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의 호텔 헬스장
새벽 5시다. 아이들과 하얏트에서 호캉스를 즐기던 날임에도 어김없이 일어난다. 원래는 야외를 뛰지만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날씨 속 따뜻한 호텔에 있다 보니 그저 운동화만 갈아 신고 밑에 있는 헬스장을 찾았다.
다시 달린 지 10개월 차. 원래도 이어폰 없이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뛰는 사람이라 러닝머신 위에서도 같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야외와 달리 헬스장은 너무 밝아서 나 자신한테 집중하기가 힘들고 주변환경이 바뀌지 않다 보니 재미가 없다. 모양으로라도 티브이를 켰다. 채널을 돌리다가 멈춘 곳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오랜만에 아프리카 초원 이야기를 보기 시작했다. 자막이 나오니까 심심하진 않다.
달린 지 30분이 지나갈 때 즈음 앞을 보니, 화면은 어두운 밤 사막으로 변해있다. 모래 위에 올록볼록한 둔덕이 생기고 있는데, 두더지가 사막 속을 빠르게 기어 다니며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두더지는 온몸의 감각을 이용해서 사막 속의 먹이를 찾고 있다. 이어서 한 문장이 자막으로 떴다.
- 누군가에겐 어둠이 기회가 됩니다.
"기회.."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나는 헬스장 유리벽 밖에 있는 어두운 세상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나에게는 어둠이 어떤 기회였을까.
나의 새벽은 겨울에 훨씬 더 짙어졌다. 동트는 새벽보다는 지금처럼 칠흑 같은 새벽을 더 좋아하기에.
매년 이맘때를 돌이켜본다.
작년 새벽에는 명상을 그렇게 했었고.
재작년 새벽에는 요가를 그렇게 했었지.
그전까지는 무언가를 위해 동분서주했었다.
기회.
사실 나는 공부를 위한 공부를 좋아했고, 보여주기식 인증을 좋아했다. 인정욕구가 높아서 아웃풋을 내려고 질기게 늘어질 때도 많았다. 목표를 설정하고 결국 성취라는 열매를 따보고 잊히고의 반복이었다.
나는 어떤 기회를 잡고 싶었을까.
어느 순간 열심히 성취를 하는데도 속이 텅텅 빈 느낌이었다. 공허했다. 부담을 내려놓고 그저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글쓰기와 책 읽기, 그리고 달리기를 비롯한 움직임 명상으로 돌아온 지 3년 차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나는 어둠을 통해 스스로를 '채우는' 기회를 잡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는, 스스로를 알아가며 좋아하는 것을 찾는데 3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키워드를 5년째 품고 있다. 어렵다. 물론 5년 전보다 나에 대해 훨씬 관대해지고 다정해졌다. 스스로를 토닥이고 쓰다듬어줄 수 있게 되었다. 또 좋아하는 분야를 추릴 수 있게 되어서 공부도 조금씩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시간이 한참 필요한 것 같다.
잊고 있었다.
어둠은 기회가 된다.
깊고 긴 어둠. 살을 에는 추위. 그 환경은 누군가에게 기회가 된다.
결국 두더지는 먹이를 잡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나를 채우기 위한 기회로 어둠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