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의 마지막 문장

어제의 일상

by 한다정

작년 말부터 짬짬이 생각했던 나만의 카페 데이트.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요즘 읽고 있는 책과 노트를 챙긴다.


오픈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카페. 큰 창가자리에 눕듯이 앉는 의자에 앉아서 '균형 잡힌 뇌'를 읽고 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읽히지 않음의 향연'이다. 배우고 싶고, 알고 싶지만, 이해가 확 되지 않는 느낌. 그래서 더 곱씹어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글. 그 글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엄마다.


오늘 아빠는 가까운 분을 발인하러 떠나셨다. 이제는 조금씩 축하의 시간보다는 이별의 시간을 맞이하는 횟수가 많아진다. 그 허전함과 공허함을 집에서 쓸쓸히 안고 있을 엄마. 그 모습이 그려져서 가만히 핸드폰에 귀를 대고 엄마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이런저런 일상 속 이야기가 오고 간다. 중간중간 끊기는 이야기와 공백 속에서 나는 엄마의 외로움, 불편함, 심심함과 적적함을 느낀다. 27분 30초의 통화.

"그래, 이제 너도 보던 책 봐라. 우리 딸 사랑해."

그저 끝은 '사랑한다'다.


몇 년 전부터 엄마아빠와의 통화는 늘 '사랑한다'가 끝이다. 통화 속 마지막 인사이자 문장이다. '사랑'.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는데 이제는 끝맺음에 당연스레 나오는 단어가 되었다. 나중에 이별의 순간이 오더라도 내가, 그들이, 서로에게 사랑을 가득히 주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시키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 순간이 언젠가는 올 텐데. 지금도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데. 그래도 가슴 한켠에서는 여전히 어린 내가 있다. 갑자기 옛날 광진구 살던 때가 떠오른다. 부엌 원탁에 도란도란 앉아 저녁으로 콩나물국을 후루룩 먹던 시간. 일요일 아침마다 마룻바닥에 상 피고 앉아서 엄마가 구워놓은 식빵에 사과, 계란, 양배추, 케첩 착착 올려서 먹던 토스트. 추석명절에 솔잎 깔고 찜통 가득 쪄먹던 송편이 떠오른다. 욕심내서 만들기는 오지게도 만들었지만, 결국 먹는 건 속이 많이 들어간 엄마아빠표 송편이었지. 그 시간, 그 순간순간마다 든든했던 엄마아빠의 모습.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꿈같은 기억들. 눈은 먹먹하고 목은 따끔해진다.


"네, 저도 사랑해요."

오늘도 그저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그 시간은 최대한 뒤로 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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