일쑤였지만,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아스가르드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토르는 가장 크게 분노했고, 직접 그를 잡아왔다. 막상 그가 이렇게 형벌을 받는 것을 보자 토르는 애처롭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토르는 자신도 모르게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 있던 헤임달도 토르의 한숨을 들으며 질끈 눈을 감았다. 스카디가 자신의 몫을 챙기자, 오딘은 로키를 향해 근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아스가르드르는 조용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일 정도로. 오딘은 발할라로 들어갔고, 다른 신들도 묵묵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오딘은 주위를 물린 뒤, 홀로 흘리드스캴프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았다. 드디어 로키를 잡아 그가 저지른 죄의 댓가를 치르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님을 오딘을 알고 있었다. 오딘은 그제서야 한가지 사실을 인정했다. 로키보다도 더욱 로키가 잡히지 않기를 바랬던 것은 자신이었음을. 오딘은 발드르와 호드의 아버지였지만, 동시에 아스가르드와 세상을 이끌고 지켜야 할 신들의 왕이자, 세상의 주인이다. 그것은 세상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 일. 다른 이들이 그것을 알지, 모를지..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딘은 세상을 만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지고 살아왔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닌, 그 스스로 그것을 만들고 짊어졌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그가 가지고 태어난 '숙명(宿命)'이었는지도.
이제 예언은 그 결말만이 남았다. 오딘은 알고 있었다. 로키는 머지 않아 풀려날 것이다. 그는 곧 그에게 지어진 운명대로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 것이다. 오딘이 로키에게 이런 가혹하게 형벌을 내린 것은 오직 남편과 아버지로서 자신의 아내와 죽은 아들들에게 바치는 그 만의 장송곡이었다. 운명의 굴레는 이제 더욱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신들의 왕이어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세상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오딘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펐다. 이미 마음을 먹었다고는 해도 오딘은 자신의 무력함이 너무도 괴로웠다. 아무도 없는 발할라의 홀에서 오딘은 한참동안 울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오딘이 눈물을 멈추고, 다시 눈을 떴다.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매섭게 빛났다. 오딘은 낮게 중얼거렸다.
[와라, 운명이여! 나 오딘은 도망치지 않는다.]
#PS01
스노리의 서가에 등장한 '만에서의 전투', '플로다바르다기(Floabardagi)'는 1244년 6월 25일에 벌어진 전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역사상 최초의 해전으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은 수의 배가 맞붙어 싸운 적은 있었을 것 같지만, 이정도로 대규모의 해전(당시 상황으로 보면 충분히 대규모입니다.)이 기록된 것은 이것이 최초입니다. 전투의 결과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승부'로 여겨집니다. 콜베인과 토르두르 어느 쪽도 승기를 잡지는 못했으니까요. 콜베인은 심혈을 기울였지만 피해만 남았고, 토르두르는 함정에서 벗어났지만 승리라 할 정도의 피해를 주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일부 학자들은 토르두르의 손을 들어주기도 합니다. 이 전투가 끝나고 분노한 콜베인은 주변에 있는 모든 배들을 파괴하고 불지르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이로 인해 콜베인은 아이슬란드 북부사람들에게 원성을 듣게 됩니다. 반면, 기지를 발휘해 콜베인의 함정을 뚫고 나온 토르두르의 대한 인기는 크게 상승하게 됩니다. 토르두르의 세력에 가담하는 지역민들도 늘어나게 되죠. 그 결과, 토르두르는 전투 이전에 비해서 비약적으로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해전에서 토르두르의 주된 무기로 사용된 '돌'은 사실 스튤라만의 묘수는 아니었습니다. 활이나 화살이 상대적으로 충분한 유럽 본토의 경우에도 돌은 중요한 무기로 사용되었습니다. 실제로 화살 대신 돌을 쏘는 원거리 무기가 많이 사용되기도 했으니까요. 가장 대표적인 무기가 바로 '석궁(石弓, 탄궁/彈弓, Crossbow, Bowgun)'입니다. 석궁은 흔히 '볼트(Volt)'라고 불리는 석궁용 화살을 쏜다고 인식되지만, 처음에는 돌을 쏘는 원거리 무기였습니다. 후에는 돌을 쏘는 것과 석궁용 화살을 쏘는 것으로 나뉘게 되지만요. 돌을 이용한 무기는 인류가 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용중인 무기이고, 현대에는 변변한 무기가 없는 자들에게 가장 유용한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PS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