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신화, 라그나로크, 흐림, 가룸, 나글파르
요툰헤임 곳곳에서 살아남은 거인들이 흐림에게로 모여들었다. 핌불베트르의 추위를 이겨낸 거인들은 흐림과 그의 일족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모인 거인들의 수는 그 수를 다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들 중에는 길을 오는 동안 흥분하여 '요툰모드(Jotunnmoðr : 거인의 분노)'에 빠져 정신줄을 놓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 놓인 것은 살아 있건, 죽었건 가리지 않고 그 모든 것을 파괴하며 왔다. 흐림은 경험많은 거인들을 동원하여 그들이 사고를 치지 못하게 단속해야만 했다. 그들이 모여드는 것을 지켜보던 흐림은 문득 때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이것인가.. 로키가 말한 것이.]
로키의 말에 따라 온 요툰헤임으로 거인들과 함께 격문을 보냈지만, 사실 흐림은 조금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 격문에 응한 거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뿌옇게 흐려있던 흐림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점차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흐림은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수 있었다. 흐림은 모여든 거인들을 이끌고 진군을 시작했다. 수많은 거인들의 발걸음에 대지가 갈라지고, 주변의 산이 무너졌다. 흐림이 거인들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아스가르드로 이어지는 바닷가였다. 핌불베트르의 추위는 바다를 얼려버렸다. 해안은 자갈과 바위가 담긴 얼음밭이 되었고, 내해 부근은 이미 얼음의 평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대로 아스가르드로 무작정 진군을 하기는 어려웠다. 거인 한 둘 즈음이야 문제 없겠지만, 이렇게 많은 거인들이 올라탄다면, 제아무리 바다가 얼어붙었다 한들, 깨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몇몇 거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지만, 흐림은 태연했다. 해결책이 곧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인들이 바닷가에 모여들어 자리를 잡을 때 즈음 멀리 바다의 한쪽으로 부터 핌불베트르만큼이나 차갑고, 태초의 절벽(긴눙가가프/Ginnungagap : 거대한 나락)만큼 어두운 기운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저 멀리 눈보라 사이에서 점으로 나타났다. 그 점은 점점 빠르게 다가왔다. 그것은 아주 거대하고, 온통 새까맣게 칠해진 배였다. 바로 저승의 함선, '나글파르(Nagfar : 손톱으로 만든 배)'가 니플헤임을 떠나 얼음의 대지로 변한 바다 위를 항해해 온 것이다. 나글파르는 오직 라그나로크를 위해 준비된 배였다. 나글파르는 매우 거대했으며, 검고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죽은 자들의 손톱과 발톱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손톱과 발톱을 깍지 않은 채 죽게 된다면, 그것은 이 배를 완성하기 위한 재료를 보태 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나글파르의 완공은 신과 인간의 종말을 고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이 배의 완공을 늦추기 위해 누군가가 죽으면, 그들의 시신을 염하며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었다. 그럼에도 라그나로크가 오기 전 이미 충분한 재료가 모아지고 말았다. 그렇게 완성된 나글파르는 저승으로 부터 진수식을 갖고 자신 처녀항해이자, 마지막이 될 항해길에 나섰다.
나글파르는 그 거대한 몸뚱이를 해안가에 정박했다. 나글파르의 갑판에서 크고 튼튼한 다리가 내려졌는데, 그것 역시 죽은자의 손톱과 발톱으로 만든 것이었다. 다리의 옆쪽에서 마치 거대한 불덩어리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림이 가만히 보니 불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은 정말 불이 아니라 가슴을 뒤덮은 죽은 자들이 흘린 붉은 피가 마치 불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바로 저승의 수문장, '가룸(Garum:경계가 되는 것)'이었다. 가룸이 으르렁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말했다.
[너군. 나의 여왕님이 말씀하신 키잡이가.]
[키잡이? 하! 키잡이건 뭐건 다 해주마! 저 아스가르드의 년놈들을 찢어죽일 수 만 있다면!]
가룸의 말에 흐림이 앙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흐림이 가장 먼저 나글파르에 올랐다. 흐림의 뒤를 따라 거인들이 나글파르에 올랐다. 해안에 모여있던 모든 거인들을 다 실었음에도 나글파르의 갑판은 아직 여유가 있을 정도였다. 나글파르는 그만큼 거대한 배였다. 배의 선수에는 가룸이 자리잡았고, 배의 내부에는 니플헤임에서 온 죽은 자들로 구성된 정예부대가 자리했다. 배의 후미에는 흐림이 키를 잡았고, 갑판에는 거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모두가 자리를 잡자, 흐림이 가룸에게 소리쳤다.
[자, 다 탔어! 이제 그만 가지! 근데 이 커다란 놈을 어떻게 아스가르드로 보낼꺼야? 노를 저어서?]
[걱정마. 노를 저을 필요는 없어. 그가 우리를 그곳까지 밀어보내줄테니까.]
가룸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흐림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갑자기 해안가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얼음에 금이 갔다. 흔들림이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모든 얼음이 부서지고, 바닷물이 솟구치더니 거대한 나글파르를 아주 손쉽게 바다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노를 저을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솟구쳐 오른 바닷물은 파도넘어 거대한 해일로 변했다. 그것은 미드가르드의 뱀, 요르문간드가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운명이 이끄는대로, 로키와 약속한대로 요르문간드는 세상의 종말을 향해 그 비대한 몸을 일으킨 것이다.
거인들이 최후의 전장을 향하던 그때, 언제 나타났는지 알수 없는 배 한 척도 저멀리 북쪽에서 최후의 전장을 향했다. 이 배는 따로 돛을 펼치지도 않았고, 키를 움직이지도 않고서도 움직였다. 뱃머리에는 거인과 신들의 배반자, 모든 재앙의 근원이라 불리는 자, 로키가 팔짱을 낀 채 섰다. 그가 탄 배에도 수많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함께였다. 그럼에도 배는 아주 가볍게 움직였다. 로키의 무게는 온 니플헤임의 영혼들을 모두 모은 무게보다도 훨씬 무거웠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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