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의 천안문 그리고 현재의 광화문
억압된 자유는 일정기간 잔혹한 폭압에 놀라 숨을 죽인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한 순응은 언제가 반드시 그 생존 가능 시간의 마지막에 도달하고 만다. 종국에 집약된 분노와 절망은 차곡차곡 쌓아 올린 화약고처럼 놓여 있다가, 한순간의 계기로 절대적 힘으로 폭발하게 된다. 그렇게 사회는 개혁의 변곡점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해온 진리이다.
1989년 6월 4일에 있었던 천안문 항쟁은 중국 공산당 정부가 군대를 앞세워 유혈 진압하며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이 민주화 운동을 통해 비로소 중국은 철옹성 같던 민중 탄압의 역사에서 다소 벗어나 새로운 변화에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나는 지난 2019년 11월 모든 국내 기성 정치인과 정당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다며 홍콩인들의 처절한 투쟁을 외면할 때, 연대의 힘을 보태기위해 한창 민주화 시위가 치열하던 홍콩을 방문한 적이 있다. 홍콩 우산혁명의 상징이었던 조슈아 웡. 민간인권전선 얀호 라이를 직접 만나고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또 왜 수많은 홍콩 시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오고 있는지를 인터뷰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여러 매체를 통해 어떻게든 홍콩 민주화 운동에 힘을 보태기위한 노력을 최선을 다해 경주했었다.
전쟁터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처참하게 불타있던 홍콩 폴리텍 대학으로 들어가서 그 곳을 지키고 있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흘렸던 눈물이 아직도 생생한 촉감으로 내 뇌리에 각인되어있다. 1990년대 초반을 끝으로 나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체류탄을 쏘아대는 군경의 폭음과 군화발 소리, 지지대마저 온전하지 못한 우산 하나를 들고 공포에 젖어체 항거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완의 항쟁은 현재 홍콩의 시간을 더 먼 과거로 돌려놓고 있고, 민주주의는 깊게 패인 상처로 여전히 억압과 통제 그리고 말살로 인한 피를 흘리고 있다.
지난 주 故양회동 씨 추모 촛불 문화제등에 참석하며 몇 차례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광장 또한 1989년의 천안문과 2019년의 홍콩 구룡반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요구, 정당한 자유 보장에 대한 요구, 민주주의의 실현이 한 세력에 편만 들어주는 것이 아닌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것임을 외치는 목소리 등이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여겨졌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두고, 물대포와 캡사이신 살포를 이야기는 경찰청장의 말에 분노를 넘어 절망의 한숨이 나왔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활동을 불손한 세력들의 사회 질서 파괴로 매도하는 정권과 여당 그리고 농성중인 노동자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경찰, mbc 기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적 압수수색 등을 보며, 다시 이 나라에도 천안문의 시대, 홍콩 우산 혁명의 시대가 온 것인가 싶어진다.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권력의 입맛대로 해석하고 질서 유지를 핑계로 선량한 시민을 탄압하는 행위야 말로 현재 우리가 단죄해야 할 가장 큰 문제이다.
과오의 시대를 반복하며 시민의 생명과 삶을 가벼운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권력은 결코 오래 지속하지 못 할 것이 분명하다. 어리석은 권력이 역사의 교훈을 잊고, 또 다른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