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강아솔 EP <충무에서> (수박레이블, 2022)
강아솔이란 음악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의 <All That Jeju>('재즈'와 '제주'의 사소한 발음 차이에서 발생한 위트를 간직한 음반 제목. 그의 음악 인생에서 제주에서의 삶은 분명 하나의 변곡점에 해당했고, 그가 더욱 풍부해진 음악성으로 충만하게 그린 제주의 모든 것)에 실린 '하도리 가는 길'을 부르는 그의 모습을 한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본 이후부터다.
무채색 줄무늬 셔츠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담백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그는 한번도 가본 적 없는 하도리 가는 길 위에 나를 세워두었다. 인간은 경험하지 않은 세계, 존재하지 않은 세계 마저도 그리워 한다는 것을 이런 노래를 들을 때면 실감하곤 한다. 오로지 그의 목소리에 의지해 먼 곳에 존재하는 세계와 그 풍경을 상상했다. 너른 들판과 푸른 하늘, 바람, 돌, 멀리 보이는 바다 같은 것들 말이다.
국내 1세대 재즈 뮤지션들의 삶을 그린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구입한 영화의 사운드 트랙 음반에는 임인건의 '강선생 블루스'라는 곡이 있었다. 늦은 밤, 술에 거나하게 취한 한 트럼페터가 외등 골목길 저 너머로 서서히 사라져 가는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뒷모습이 보였고, 한 인간에 대한 임인건의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한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존경할 수 있겠는가.
강아솔은 지금은 몇몇 대표적인 이름이나 현지인들 사이의 대화속에서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명인 '충무'를 키워드로 꺼내들었다. 1995년 정부의 대대적인 도농통합정책으로 충무시와 통영군은 하나가 되었고, 그렇게 충무라는 도시는 실제 지도에서 존재하지 않는 이름, 기억과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름이 되었다. 음반 커버 이미지로 쓰인 그림이 1992년 6월을 가리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유년 시절의 희미한 기억을 장소를 중심으로 더듬어 생의 비밀을 캐내는 작업은 벤야민(베를린의 유년 시절, 일방통행로), 페렉(빌랭 거리, 장소들) 등이 선구적이고 모범적으로 보여준 바 있는데, 두 사람은 공히 한 개인의 기억이 사회적 관계를 떠나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하였다.
강아솔의 작업 역시도 한 개인의 '기억으로 내려가'(에르노의 표현) 특정 시기의 고유한 지역 언어와 고유한 인물명을 통해 구성된 '기억의 작업'(페렉의 표현)으로 구축된 한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를 기억의 리얼리즘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명징함과 모호함 사이를 오가면서, 노랫말로 언어화되지 않은 부분은 선율을 통해 하나의 정조, 혹은 하나의 풍경으로 출현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공명할테니 말이다. 때론, 기억은 현실보다 더 리얼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