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라그나로크02.폭풍속으로-넷:흘레르의 재

북유럽신화, 라그나로크, 흘레르, 에기르

by 바드 단테

요르문간드가 아스가르드를 향해 움직이며 일으킨 해일을 따라 나글파르는 아주 빠르게 아스가르드로 나아갔다. 흐림은 왜 가룸이 자신을 키잡이라 불렀는지 이해했다. 그가 키를 잡아보니 자신이 아니라면 이 정도의 해일을 버텨내며 키를 잡을수 있는 자는 없었을 것이다. 흐림이 목청껏 소리쳤다.


[아스가르드의 저주받을 것들에게 '아우르겔미르(Aurgelmir : 이미르의 다른 이름)'의 형벌을!!]


흐림의 선창을 따라 갑판 위에 모든 거인들도 함께 소리쳤다. 가룸은 피에 굶주린 눈을 번뜩이며, 바람을 맞으며 거인들의 외침이 시끄럽다는 듯이 혀를 찼다. 배의 옆에서는 요르문간드의 진녹색의 몸뚱이가 해일 사이로 그 모습을 보였다. 나글파르에서 먼 앞쪽에 그의 머리가 있었는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독을 내뿜었다. 이 독으로 인해 온 바다와 하늘까지도 오염되고 더럽혀졌다.


거인들과 지옥의 백성들 그리고 요르문간드가 아스가르드를 향해 항해를 시작한 그때, 아스가르드의 변방의 한 숲에서 펜리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기지개를 켜듯 몸을 펴고, 입을 크게 벌렸다. 그는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는데, 윗턱은 하늘에, 아랫턱은 대지에 닿을 정도였다. 그의 목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를 토해냈고, 그것은 그가 가르릉거리며 울부짖는 소리였다. 곧 온 세상이 그동안 들어본 적도 없는 끔직한 소리들로 가득해졌다. 거인들의 군세가 움직이는 곳부터 하늘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늘은 저 멀리 남쪽의 붉은 빛이 감도는 곳부터 산산이 부서져내렸다. 대지는 저마다 제멋대로 갈라지며 뒤틀렸다. 나무는 뿌리까지 찢어지고, 산은 무너져 내렸다. 바다는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얕은 곳에 이르기까지 요동쳤다.


그러나 진정한 공포는 그 넘어에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부서진 하늘넘어 저 멀리 남쪽으로 부터 태양보다도 밝고 뜨거운 붉은 기운이 천천히 몰려왔다. 빛과 색이 바래진 세상을 노을보다도 더 찬란한 붉은 빛이 물들이기 시작했다. 이 붉은 빛은 불꽃의 나라, 무스펠의 아들들이 이 심판의 날을 위해 움직였기 때문이다. 무스펠의 아들들은 불길을 내뿜으며 달려왔다. 그들의 앞에는 무스펠의 왕, '수르트(Surtr : 검은. 검다)'가 태양보다도 더 붉게 타오르는 검을 휘두르며 앞장섰다. 수르트는 자신의 주변으로 불길을 내뿜었고 다른 무스펠의 아들들도 불길을 내뿜어 이들이 지나오는 모든 곳이 붉게 변하며 타올랐다.


이때 의도치 않게 신들 중에서 최초의 피해자가 나왔다. 바다의 신, '에기르(Oegir/Ægir : 바다)'와 그의 가족들이었다. 핌불베트르의 엄혹한 추위는 바다와 파도마저 얼려버릴 정도였기 때문에, 인간들과 거인들은 항해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바다 위의 풍경과는 달리 다행히도 깊은 바닷속까지 얼어붙지는 않았다. 에기르는 가족들과 함께 깊은 바다 속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 머물렀다. 에기르도 오래 전부터 내려온 예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것이 신들의 멸망을 불러올 것이며, 온 세상이 불에 타버릴 것이라는 구절 역시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멸망은 아사 신족의 일이고, 자신은 이렇게 깊은 바닷 속에서 세상과는 떨어져 있다. 지금의 바다가 마치 죽은 것같은 모습이라 해도, 자신의 궁전은 풍요롭고 안전할 것이다. 궁전 가득한 황금과 재물은 차고 넘쳤고, 바다는 크고 넓었기에 한동안 먹고 지내는 것도 전혀 문제는 없을 것이다. 비록 취미활동(맥주를 빚는 일)을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그의 술창고에는 그동안 만들어둔 술도 가득했다. 새로운 재료를 구할 때까지 그동안 만들어 놓은 술의 맛을 비교해보며 지내는 걸로 어느 정도 달랠수 있으리라.


Ögir_und_Ran_by_F._W._Heine.jpg -에기르와 가족들,F.W.하이네(출처:https://sv.wikipedia.org/wiki/%C3%84gir)


에기르가 가족들과 안심하고 있던 어느 날, 요르문간드가 그 거대한 몸을 움직였다. 온 바다가 들썩이다 못해 요동쳤고, 이 여파는 곧 에기르의 궁전을 향해 몰려왔다. 얼어붙은 바다의 표면에서 에기르의 궁전이 있는 이 깊은 심해에 이르기까지 온 바다가 요동치며 뒤섞이기 시작했다. 에기르의 궁전을 강타한 이 거대한 소용돌이는 그의 호화로운 궁전도, 그 안에 모아놓은 그 수많은 황금과 재물은 물론 그동안 에기르가 만들어 모아둔 술까지 모조리 파괴하고 흩어놓았다. 에기르와 란, 그의 가족들은 혼란에 빠졌다. 바다의 신과 파도의 여신들이 바닷물에서 허우적거렸다. 에기르는 한참을 고생하고 나서야 간신히 저택의 기둥을 붙잡고 버텼다. (이 기둥은 에기르의 저택에서 가장 큰 기둥 역할을 하던 곳으로 지금의 Læsø섬이라 전해짐) 그는 손을 뻗어 바닷물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아내와 딸들을 하나씩 기둥으로 데려왔다. 에기르와 그의 가족들은 간신히 기둥을 타고 겨우 기둥 위, 뭍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뭍은 이전의 푸르름이 아닌 얼음과 눈, 거친 파도와 부서진 하늘이었다. 에기르와 가족들은 웅크린 채, 서로에게 서로의 몸을 기대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고 있던 그때. 갑자기 추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뜨거워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에기르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마주한 것은 수르트가 이끄는 무스펠의 군세였다. 무스펠들은 자신들의 주변에 있는 것들이라면 모조리 파괴하고 불로 태우며 진군 중이었다. 이는 에기르와 그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스펠들이 불길을 내뿜자, 에기르는 최대한 몸을 키우며 가족들을 감싸안았다. 그러나 무스펠의 불길은 매서웠고, 에기르와 그와 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타죽고 말았다. 로키가 예언한 대로 천하의 '흘레르(Hler : 바다, 에기르의 다른 이름)'는 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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