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가벼운 우울감에 빠진다. 특히 날씨가 화창한데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그렇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빠지면 철장 안에 갇힌 죄수가 된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을 느낄 바엔 차라리 미세먼지가 있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평일에는 우중충하다가 주말이면 거짓말같이 개였으면 좋겠다. 나만 이런 건가. 못된 심보가 있는 게 분명하다.
공부를 끝내고 점심으로 삼치구이를 먹었다. 가시가 목에 걸렸다. 중학교 때 고등어를 먹다 가시가 목에 걸린 기억이 떠올랐다. 음악 선생님은 내게 밥을 한술 크게 삼키라며 민간요법을 알려줬다. 집에 가 밥솥을 열어 동그랗게 쌓인 밥 한 숟가락을 넣고 꿀떡 삼켜냈다. 밥을 먹는 것은 목이 긁힐 수도 있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가까운 병원에 가서 빼라는 글이 줄을 이었지만, 그 후에도 가시가 걸릴 때마다 밥을 한술 크게 삼켰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이물감은 신경 쓰였으니까.
밥 한술을 삼키고 나면 커다란 밥 덩어리가 목을 지나며 걸린 가시를 밀어 내렸을 거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물감이 들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가시가 내려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목에 상처가 난 것인지 헷갈리는 사이 까무룩 사라졌다.
요 며칠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충돌되었고 늘 그렇듯 해야 할 일을 선택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약간의 틈이 생기면 따끔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하고 싶은 것들이 목에 걸려 삼켜지지 않았다. 해야 할 것이 커서 제대로 뺄 여유도 없었다. 길가에는 개나리와 목련이 만개 중이었다. 따뜻한 빛깔을 띤 햇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따끔거렸다. 음악 선생님에게가 이런 가시를 없애는 방법도 아시나요. 하고 묻고 싶었다.
나중을 바라보며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들이 지금의 행복을 빼앗고 있었다. 이렇게 행복을 미루면 미룬 만큼의 행복이 쌓여있을까. 제법 어른이 된 나는 그 답을 알 것 같았다. 놓친 끼니 처럼 지나간 행복은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을. 지금 여기서 행복하라는 당연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몇 번의 목련이 남아있을지. 50번 정도일까.
주어진 봄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에 조바심이 났다. 멈추기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가시가 목에 걸렸을 때 봄의 민간요법을 떠올렸다. 그만둘 순 없지맘 대신 일찍 일어나 해야 할 일을 빨리 끝낸 후 볕이 잘 드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목이 긁히 듯 피곤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안 한 채 이물감을 참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밥 한술 삼키듯 할 수 있는 것 부터 삼켜내 본다. 효과는 모르지만, 아무렴. 내일은 날씨가 화창했으면 좋겠다.