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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를말하는사람 Jun 08. 2022

결혼, 그 쓸쓸함의 기록 11

직주근접, 초품아, 학원가 이런 것들이 싱글맘에게는 절실할 정도로 더 필요한 것들일 줄이야..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려고 하는데 눈이 무거운 것이 잘 떠지지 않았다.

어제저녁 그렇게 얼굴을 오만상 찡그리며 울다 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출근하는 길, 무한도전이나 보자고 켰던 유튜브에서는

얄미운 알고리즘들이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자산 가격의 하락을 전망하는 콘텐츠들로 나를 인도했다.

‘이제부터 금리인상 시작이다’

‘영끌족 시청 금지. 앞으로 집값 이렇게 된다’

‘현금도 쓰레기지만 주식도 쓰레기다’

‘루나 사태, 최악의 폰지사기’

이혼 준비로 인해 집을 팔고 이동해야 하는 나에게 이 알고리즘들이 너무 하다 생각했다.

뭐… 알고리즘이 추천하든 안 하든 이 상황들이 달라지거나 떨어진 내 코인과 주식이 오르는 건 아니지만 원망할 대상이 있다는 것에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검색창에 무한도전으로 검색하고서야 자산 가격 하락을 전망하던 추천 콘텐츠들은 사라졌다.

예전에 본방도 보다가 숨넘어가게 웃었던 기억이 있는 무한상사 편을 클릭했다. 지금 상황도 상황이고, 시간이 10년은 훌쩍 넘은 콘텐츠인데 보면 그게 그렇게까지 재미있겠나 싶어 시간이나 때울 요령으로 아무 생각 없이 켰지만, 버스에서 흐흐흑 가쁜 숨을 쉬고 얼굴 근육까지 쓰며 웃고 있자니 부끄러워져서 중간에 꺼버리고 말았다.

‘아니 불과 어제 자기 전까지 펑펑 울던 사람이…’

유체 이탈한 것처럼 어제의 나와 지금의 나를 바라보곤 나란 인간에 대해 미시감 마저 들었다.


회사 사무실에 7시쯤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아직 아무런 말소리도, 타자 소리도 없는 조용한 공간. 일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보고서가 당장 나올 거 같아 자신감이 솟았다.

아니다… 오늘은 먼저 재산분할부터 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 그것도 집중만 하면 금방 하지 뭐.


“굿모닝~ 항상 일찍 오네~”

얼마 전 새로 부임하신 임원은 내가 오는 시간 전에 언제나 와있었다. 그러고 보니 책상 위에 가방이 올려져 있었구나.

“안녕하십니까~”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컴퓨터를 켰다.


업무가 아니라 재산분할 1시간 만에 끝내야지. 다짐하고  온 나는 머쓱해졌다.


일단 필요한 협의 사항은 다 알아봐야 했고, 재산분할은 그중에서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매우 간단했다.


재산이래 봤자 지금 있는 이 집 하나뿐..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폭력, 외도 건이 의뢰가 잘 들어오는걸 이미 아는 변호사는 조금 귀찮은 듯,

“결혼 몇 년 차세요? 아이는 있으세요?

  양육권은 협의는 다 하셨어요?

  7년 정도면 재산 분할은 반반이에요.”

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위자료에 대해 문의하자

“폭언은 본인은 괴롭겠지만 안타깝게도 보내주신 대화 내용으로는 성립이 안돼요. 분명 폭언이지만 재판에서 인정이 안됩니다. 폭언으로 위자료를 받으려면요, 허구한 날 남편이 욕하고 뭐 물건 집어던지고 해야 해요. 그런 거 녹음하고 물증이 있어야 하고요.

그런 케이스에서도 많이 받아봤자 2천만 원 정도고요.

아 뭐 아시겠지만 외도해도 위자료는 많이 받아도 3천만 원입니다.”


물론 각자 들고 있는 돈은 있었다. 나에게 얼마 안 되는 주식과 코인들이 있었고, 지인의 사업에 투자한 돈도 있었다.

