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의 영화 <러브레터>(1995)는 한국에서 1999년에 개봉되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된 일본문화개방 정책에 힘입어 <하나비>, <가케무샤>에 이어 세번째로 공식 수입되었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첫번째 영화와 다른 감독들이 존경하는 거장으로 회자되던 구로사와 아키라의 두번째 영화(칸영화제 황금종려상)보다 이 영화가 인기를 끈 요인을 설명하는 데엔 여러 시각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비>는 기타노 다케시 특유의 폭력 미학으로 점철된 느와르로 당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고(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은 물론 샘 페킨파 역시도 낯선 존재였으며 오우삼 정도가 이 계보에서 그나마 익숙한 이름이었다), <가케무샤>는 당시엔 너무도 낯선 일본 시대극이었고, 서사의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에 대한 허무주의(이후 <칼의 노래>에서 유사한 세계관을 형상화했던 소설가 김훈의 당시 반응을 보라)와 인간에 대한 회의주의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의 어려움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90년대 한국 대중문화는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일본을 전방위적으로 참고하거나 복제하고 있었다. 당시 서울 강남의 유명한 카페들은 일본의 패션 및 문화 잡지들이 구비되어 있었고 일본 대중음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리곤 했다. 청소년들 사이에선 일본의 '망가'나 'J-Pop' 등을 서로 공유하면서 또래 문화의 중요한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들 역시 적지 않았다. 패션, 만화, 음악 등은 한국에 가장 이르게 유행한 일본 문화였던 셈이다. 당시 일본은 영국으로 반환(1997)되기 전 홍콩이 누렸던 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분점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 영향력은 이미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브레터>(1995)는 대학가 축제에 일어일문과를 중심으로 몇 해에 걸쳐 반복적으로 상영되고 있던 검증된 일본대중문화 '히트상품' 같은 존재였고, 첫사랑 소재와 사랑의 아시아적 정서 등은 대학가로 국한되어 있던 일본문화에 대한 매혹과 열광을 대중 전체에게로 손쉽게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전제가 되었다. 영화는 관점에 따라 순종적인 여성상, 일본 특유의 '망가' 정서, 음악의 지나친 감상주의 등을 문제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와 이후의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기 전 2000년대 초중반까지 존재했었던 아날로그 감성과 그에 기반한 첫사랑 판타지를 감독만의 섬세한 세공술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그 과정에 감독 자신의 모습과 우리 모두의 모습이 진실되게 투영되어 있다고 여겨져('진정성')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일본의 첫 공식영화가 될 수 있었다.
후일담 소설의 형식을 동시대 감각에 대한 이해와 세련된 작법을 통해 영화로 재전유한 듯한 <접속>(1997), 故 유영길 촬영감독을 통해 주조된 리얼리즘의 영상미학이 영화 전체를 수놓는 <8월의 크리스마스>(1998)가 공유하는 '현실성'과는 다른 논리와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이 영화는 당시 기성세대의 지식인과 언론 등을 통해 '신세대'로 명명된 새로운 세대가 발견해가고 탐구하고 있었던 '개인적인 것'의 구체적인 세계에 부합하는 영화 중 하나였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등장한 젊은 세대에겐 80년대가 지닌 대의와 현실이라는 압도적인 중력을 벗어나 '집단적인 것'에 희생당하지 않는 개인과 상상의 무한한 세계를 발견하려는 욕망과 의지 또한 충만했는데, 영화는 그러한 세계에 미리 도착해 있던 일본에서 의도치 않게 발신한 초대장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비슷한 맥락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을 달고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면, 90년대에 '하루키 신드롬'은 존재했더라도 시간이 더 흐른 뒤의 사건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누군가는 불안한 시선으로, 또다른 누군가는 기대의 시선으로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