남편이 어느 만큼 가진지는 몰랐지만, 어머님께서 따로 돈을 주시겠거니 생각했다.  


그런 건 액수가 크지 않아서 반반 분할해봐야 어차피 지금 각자 가지고 있는 돈일 것이기 때문에 제외했다.


먼저 이 집을 매매한 금액 그대로는 받을 수 있다 가정하고,  은행 주담대 대출금, 시댁에서 빌린 돈을 제하고 나머지 비용을 제하고 나니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금액은 1억 5천이었다.


그럼 나는 이 집을 팔고 나온 후 아들과 살 전셋집을 1억 5천에 대출이 되는 예산이 닿는 선에서 구해야 했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인 이 집은 매매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리 오르지 않았다.


이 집이 아파트가 아닌 탓에 매매한 가격에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정권이 바뀌고 부동산 정책도 바뀌고, 금리도 오르고, 금융 시장이 안 좋아지면서 아무래도 매매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왜 하필 이럴 때 세상도 난리람…


어떻게든 집을 찾아야 했기에 부동산 앱을 켜서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회사와 30분 거리여야 했고, 꼭 좋은 학군에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은 없지만, 곧 초등학교 들어가는 애를 혼자 키우려면 집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고, 아파트 주위로 학원가들이 형성되어있는 곳이 가장 좋았다.

아이가 2시에 학교를 마치면 내가 돌봐줄 수 없기 때문에 차량으로 길지 않은 거리에 학원들이 있으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건들은… 낯설진 않았다. 이건 내가 현재의 집으로 이사 오기 전 봐왔던 조건이 기고하다. 직주근접, 초품아, 학원가 이런 것들이 싱글맘에게는 절실할 정도로 더 필요한 것들일 줄이야..


지금 매매를 고려하는 건 자금도 없거니와 상투 위 허공을 잡는 꼴일 것 같았다.

평수는 어떻게 할까… 현재의 평수보다 작은 평수로 갈 수 있을까… 작은 평수로 가면 나도 그렇고 특히 아이도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거 같았다.

결국 회사에서 30분 거리, 30평, 초등학교를 걸어서 갈 수 있는, 구축 아파트들을 리스트에 올리고 호갱 노노에 들어가서 실거래가부터 확인했다.


전세는 최소 4억~최대 5억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1억 5천이 있으니 대출은 최대 3억 5천 가량을 받으면 되었다. 금리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수입과 지출들을 모두 따져봤을 때 이자를 지불할 여력은 되었다.

이제 매물이 어느 정도 나와있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행운이라는 건 이럴 때 나에게 다가오나…?

앞이 죄다 행운의 숫자 7로 시작하는 매물밖에 없었다.

‘아 내가 평수를 잘못 설정했나?’

 평수는 제대로 설정되어있었다.


7억… 7억 5천…8억?

호갱 노노의 실거래가로 나온 매물은 하나도 없다.

6억이 넘는 돈을 어떻게 대출해? 전세자금 대출은 전셋값의 최대 80%까지 되지만, 연봉을 따지면 그 정도 대출은 받지도 못한다. 설사 은행에서 해주더라도 내 월급으로는 월 이자를 갚질 못한다.


이 조건으로 이사 가는 걸 포기해야 하는 걸까?

아이를 혼자 케어해야 하기에 직장에서 멀어질 수는 없어 서울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20평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6억! 그래 그럼 지인(정확히는 지인의 지인이다) 사업에 투자했던 그 1억 그거 빼서라도 넣자!


컴퓨터 시계를 보니 벌써 8시반을 넘어서고 있었고,

동료들이 출근을 하고 있었다.


항상 출근하면 커피부터 내려 먹는데, 마음이 급했던 오늘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열어놓았던 파일들과 앱을 끄고 커피를 내리면서 지인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도 출근을 했을 터였다.


“ 오늘 시간 되면 차 한잔 하자~”

오늘 만나서 투자금 회수에 대해 이야기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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